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결혼 못하는 남자>에 출연중인 개, 상구는 사실 개가 아니다. 훈련사의 품에 안겨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거나 지시에 따라 작은 입을 앙 벌려 캉캉 짖을 때는 분명 강아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켜보면 볼수록 상구, 고도리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장난치는 여우의 품성을 갖고 있다. 녀석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총에 맞은 연기를 보여주다가도 먹이를 받아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발딱 일어나 품위 있는 얼굴로 금방 돌아간다. 사진 촬영이 마무리 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테이블 밑의 그늘로 숨어버리고, 그러다가도 저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쪼르르 뛰어와 냉큼 사람들이 앉은 의자 위로 뛰어 오른다. 얄밉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이 강아지의 매력은 인기 정상의 여배우들에게서나 찾아보던 그런 종류의 것이다.

반면, 한 눈에 그 몸집을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큰 ‘1박 2일’의 상근이는 기특할 정도로 듬직하다. 한창 털갈이가 시작될 무렵이라 잠깐만 쓰다듬어도 온통 옷이 하얀 털로 뒤덮이지만 그래도 사람 손길이 좋은지 자꾸만 훈련소 소장님의 품으로 파고든다. 애교를 부리는 다 큰 장남을 보는 것처럼 어색하면서도 찡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다. 호기심 많고 누구에게나 다정한 상근이는 곁에 있는 고도리를 발견하자 옆구리에 코를 박고 친한 척을 한다. 그러나 까칠한 고도리가 이런 희롱을 쉽게 받아 줄 리 없다. “아르릉!” 지지 않으려고 화난 척을 해 보지만, 그래도 그 소리마저 귀여울 뿐이니 한편으로는 고도리 나름대로 인생의 고달픔이 있겠구나 싶어진다. 촬영 현장에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훈련소에서는 되도록 마음껏 뛰고, 짖고, 사랑받게 해 준다는 소장님의 말처럼 상근이와 고도리는 쨍쨍한 햇살 아래서 신나게 여름날을 즐기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방송에서 이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더라도 괜히 마음 아파 할 필요는 없겠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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