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희한하다. 선머슴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여자가 애교 대신 앞구르기에 더 자신 있고 걸핏하면 “쌤, 사이코에요?”라고 대드는데도 얄밉기는커녕, 통통한 볼살을 살짝 잡아당기고 싶을 만큼 귀엽다. 촌스러운 자줏빛 투피스 차림에 효도화까지 신은 여자가 남들 앞에서 굽실거리는 데도 궁상맞기는커녕, 팔짱 끼고 함께 놀러 다니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영화 의 육상꿈나무 재영과 MBCevery1 의 희 엔터테인먼트 구 대표. 박희본은 스스로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입히며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제가 이 인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연기하는 사람도 사랑해주지 않고, 현장에서 사랑받지 못하면 시청자들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는 것 같아요.” 사진촬영을 위해 입은 긴 치마가 영 어색한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도 포토그래퍼로부터 예쁘다는 칭찬을 듣고, 카메라 렌즈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듯한 눈빛을 보내다가 이따금씩 한 쪽 눈을 찡긋거리는 박희본은 정말이지 ‘내추럴 본 러블리’다.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가 스튜디오를 감싸고 있던 차가운 공기를 잠시나마 봄의 온도로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그러나 2001년 걸 그룹 밀크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박희본은 “남들이 만들어주는 내 이미지에 갇혀버린”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건 당연했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뒤에도 한동안 “기분좋은 방황”을 했다. 그러다 2년 전, 윤성호 감독을 만나 인디시트콤 의 홍어 잘 먹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하고 에서 키가 자라지 않아 육상선수의 꿈을 포기한 재영으로 등장했던 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진짜 박희본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윤성호 감독님이 제 실제 말투나 습관을 캐릭터에 반영해 주셨어요. 마음이 편했죠. 촬영하고 나서는 정말 짜릿했어요. 왠지 을 찍은 느낌이랄까? (웃음)” 박희본이 이번 촬영을 끝낸 후 한 달 동안이나 “구 대표… 우리 구 대표…” 하면서 쉽게 구희본을 내려놓지 못한 건,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희본과 구희본이 닮아있어서 더 애잔했던 것 같아요.” 배우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자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안아줄 수 있는 넓은 품이 생겼고 결국엔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자신만의 에너지와 기운을 불어넣은 박희본은 이제 “남들 다 하는 트렌디한 거 말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왠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마성의 박희본 월드가 곧 완성될 것만 같다.
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박희본│내추럴 본 러블리
My name is 박희본. 본명은 박재영.
1983년 5월 11일생. 6살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집에서는 내가 애 같고 동생이 오빠 같아서 나이 터울을 잘 못 느낀다. 난 애물단지다. 하하.
MBCevery1 에서 구희본의 패션은 정당 대표를 롤 모델로 삼았다. 원래는 제작진이 하이힐과 핸드백을 준비해주셨는데 내가 직접 구희본 대표의 패션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할머니들이 신으시는 불투명한 살색 스타킹과 저렴한 효도화를 샀고, 스타일리스트의 아버님이 들고 다니시던 일수가방을 어렵게 입수했고, 예전에 고모가 양장점에서 맞추셨던 투피스를 빌렸다. 의상협찬 자막을 보면 우리 고모 이름이 들어가 있다.
스타 마케팅 차원에서 김성령 선배님을 섭외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제일 예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들 ‘그래, 김성령! 김성령!’ 구호를 외쳤다. 극 중에서 “구 대표, 너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는 뉘앙스처럼, 실제로도 친언니처럼 너무 잘해주신다.
구희본을 짝사랑하는 교양국 PD 황제성과 앞으로 러브라인이 생길 것 같다. 후반부에는 한 회 자체가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로 채워진다. 애틋한데 또 격정적인 건 아니고 그냥 고만고만한 러브라인이다.
2화에서 “너 내가 걸 그룹 해봤으니까 안 시키는 거야”라는 대사는 애드리브였다. 원래는 일국 엔터테인먼트랑 아이돌 그룹을 하겠다는 배우를 두고 그냥 나가는 설정이었는데,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다. 내가 활동했던 걸 그룹 밀크와 관련해서 애드리브를 몇 개 했다. 나는 박희본으로서 한 얘기가 아니라 구희본으로서 ‘내가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매니저 해봐서 아는데 그거 후회한다’는 뜻이었는데, ‘언니 자살골 넣으셨네요’라는 반응도 있더라.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년 간 가장 많이 배운 건 인성이다.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면 노래나 춤을 가장 먼저 가르쳐줄 줄 알았는데, 처음엔 거의 인사하는 것만 배웠다. 앞으로 어디서 누굴 만나든 이렇게 인사해야 된다고. SM엔터테인먼트가 노래 이외에 말하는 것, 기본적인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제일 좋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운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과정은 생략하고 항상 결과만 바라봤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고 일종의 방황을 한 것 같다. 지금은 결과가 어떻든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를 꽉 채워서 기쁘게 살면 그것만으로도 결과 이상의 유익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 친구한테 차여서 슬퍼도 촬영장만 가면 정말 신났다. 잠도 못 자고 배도 고프고 막 추운데도 기분이 좋았다. 연기에 중독된 것 같다. 예전에는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날 처음 보는 스태프 분들은 내가 아니라 캐릭터를 보는 거지만, 혹시라도 카메라 옆에 지인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은 박희본과 캐릭터를 동시에 보는 거니까 그게 정말 두려웠다.
30대의 목표는 밀크의 박희본이 아니라 어떤 작품의 캐릭터로 불리는 거다. 사실 내가 출연했던 독립영화는 밖에 없는데, 영화제에 나가고 거기서 관객과의 대화를 몇 번 하면 다 독립영화 배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인식에 대해 무조건 싫다고 거부하기보다는 ‘저 이런 작품도 했어요’라는 걸 보여드릴 거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상업 영화, TV 드라마를 해야 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블루오션은 발리우드 진출이다. 이미 할리우드는 레드오션이다. 진짜 사랑스러운 인도식 영어발음도 연습하고 있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갔을 때 인도 감독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괜히 말도 한 번 걸어봤다. 참 친절하시더라. (웃음) 9화쯤에 발리우드 뮤직비디오가 나오는데, 그걸 내 프로필에 적어서 나중에 발리우드 진출할 때 써먹어야겠다. (웃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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