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연말정산 뒤끝공제’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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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3일, 일산 MBC 드림센터. 여운혁 CP는 마이크를 옷에 다는 내내 난처하게 웃었다. “잠깐 하는 건 줄 알고 왔더니만, 큰일 났네.” 2010년 MBC 이 걸어온 길에 대해 토론하는 ‘2010 연말정산 뒤끝공제’의 패널로 불려 오긴 했지만, 늘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 앉아 장시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했으리라. 유재석은 아까부터 패널 한 명 한 명에게 살가운 악수를 건네며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MBC 을 연상시키는 원형 세트에 빙 둘러앉은 50여 명의 팬들 사이에는 곧 시작될 녹화를 기다리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흐른다.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SBS 로 아이유와 제법 가까워진 노홍철이 아이유에게 초콜릿을 내민다. 객석에 앉은 팬들이 아이유만 유난스레 챙기는 노홍철을 놀린다.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유재석의 리드로 촬영이 시작된다.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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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우측, 정면에서 클로즈업과 풀샷을 나눠 잡는 카메라가 각각 3~4대, 지미짚까지 총 11대의 카메라를 운용하는 현장은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약속을 토대로 움직인다. 작가들은 멤버들에게 배당된 프롬프터를 통해 작게는 ‘이 질문은 노홍철 씨도 함께 대답해 주세요’와 같이 쇼의 호흡을 조율하는 주문부터 크게는 “명수: 미친 존재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같은 직접적인 멘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멤버들이 요구 사안들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건 아니다. 무대 아래에서 흐름을 조율해야 하는 것이 작가들의 입장이라면, 당장 주어진 상황을 자기 식대로 소화하고 요리해야 하는 게 무대 위에 오른 플레이어들의 역할이다. 박명수는 작가들이 요구한 독설을 뱉는 대신 진지한 자세로 토론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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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다소 주눅이 든 멤버들을 위해 작가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세요” 같은 독려의 메시지를 프롬프터에 띄운다. 하지만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들킨 멤버들은 전에 없이 진지한 자세로 토론에 임한다. 2010년 한 해 눈에 띄게 지친 모습을 보여 줬던 박명수는 “예전엔 ‘거성’이니 ‘악마의 아들’이니 별명들이 쏟아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못해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고 고백했고, 정형돈은 “아침엔 달력 특집 촬영을 하고, 끝나면 크리스마스 싱글 파티 공연 연습을 해야 하는 일정”을 토로했다. 물론 이에 대한 멤버들의 해법은 제각기 다르다. 박명수는 약해진 체력 탓에 ‘WM7’에 열심일 수 없었던 것을 아쉬워하며 김태호 PD에게 “앞으로는 나도 잘할 수 있는 기획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고, 노홍철은 길의 조언대로 “고민 끝에 에 보다 더 집중하기 위해 다른 프로그램을 2개 그만 뒀”다.

쇼 전체를 움직이는 김태호 PD와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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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과 패널들의 토론이 진지해지자, 카메라보다 조금 앞쪽에 자리를 틀고 앉아 스튜디오의 흐름에 집중하던 김태호 PD는 작가들에게 “VTR 보면서 이야기하는 순서 빼고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자”고 주문한다. 준비했던 꼭지 중 어떤 것을 살릴지는 현장의 흐름이 결정하고, 그것을 판단하고 큰 맥락을 잡는 것은 김태호 PD의 역할이다. 덕분에 토론에 한껏 집중된 현장의 공기는 흔들림 없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토론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살린 만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그 빈칸을 매끈하게 붙여내는 건 유재석의 몫이다. 유재석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4시간가량의 녹화 내내, 한껏 올린 말의 피치를 내리는 일 없이 쇼 전체의 흐름을 견인한다.

“테이프 갈고 갈게요.” 카메라 감독들이 일사불란하게 테이프를 가는 동안, 김태호 PD는 만화가 강풀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제대로 설명도 못 드리고, 오시자마자 바로 촬영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란 말에 당일 마감을 막 마치고 앞뒤 재지 않고 달려왔다는 강풀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하긴, 자신이 팬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다. 고단함을 이기게 만드는 건 결국엔 애정 아닐까. 그러고 보니 스태프 중 누군가 아까부터 정형돈의 애칭 “미존개오”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그게 자신만의 파이팅 구호라도 되는 것처럼. 긴 세월을 함께 한 스태프들의 마음은 단순한 팬의 마음 그 이상일 것이다.

2011년도 잘 부탁합니다
<무한도전>│‘연말정산 뒤끝공제’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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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한 단체 녹화가 끝나고도, 멤버들은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밀려드는 방청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느라 쉽사리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못한다. 간신히 스튜디오에서 빠져 나온 노홍철은 녹화 중 자신에게 기습적으로 애정 고백을 했던 여대생을 대기실로 데리고 가는 팬 서비스를 발휘한다. 노홍철에 대한 한 소녀의 애정이 낳은 돌발 상황은 ‘일과 thㅏ랑, thㅏ랑과 일’을 의 틀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 보겠다는 노홍철의 장기 프로젝트의 맥락으로 유연하게 흡수되며 이날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낳았다. 녹화가 끝나고 복도에서 김태호 PD와 마주친 여대생은 연신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이 돌발 상황을 그대로 방송에 살린 김태호 PD는 장기 기획의 정교함 속에서도 더 가벼운 호흡을 찾는 실마리를 찾았을지 모른다.

길과 정형돈의 부상으로 예정했던 녹화를 취소한 은 그 악조건을 모두 공개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에게 ‘PLAN B’를 예고했다. 다리 부상을 앓는 멤버들, 들어갈 스튜디오도 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은 오히려 더 가벼운 호흡의 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기본적인 약속과 플랜은 있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기민하게 자신들의 우주 안으로 흡수하는 예능. 2011년도 에겐 무척 흥미로운 한 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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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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