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지진희
지진희
“로맨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늘 키다리 아저씨같이 선했던 지진희가 어느 순간 ‘국민 불륜남’으로 등극했다. 굉장히 부정적인 별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욕하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진희의 별명은 이내 ‘국민 로맨스남’으로 바뀌었다. 지진희는 어떻게 오명을 벗고 ‘국민 로맨스남’으로 등극하게 된 걸까. 답은 SBS ‘애인있어요’에 있었다. 최진언 역으로 열연 중인 지진희는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날 지진희에게서 ‘애인있어요’ 속 오명에 대한 해답과 중년 로맨스에 대한 소신을 들을 수 있었다.

Q. ‘국민 불륜남’으로 초반 욕을 많이 먹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지만. ‘국민 로맨스남’로 등극했다. 참 드문 경우다. 비결은 무엇인가?
지진희 : 처음 ‘애인있어요’ 기자회견(지난 10월 15일) 당시, 다들 불륜남이라고 해서 아니라고 우겼던 기억이 난다. 원래 시놉시스가 그랬다. 나는 오로지 해강만을 사랑하는 캐릭터였다. 이제야 해강이랑 왜 헤어지게 됐는지 설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 초반 설리와의 관계만을 보면 바람처럼 보였겠지. 사실 진언은 지치고 지쳐서 기대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는데 마침 설리가 있던 거였다. 지금 참 설리에게 미안한 상황이 돼 버렸다. 설리 또한 순수한 마음이었다. 설리와의 관계가 참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불륜 느낌이 너무 세 버리면 우리 드라마가 왜곡되는 거니까. 진짜 진언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니까 집중했다. 이런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 우리 드라마를 봐주시는 분들은 30대 이상이신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 나이 또래 분들이 드라마를 보시면서 깊게 생각해주신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시청자분들이 이해하실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런 부분을 이해해주시고 봐주셨기 때문에 인식이 변화한 것 같다.

Q. 불륜 설정 때문에 실제로도 욕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지금은 시선이 좀 달라졌나?
지진희 : 실제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어제도 우리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아주머니가 잘 보고 있다고 하시더라. 아주머니의 눈빛을 봤는데 정말 잘 보고 계신 것 같더라. (웃음)

Q. 최진언이라는 캐릭터가 극적인 상황을 참 많이 겪었다. 감정도 슬펐다가, 기뻤다가 극과 극을 달렸다. 연기하면서도 어려운 캐릭터였을 것 같은데.
지진희 : 진언이 정말 그랬다. 이 모든 게 쉽게 겪을 감정은 아니잖아. 이런 경우에는 상대 배우가 아주 중요하다. (김)현주의 몫이었다. 해강이가 나한테 모질게 굴고 사랑을 줬기 때문에 고스란히 감정이 나온 것 같다. 그 점에 있어서는 현주에게 너무 감사하다. 또, 대본도 굉장히 공감됐다는 점이 도움이 컸다. 사실 기억을 잃고, 사랑을 찾고…이런 일들이 일상은 아니잖아. 보통의 드라마는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과정을 그려내는데, ‘애인있어요’는 불륜이 먼저 시작된다. 나중에 뭘 더 얘기할건지 걱정되기까지 하더라. 그 이후를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정말 잘 풀어내주셨다. 걱정과는 달리 앞으로도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더라. 지금보다 더 극적인 감정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Q. 지진희란 배우는 본래 선하고 자상한 이미지잖아. ‘애인있어요’에서도 이미지의 힘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본인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 같고. 별다른 부담감은 없었나?
지진희 : 내 이미지를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웃음) 아마 그런 부분이 충분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보시는 분들이 “어휴, 저 놈은 저러고도 남을 놈이야”라고 해주셨겠지. 하하. 아마 지금 같은 반전은 없었을 거다. 작가님, 감독님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한테 적극적으로 진언 역할을 제안해주셨고. 나 역시도 누가 봐도 뻔한 캐릭터는 연기하기 싫더라. 그런 점에 있어서 ‘애인있어요’는 재미가 있다. 단순한 내용이 아니잖아. 또, 지금 내 나이에 이렇게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어른들이 볼 수 있는 로맨스 드라마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 로맨스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늘 존재하니까. (웃음)
HB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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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초반 최진언은 설리에게 끌렸다, 지금은 다시 해강에게 갔다. 물론 내면엔 해강을 사랑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런 점에서 설리와 해강에겐 참 이기적인 남자다. 남자로서 본 최진언은 어떤가?
지진희 : 이 자식은 정말…(일동 웃음) 최진언 같은 남자는 남자들은 다 싫어할 거다. 기본적으로 난 누구한테 피해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우유부단한 남자도 싫고. 진언은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내가 진언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한 가지였다. 해강이에 대한 사랑. 진언에게 해강이는 태양과도 같다. 나의 태양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진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설리에겐 굉장히 미안하다. 실제로도 (박)한별을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다’라고 말한다. 하하.

