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매니저도, 스타일리스트도 없이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아이가 혼자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꺾어 신었던 신발을 똑바로 고쳐 신으며, 그는 “제가 길눈이 좀 어두워서요.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준비된 생수를 거침없이 들이켰다. 회사 없이 홀로 일하는 게 불편하진 않느냐고 묻자, 무더위에 빨개진 얼굴로 “혼자 다니는 건 안 힘들어요”라며 방긋 웃는 그의 이름은 김슬기. tvN < SNL 코리아 > 시즌 1과 2에서 동그란 뿔테 안경을 걸친 채 또박또박 퀴즈를 내는 모범생, 신동엽 때문에 난감해하는 골프아카데미의 MC 등을 연기했던 그 여자아이다. 어떤 상황,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화면 속에서 도드라지고야 마는 재능이 김슬기에겐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 SNL 코리아 >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게도.

스스로 만들어낸 배우의 운명
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본인의 표현처럼 운이 좋았다고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 창작극 동아리의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선배인 장진 감독을 만났고, 그의 눈에 띄어 연극 과 < SNL 코리아 >에 투입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는 모든 배우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데 성공하진 못한다. “< SNL 코리아 > 시즌 1의 1회 때는 너무 긴장해서 헛구역질도 났지만, 데뷔를 생방송으로 하다 보니 배짱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아하하하’ 하고 시원스레 터지는 웃음. 거침없는 신인은 온갖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는 무대를 결국 제 것으로 만들었다. “대사를 딱딱 잘 씹어서 하니까 똑 부러지는 역할도 잘 맞는 것 같고, 무표정한 것도 잘 맞는 것 같”다고 자신의 장점을 콕 집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사실 김슬기에게서 배우의 씨앗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그 자신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싸인을 연습했”던 그는 중학생이 되었고, 배우로서의 재능에 대한 자가진단을 내렸다. 답은 당연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였다. 당장 올바른 답인지 아닌지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중요한 건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까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어요. 그래서 고3 때 다짜고짜 학원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한 다음 ‘난 배우가 될 것 같으니 지원을 좀 해달라’라고 말했어요.” 여전히 미소가 감도는 얼굴, 그러나 큰 눈을 한번 깜빡이지도 않은 채 “참았던 게 있어서 연기가 더 잘되더라구요”라 덧붙인다. 담대한 것 같다는 말에 김슬기는 고개를 저었지만, 확신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 역시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결국 ‘배우’는 그 스스로 빚어낸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영화랑 뮤지컬만 하면 되는데”
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김슬기│또박또박 한 걸음
그래서 김슬기에게 지금 이 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연극 과 < SNL 코리아 >를 오가는 빡빡한 스케줄이라도 그저 신이 날 뿐이다. “그냥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는, 아주 건강한 생활”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다만 머릿속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나둘 바쁘게 꼽아보는 중이다. “연극이랑 뮤지컬, 드라마, 영화 이렇게 모든 장르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게 목표이자 꿈이거든요. 이제 영화랑 뮤지컬만 하면 되는데…… 기다리고 있어요.”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그에게선 서두르는 기미를 읽어 낼 수 없다. 물론, 재촉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조급함이란 건강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에겐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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