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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드라마에 있어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소재가 있다면? MBC ‘종합병원’(1994)으로 시작해 어느덧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의학드라마’는 참패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수 흥행작을 낳았다. 특히 의학드라마의 영역에서 MBC의 역량은 놀라울 정도다. ‘의가형제’ ‘해바라기’ 등의 초기작부터 본격적인 의학드라마 붐을 불러온 ‘하얀거탑’ ‘뉴하트’ ‘골든타임’까지 다양한 색채를 띤 작품들이 등장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2013년 10월 9일, MBC가 야심 차게 준비한 새 의학드라마 ‘메디컬 탑팀’이 베일을 벗었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의료협진 드림팀’의 이야기를 다룬 ‘메디컬 탑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메디컬 탑팀’은 준비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지도 못한 채 수목극 전장의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메디컬 탑팀’은 이대로 ‘MBC 의학 드라마 불패신화’를 깨트리는 사례로 남을 것인가. 혹평과 무관심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메디컬 탑팀’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1단계: 의식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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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탑팀’은 연출을 맡은 김도훈 PD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기존의 의학드라마와는 다른 색감의 드라마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의학드라마이면서 의학드라마 같진 않은 드라마, 그 쉽지 않은 첫걸음은 촬영 장소 선정에서부터 시작됐다. 흔히 ‘의학드라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무채색 하얀 톤, 소독약 냄새,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술 도구 등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메디컬 탑팀’은 구조적으로 신선하고 남다른 색감을 자랑하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촬영지로 택했다.

또 등장인물들이 수술실과 회의실을 오가며 머리만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진행하는 현대화된 의료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배양한 세균을 확대 촬영해 영상 곳곳에 삽입하기도 한다. 어차피 보고 들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의학 용어라면 시각적으로 어떤 ‘느낌’을 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태블릿 PC로 진단부터 경과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선보이는 ‘탑팀’ 멤버들, 이 드라마 분명히 의식 있다.

2단계: 가슴 압박 30회 시행

생명을 다루는 외과 계열의 의사들이 사랑을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며, 갈등을 조장하는 인물과의 갈등이 특정인물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해소된다는 이야기. 이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의학 드라마의 제한적인 틀 속에서 작품만의 독특한 색채를 드러내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바로 배우들의 연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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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메디컬 탑팀’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인상적이다. 드라마 기획단계 당시만 하더라도 ‘메디컬 탑팀’은 ‘의학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을 모두 모아 놨다’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메디컬 탑팀’의 인물 속으로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간 배우들의 연기는 오히려 극에 새로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미스 캐스팅’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박태신 역의 권상우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시청자에게 ‘의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과·외과에 통달한 특이한 이력의 능력자라는 설정도 ‘파란병원’을 지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에 설득력을 더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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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족보상 형수이자 병원의 부원장인 신혜수(김영애)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주지훈의 연기도 날이 서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현실 속에 자신의 야망과 시한폭탄과도 같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의 연기는 ‘주지훈’이란 배우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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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려원. 어느덧 걸그룹 샤크라의 멤버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질 정도로 연기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 그녀는 ‘메디컬 탑팀’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하며 극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기존의 의학드라마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여성의 지위를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었던 데는, 그녀가 맡은 서주영 역이 단순히 ‘의사’라는 기능적인 역할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성공에 대한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신혜수 부원장을 구워삶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모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주연 배우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것, 아직 ‘메디컬 탑팀’의 생존 가능성은 열려 있다.

3단계: 인공호흡

“다 캐스팅 해놓고 보니 한 공간에서 오래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느낌이 나오더라. 나는 시대성만큼 공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배우들에게는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느낌이 나왔고 그런 느낌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하려 했다” 김도훈 PD의 말처럼 ‘탑팀’과 이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에게서는 꾸며내지 않은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느껴진다. 감초 연기자들의 존재가 ‘메디컬 탑팀’에 또 다른 동력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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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진 역의 오연서는 ‘메디컬 탑팀’을 통해 그간 작품들을 통해 선보였던 당차고 밝은 여성의 느낌에 한 가지 양념을 더했다. 실의에 잠긴 박태신 선생과 동료 김성우(민호)를 위로할 만큼 성숙한 내면을 지닌 여성의 모습이 바로 그것. 오연서는 ‘탑팀’ 속 ‘힐링의 여신’으로 등극하며 극에 따뜻한 사람 냄새를 묻어나게 하면서 성우와의 미묘한 로맨스를 통해 ‘메디컬 탑팀’에 청춘 드라마와 같은 감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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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배우들의 삼각관계 외에 또 다른 복잡 미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이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여민지 간호사 역의 조우리는 극 중 민호와 정훈민 선생(김기방)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며 통통 튀는 느낌을 더한다. 김기방은 ‘뺀질이’ 배상규 선생(알렉스)과 호흡을 맞춰 시트콤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연출하는가 하면, 조준혁 선생(박원상)과 유혜란 간호사(이희진)은 ‘사랑의 김밥’을 계기로 새로운 커플의 탄생을 예고했다. 주연 배우들의 호연과 감초 연기자들의 깨알 재미가 더해진다면? ‘메디컬 탑팀’의 맥박이 희미하게 뛰는 것이 느껴진다.

4단계: 가슴 압박, 인공호흡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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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6년 만에 돈벌이 의료를 중단, 공공의료 강화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질 높은 의료 행위’와 ‘과중한 의료비 부담’, 의료 민영화를 놓고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메디컬 탑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메디컬 탑팀’이 의료 민영화를 풀어내는 방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탑팀’은 단순히 신혜수 부원장이 바라는 것처럼 럭셔리한,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을 위해 구성된 ‘의료협진 드림팀’이 아니다. 두 가지 이상의 복합질환에 대해 공동 연구의 효과를 노리며 성공률이 지극히 낮은 수술의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것, 의료 행위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최고의 실력자들이 ‘탑팀’에 합류한 이유다.

‘탑팀’은 계속해서 신혜수 부원장과 의료 청탁을 놓고 마찰을 빚는 상황은 ‘의료 민영화’에 문턱에 다다른 우리의 현실과 닮은 구석이 있다. 박태신 선생은 줄곧 “내게는 모든 환자가 소중하다”고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하며 한승재 과장(주지훈)은 감정적으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탑팀’의 지속을 위해 이두경 회장(김성겸), 신혜수 부원장과 줄다리기를 계속한다. ‘메디컬 탑팀’이 의료 민영화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인물 군상을 통해 각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메디컬 탑팀’이 설득력 있게 최초로 의도했던 이야기를 끝까지 풀어낼 수만 있다면, 거친 숨을 몰아쉬던 ‘메디컬 탑팀’이 곧 안정적인 호흡을 찾을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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