Q. 시청률이 폭발적인 반응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출연 배우로서 시청률이 낮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진희 : 내년부터 시청률 조사방식이 바뀐다고 하던데 그때 한 번 기대를 해봐야하지 않을까. (일동 웃음) 시청률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인 것 같다. 야구 결방도 있었고. 사실 요즘 드라마를 온전히 보는 분들이 많이 없잖아. 일도 있고, 애도 있고, 남편도 있고, 애인도 있고. 바쁘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온라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사실 시청률을 떠나서 이렇게라도 챙겨서 봐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울 뿐이지. 그래도 드라마를 시작할 때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다행히 3%에서 9%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끝까지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뻔한 얘기일 수 있는데, 요즘엔 정말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다들 으?으?하고 있다. 방송국 입장에선 시청률의 의미가 크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즐겁게 보고 있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크지 않다. 그냥 얼마나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있다.

Q. 김현주의 상대배우로서 독고용기, 도해강, 기억을 잃기 이전의 도해강까지. 모든 김현주를 만났다. 김현주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본 배우로서 느낌이 어땠나?
지진희 : 감독님이 현장에서 거의 현주를 끌어안고 사신다. 너무 예쁘고 잘한다고. 내가 감독이라도 그럴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1인 4역을 거부감 없이 소화해내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정말 손에 꼽겠지. 김현주를 도해강을 맡은 건 완벽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김현주의 큰 장점은 상대배우를 빛나게 해준다는 거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배우와 어우러져 신을 이끈다. 이건 아마 나 말고도 많은 배우들이 느끼는 바 일거다. 보통 나를 더 드러내려고 하고, 돋보이게 하려고 하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말 현명하고 똑똑한 배우지. 김현주와 나는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SBS, 2004)에서 만났다. 그 후 10년여만에 ‘애인있어요’로 재회했다. 그때도 호흡이 정말 좋았다. 다시 만나니 더 좋더라. 그럼 나중에 또 만난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벌써부터 다음 재회가 기대되는 배우다.

Q. 멜로연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지진희 만의 멜로연기 비결은 무엇인가?
지진희 : 개인적으로 나는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전보다 나아졌을 뿐이지. 다행스러운 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거다. 난 연기를 다른 배우들처럼 전공을 한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연기에 대해) 잘 모른다.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드라마는 내 나이 또래의 얘기를 할 수 있어서 더 편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시청자분들도 그런 점을 높게 봐주시는 것 같다.

Q. 실제 아내는 드라마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지진희 : 혼 많이 났다. 자꾸 나한테 뭐라 그런다. 진짜 나쁜 놈이라고. 그것도 반말로. (일동 웃음) 사실 충분히 공감한다. 하하.
HB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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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진희의 30대 대표작에는 MBC ‘대장금’이 있다. 40대 대표작으로 ‘애인있어요’를 꼽을 수 있을까?
지진희 : 그건 잘 모르겠다. 아직 40대가 좀 남았기 때문에. (웃음) 지금까진 맞는 것 같다.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들이 부족했다는 건 분명 아니다. 전작들이 있었기 때문에 ‘애인있어요’의 최진언이 존재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장금’ 같은 경우는 내 드라마라고 볼 순 없다. 이병훈 감독님의 작품이지 내 작품이라고 생각 안한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이번 드라마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작가님이랑 얘기 많이 하고 ‘왜 이랬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대본이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워서 공부를 많이 했다. 지진희를 알린 공이 큰 작품은 ‘대장금’이겠지만, 내가 스스로 꾸려간 작품은 ‘애인있어요’가 맞는 것 같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
지진희 : 멜로는 끊임없이 하고 싶다. 나이가 든다면 나이에 맞는 로맨스가 분명 있을 것이다. 멜로하고 싶다. 그 다음엔 액션을 해보고 싶다. 액션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하하.

Q. 40대에 다시 ‘애인있어요’로 많은 여성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40대 ‘멋짐’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지진희 : 나는 스물여덟 살에서 나이 먹는 걸 멈췄다고 생각한다. (김)현주 씨랑 얼마 전에 얘기했는데, 같은 생각이더라. 하하. 둘이 ‘왜 스물아홉일까’ 생각을 해보니 서른은 당시 너무 슬펐던 기억이 있고, 스물아홉은 아홉수니까 스물여덟으로 정한 것 같다. 우리한텐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인거지. (웃음) 그 나이에 멈췄다고 생각하고 운동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나태해지는 고비는 물론 반복적으로 오겠지. 그걸 넘어서고 성장하고 있는 거다.

Q. 지금까지 지진희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다양한 사랑 얘기를 많이 해왔다. 그렇다면 지진희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지진희 : 이건 주관적인 내 생각인데, 살아보니까 상대방의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다. 남녀가 처음 만나면 서로 알려고 노력하잖아. 그때 알게 된 사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 그때 종종 문제가 생기더라. 그대로의 모습이 그냥 좋은 건데. 나이 들면서 ‘너한테 이런 면이 있었구나’라면서 차차 알아가는 게 재밌더라. 초반에 다 알아버리면 재미없으니까. 너무 많이 알려고 하는 욕심이 화를 부르지 않나 생각한다. 이건 사랑뿐만 아니라 공부도 마찬가지다.(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왜 모든 걸 다 배워야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짧은 시간이잖아. 하하.

[‘애인있어요’, 잘 보고있어요 ①] 로맨스, 잘 보고 있나요?
[‘애인있어요’, 잘 보고있어요 ②] 지진희가 논하는 40대의 로맨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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