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남편의 속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아이를 갖고 싶다”고 조르더니, 뜻대로 되지 않자 이혼하려고 변장해 다른 여자인 척 연기까지 했다. 결국 차갑게 뒤돌아서 일과 아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잘 살아갔다. 공감을 사기 어려운 지점이 많았지만, 모든 의아함과 불만은 4주 만에 깔끔하게 해소됐다. 아무것도 몰라서, 천진난만한 표정이었에 그의 눈물이 더 와닿았다. 지난 18일 방송된 JTBC ‘바람이 분다'(극본 황주하, 연출 정정화·김보경)에서 이수진(김하늘)이 주저앉아 오열할 때, 시청자들도 같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수진은 전 남편 권도훈(감우성)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도훈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해 충격은 더 컸다. 앞서 도훈과 수진은 5년 만에 스치듯 만났다. 그때도 도훈은 수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수진은 횡단보도인데다 자신이 어깨를 움츠리고 피해서 도훈이 제대로 못 봤다고 생각했다.

이후 수진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도훈을 다시 만났다. 수진은 “딸 아람(홍제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싸늘하게 경고했고, 도훈은 애써 담담한 척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도훈의 절친한 친구 항서(이준혁)와 수아(윤지혜)의 결혼식장에서 또 만났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도훈은 수진에게 “오랜만이다”고 인사했다. 그때 수진의 친구 미경(박효주)이 다가왔고,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도훈은 혼란스러워 했다. 서둘러 간병인과 결혼식장을 빠져나간 도훈을 바라보며 수진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이날 방송은 ‘진실’로 향하는 수진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연극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도훈을 본 수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면 도훈은 활짝 웃으며 “많이 기다렸다. 올 줄 알았다”며 수진을 ‘유정’이라고 불렀다. 유정은 수진이 변장한 채 다른 여자인 척하려고 만든 이름이었다. 도훈은 자신이 늦어 어긋난 5년 전 약속을 마치 어제처럼 떠올리는 듯했다. 수진은 그런 그를 의아하게 바라봤고, 도훈도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교차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황급히 공연장을 빠져나간 수진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바람이 분다’의 1회부터 7회까지 수진만 이해하지 못한 도훈의 행동과 말이 흘렀고, 온몸에 힘이 빠진 수진은 항서와 수아를 찾아가 뜨거운 눈물과 더불어 원망을 쏟아냈다. “도훈이는 다 잊는다. 수진씨는 지금처럼 살며 된다”는 항서의 말에 수진은 “나는 잊지 못한다. 어떻게 잘 살 수 있느냐”고 주저앉아 버렸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는 도훈의 타박과 “어차피 때 되면 이혼해줄 거다. 나는 다 잊을 것”이라는 도훈의 대사와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서운해한 수진의 표정, 싸늘한 말들이 겹치면서 주저앉아 우는 수진의 모습이 더 애처롭게 느껴졌다.

감우성과 김하늘은 눈빛의 미세한 떨림, 표정 변화만으로 인물의 상태와 감정을 전달했다. 김하늘은 8회에 나오는 수진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 1~7회의 수진을 철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감우성은 잠깐 사이에 확 달라지는 얼굴의 움직임으로 도훈의 기구한 삶을 제대로 표현했다. 시작부터 자신이 맡은 역할의 옷을 입고, ‘큰 그림’을 그린 두 배우의 시너지는 굉장했다.

다시 만날 때마다 오랫동안 연습이라도 한 듯 “오랜만이다”며 웃는 도훈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며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천진난만해 철부지같았던 수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혼자 남겨질 수진을 걱정하며 매일 술을 마시고, 허공을 향해 소리치던 도훈의 얼굴에 있던 그림자가 그에게 옮겨갔다. 그러면서 ‘바람이 분다’는 2막을 열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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