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 사진=JTBC ‘라이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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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라이프’의 예진우(이동욱)는 지키는 사람이자 바꾸려는 사람이다. 상국대학병원을 영리단체로 만들려는 화정그룹으로부터 병원을 지키려 하고, 시스템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허물을 정당화하고 숨기려는 병원의 폐단을 바꾸려 한다. 그는 항체인 동시에 항원이다. 그의 싸움은 대부분 무모하고 종종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싸움이기도 하다. 예견된 파멸을 하루라도 늦추려면 싸우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라이프’는 상국대학병원을 영리 기관으로 만들려는 화정그룹과 이에 맞서는 의료진의 모습을 통해 병원 안팎의 적폐를 폭로한다. 진주의료원 폐원, 병원 영리 자회사 허용,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등 공공의료 파괴 행위가 곳곳에서 언급됐다. 암센터의 투약 실수를 다룬 에피소드는 2016년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 은폐를 떠올리게 만든다. 김태상(문성근) 부원장이 대리 수술을 묵인했다가 직무 정지를 당한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몇 주 뒤에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어깨 수술을 대신했다가 환자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 안에서 개인의 옳은 선택은 무엇인가. ‘라이프’는 묻는다. 구승효(조승우)는 “나는 그냥 내 일을 할 뿐”이라며 상국대학병원 안에 화정그룹의 자본을 침투시킨다. 의사들은 “상급병원은 공공재”라며 그에게 맞선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권력욕이나 권위주의, 엘리트주의가 감춰져 있다. 화정그룹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새글21의 권 기자는 일견 정의로워 보이지만 그럴듯한 뉴스를 위해 제보자 이정선(안은지)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이정선을 부검해 진실을 밝혀달라는 새글21 기자들의 간청은 그것이 정의여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는 있다. 하지만 누구의 행동도 완벽한 정의나 선을 이루지 못한다.

/ 사진=JTBC ‘라이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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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의 원인을 시스템에서 찾는다. 김은아(이상희)는 간호사들의 태움을 문제 삼는 선우창(태인호)에게 “너무 힘들어서 그러잖아요”라고 답한다. 이상엽(엄효섭)이 투약 사고를 은폐한 이유를 설명할 때도, 김태상이 대리 수술을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을 때도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시스템 안에서 무력해진 개인은 결국 포식자로서의 시스템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이다.

개인이 적폐를 부수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라이프’는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대사는 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미래의 의료기관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가진 자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곳이 될 거라고.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나 버틸 것인가. 기본이 변질되는 걸 얼마나 저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들 손에 달린 거겠죠, 이제.”라던 구승효의 말. 병원의 독자적인 운영을 위해선 독립재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예진우는 또 이렇게 말한다. “과정이 중요한 거 아닐까요? (중략) 돈 모으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면 수십 년만큼의 저항이 되니까.” 예정된 질식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의 도래를 하루씩 늦추는 건 가능할 거라고, ‘라이프’는 구승효와 예진우의 입을 빌려 말한다.

데뷔작인 tvN ‘비밀의 숲’으로 마니아를 구축하고 백상예술대상 TV 대상까지 타낸 이수연 작가는 이번에도 철저한 취재와 깊이 있는 메시지로 여느 드라마와 차별화를 이뤄냈다. 다만 이번에는 욕심이 과했다. 예진우·최서현(최유화), 이노을·구승효의 러브라인에 대한 원성이 컸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성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고 해석해도, 과한 분량과 이질적인 분위기로 몰입을 깨뜨린 건 분명하다. 시청자들을 빨아들일 동력도 부족했다. ‘비밀의 숲’이 박무성(엄효섭)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흡인력을 발휘했던 반면, ‘라이프’는 다양한 사건이 산발적으로 벌어져 산만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 때문일까. 1회에서 4.3%(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로 JTBC 드라마 사상 첫 방송 최고 기록을 세운 ‘라이프’는 마지막까지 4~5%대에 머물렀다. 다행히 최종회 시청률 5.6%로 유종의 미는 거뒀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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