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랜선라이프’에 출연하는 대도서관(왼쪽부터), 윰댕, 뉴이스트W JR, 이영자, 김숙, 밴쯔, 씬님. / 사진제공=JTBC
‘랜선라이프’에 출연하는 대도서관(왼쪽부터), 윰댕, 뉴이스트W JR, 이영자, 김숙, 밴쯔, 씬님. / 사진제공=JTBC
TV의 시대가 지고 있다는 데에 이견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TV 방송의 가장 강력한 대안은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1인 방송이다.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13~24세에 속하는 Z세대의 유튜브 이용 비율은 85%에 달한다. 이곳에서 방송하는 BJ(Broad Jockey), 요즘 말로 크리에이터 중 일부는 연간 수억 원대에 달하는 수입을 올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순위가 됐다.

지난 6일 첫 방송을 내보낸 JTBC ‘랜선라이프 -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이하 ‘랜선라이프’)는 크리에이터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현직 크리에이터들과 크리에이터 꿈나무들에게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랜선라이프’는 그동안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졌던 그들의 수입이나 유명인사로서의 화려한 삶, 또는 놀이 같은 일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완성시키기 위한 노력과 그들이 감수해야 할 고충을 보여줬다. 게임 방송을 주로 하는 대도서관의 입을 빌려 크리에이터로서 갖춰야 할 철학을 전하기도 했다.

인기 크리에이터 밴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대도서관, 씬님, 윰댕. / 사진=JTBC ‘랜선라이프’ 방송화면
인기 크리에이터 밴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대도서관, 씬님, 윰댕. / 사진=JTBC ‘랜선라이프’ 방송화면
가령 이날 방송에서 밴쯔는 ‘먹방’을 위해 하루 최소 5시간, 많게는 12시간씩 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방송 특성상 체중 조절과 건강관리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 하루 대부분을 운동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씬님은 자신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원 브랜드 메이크업(하나의 브랜드에서 구매한 화장품으로 화장하는 것) 방송을 위해 밤을 꼬박 지새우며 일했다. 한 번의 방송을 위해 수십, 수백 만 원어치 화장품을 사기도 했다. 그는 “재밌게만 보이는 삶이 사실은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부부인 대도서관과 윰댕은 1인 방송이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줬다. 신장 기능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방송을 계속해야 했다던 윰댕은 “약 때문에 얼굴이 점점 붓자 ‘성형하고도 돈 벌려고 방송 켰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고민 상담 방송을 주로 하는 그에게 이와 같은 반응은 특히 더욱 치명적이었겠지만, 윰댕은 오히려 자신이 배운 것을 시청자들에게 다시 나눴다. 유명인이어서 치러야 했던 어려움을 자신의 또 다른 무기로 승화한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대도서관이 최근 자서전을 발간한 기념으로 연 북 콘서트에서 한 말이다. 그는 “1인 방송을 하게 된다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라. 꼬깃꼬깃 구겨져 있던 취미 생활을 발견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단골손님들이 생기고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걸 느끼는 거다. 그게 바로 성취감”이라고 했다. 1인 방송이 가진 잠재력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한 이야기이자, 1인 방송을 단순한 돈벌이로 여겨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요즘 세태에 대한 경종이다.

‘랜선라이프’를 진행하는 뉴이스트W JR(왼쪽부터), 이영자, 김숙. / 사진=JTBC ‘랜선라이프’ 방송화면
‘랜선라이프’를 진행하는 뉴이스트W JR(왼쪽부터), 이영자, 김숙. / 사진=JTBC ‘랜선라이프’ 방송화면
한 가지 더. ‘랜선라이프’의 진행자들도 눈여겨볼만 하다. 남성 MC들이 방송을 장악했다는 성토가 분분한 가운데 개그우먼인 이영자와 김숙에게 진행을 맡겼다. 이 또한 방송가의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다. 비보티비라는 채널로 1인 방송 제작을 시작한 김숙과 1인 방송에 무지한 이영자, 그리고 1인 방송의 열혈 팬인 그룹 뉴이스트W JR의 조합은 크리에이터를 향한 각 세대의 시선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자신의 대항마인 인터넷 방송을 주제로 삼는다는 것이 TV 방송을 만드는 제작진과 방송사에겐 다소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훨씬 일찍 나왔어야 할 ‘랜선라이프’ 같은 프로그램이 이제야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랜선라이프’는 방송 플랫폼 혁명이 태동하는 시점에서, 죽어가는 TV 방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인터넷을 통한 1인 방송이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추구하고 조심해야 할지 알려줬다. 1인 방송의 가장 큰 약점인 공익성을 TV는 여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방송 혁명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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