<로맨스가 필요해>│남의 연애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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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직업, 오래된 친구들, 멋진 집. tvN 의 주열매(정유미)는 가진 게 많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 심장을 뛰게 만들고 미소를 짓게 하며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필요하다. 바로 로맨스 말이다. 연일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스케줄 덕분에 “우리야말로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의 스태프들은 지난 7월 21일, 더위가 한창인 주말에도 파주의 세트장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시작된 열매와 지훈(김지석)의 로맨스 때문에 잔뜩 심기 불편한 석현이 된 이진욱은 감독의 억양 센 내레이션에 맞춰 심각한 표정 연기에 돌입하고, 스태프들은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에 에어컨도 켜지 못한 채 현장을 누빈다. 촬영 틈틈이 짓궂은 총각 선생님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이진욱에게 웃음은 피로와 더위를 이겨내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연필로 나현(김예원)의 이마를 때리는 장면을 앞두고 일부러 연필을 붕붕 휘두르며 겁을 주거나, 화면에 뒷모습만 등장하는 김예원에게 “오른쪽 어깨 연기 잘 하라”며 성화를 부리기도 한다. 능청스럽게 어깨를 움찔거리는 나현에게 “아, 어깨만 보여. 그거 하지마”라며 애원하는 스태프들에게도 웃음은 금방 전염되는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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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진욱이 가장 큰 미소를 보인 순간은 아무래도 그의 장난을 위한 영혼의 단짝, 김지석이 촬영장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구석에 앉아있던 낯선 취재진을 가리키며 “어, 내 친구들 봤어? 촬영장 보고 싶대서 오늘 불렀어”라고 이진욱이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자, 김지석은 그물에 걸린 싱싱한 생선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건넨다. 당연히 사건의 전모는 금방 들통 나고, 두 남자는 어린아이들처럼 키득대며 서로를 놀리기에 바쁘다. 하지만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핫핫핫! 안녕하세요”라고 우렁찬 인사를 외치며 등장한 정유미까지 세 사람이 모이자, 촬영장은 다시 열매와 석현, 지훈의 삼각관계에 몰입한다. 진지한 일터에는 잠깐의 휴식이, 지난한 인생에는 짜릿한 로맨스가, 길고 긴 열대의 밤에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필요한 법. 주렁주렁 훈남이 열린 남의 연애가 전국의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건, 질투와 분노를 넘어서 반짝이는 쉼표가 주는 그 달콤한 위안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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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욱 미니 인터뷰 “로맨스의 핵심은 의외성”
<로맨스가 필요해>│남의 연애라도 괜찮아
│남의 연애라도 괜찮아" /> 열매의 대사가 굉장히 솔직한데, 석현이 아니라 이진욱으로서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이진욱: 사실 그런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서 아마 우리 드라마가 남자들이 보기에 불편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대본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여자들의 생각을 알게 되어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거든.

하지만 석현도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다. 연애에서 보통 남자들은 자존심이 상하는데, 석현은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니까.
이진욱: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상처받거나 하면 안 된다고들 하니까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나로서도 처음에는 석현이 우는 것에 전혀 공감을 못했다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풀어나갔다. 작품 안에서 감정을 이해해 나가는 거지, 아직도 내면에서는 싸우는 문제다.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건가 싶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고 하면 믿고 가는 거지. 납득을 하려고 하면 출발부터 새롭게 이해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그냥 받아들이는 게 더 쉬운 방법이다.

눈물뿐 아니라, 석현은 1차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동안 표현을 억누르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만큼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이진욱 : 주로 연기했던 인물들도 그렇지만, 실제의 나 역시 감정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통 한국 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나.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이나 말로 이것저것 다 옮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촬영이 아닐 때도 출연 배우들이랑 장난도 많이 치고, 떠오르는 대로 말도 해보고 인물에 익숙해지려고 워밍업을 한 편이다.

“석현은 대한민국 남자를 대표하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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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처음 반한 남자의 눈빛’처럼 굉장히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진욱 : 하아, 그게 제일 어려운 거였다. (웃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모르겠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눈빛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거야!”라고 해 줘도 그 눈빛 그대로 거울에 가서 보면, 그걸 연기에 적용하는 게 당연히 어렵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냥 그 순간의 느낌대로 했었다.

석현이 말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얘기는 눈으로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스스로의 연기를 믿어야 하는 순간이 자주 발생할 것 같다.
이진욱 : 그러게. 마음을 감춰야 하니까 더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웃음) 잘 보면 석현은 대한민국 남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나하고도 어느 부분은 맞닿아 있는데, 그런 점에서 평균적인 이해를 하려고 한다. 대부분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먹지, 그렇게 편하게 접근 하려고 한다.

반면 지훈은 여자에게 비현실적으로 잘해주는 남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현을 지지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많더라.
이진욱 : 에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반응은 차치하고, (웃음) 연기를 할 때는 석현으로서 지훈에게 밀리지 않아야 하는 긴장이 있지 않나.
이진욱 : 둘이 팽팽한 건 맞는데, 되게 애매하기도 하다. 사실 석현은 지훈에게 열매를 빼앗긴 게 아니기 때문에 대결을 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감춰진 비밀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립구도가 아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진짜로 신지훈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몸이 안 움직이는 거지. 연애가 다 그렇듯이.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로맨스’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생각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이진욱 : 원래 로맨스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게 유럽에서 영웅담이나 모험, 민담을 주로 쓰던 로만체에서 비롯된 거지 않나.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로맨스의 핵심은 의외성인 거다. 그런데 관계가 지속되면서 익숙해지고, 로맨스가 아닌 삶이 되는 거지. 아마 석현이가 비밀이 없는 남자였다면 열매한테 그랬을 거다. 네가 지금 지훈이랑 하고 있는 거, 예전에 나랑 다 했던 거라고. (웃음) 연애에서 매력적인 사람은 결국 새 사람인 건데, 사랑은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걸 이 드라마가 말해주는 거다. 재미있는 얘기다. 하하.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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