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사진=SBS ‘피고인’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피고인’ 방송화면 캡처
행복과 절망을 오간 지성과 선과 악을 오간 엄기준. 이들의 무르익은 극과 극 연기가 ‘피고인’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지난 23일 첫 방송된 SBS ‘피고인’(극본 최수진, 연출 조영광)은 가족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검사 박정우(지성)가 잃어버린 4개월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펼치는 투쟁과 차민호(엄기준)을 상대로 벌이는 복수를 그린 드라마다.

이날 방송에서는 4개월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채 ‘사형수 3866’이 되어 감방에서 깨어난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박정우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내와 오붓하게 딸의 생일 파티를 열어줬던 기억만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가족을 찾았다. 하지만 같은 감방의 죄수들은 “네가 죽여버렸잖아. 이 방에 온 지만 석 달 째여”라며 혀를 찰 뿐이었다.

박정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전화를 요청했다. 죄수와 간수들은 여기가 호텔인 줄 아냐며 툴툴댔지만 결국 손에 전화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음성 안내만 들려왔고, 이내 그는 폭주해 독방에 갇히게 됐다.

기억도 없어진 데다 자신이 가족을 죽였다는 주변의 말을 들어야 하는 절망을 표현하는 지성의 연기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어제 분명 집에서 잠들었어..내가 지수랑 하연이를 죽였다는 게 말이 안 되지”라고 중얼거리다 “왜”라고 왜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열의 단계를 지나 다시 “나에겐 하연의 생일이 4개월 전이다. 나는 지수와 하연을 죽인 사형수가 되어있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엔 아무런 기억도 없다”며 멍한 눈빛으로 독방의 벽을 응시하는 지성의 연기는 극적이면서 진정성 있었다.

차명그룹 망나니 차민호와 그를 위해 벌도 대신 서주고 시험도 쳐 준 착한 형 차선호를 연기한 엄기준의 1인 2역 연기 또한 극의 중요한 축이었다.

지난 19일 열린 ‘피고인’ 제작발표회에서 엄기준은 처음에 1인 2역을 제대로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명이 가진 복합적인 성격도 잘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말마따나, 형을 죽인 후 형의 옷을 입고 안경을 쓴 차민호는 차선호였지만, 동시에 차민호였다.

첫 방송 후반부에 이르러 ‘차선호가 된 차민호’를 연기하며 끝내 사망하게 된 차선호를 붙들고 오열하는 엄기준의 연기는 그야말로 강렬했다. 심증만 갖고 있는 박정우를 제외한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통곡했지만, 입은 웃고 있었던 것.

사랑이 가득했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남자를 연기한 지성과 전혀 다른 쌍둥이 형제를 입체적으로 연기한 엄기준. 이들이 선사할 팽팽한 대립 구도는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감을 높인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