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모습을 담은 어진
세종대왕의 모습을 담은 어진
세종대왕의 모습을 담은 어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매일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언어와 문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대중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대중문화에서의 국어사용 실태를 살펴보면 놀랍기 짝이 없다. 외국어·외래어의 남용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및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대사와 자막에서도 표기의 오류가 빈번히 발견된다. 언어 사용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위해 국어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세종대왕 한글 반포’ 567주년을 맞아서 지난 7, 8월 두 달간 7개 방송사에서 방송 중인 14개 프로그램에 대해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국립국어원의 지원으로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인하대학교 국어문화원, 경북대학교 국어문화원이 시행한 조사)가 발표한 방송 언어 조사 결과를 통해 2013년의 방송 언어 사용 실태를 확인해 봤다.

# 불필요한 외국어·외래어의 남용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지난 두 달간의 집계된 저속한 표현과 어문 규범에 위배되는 표현 1,423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외국어·외래어의 불필요한 사용 사례였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 KBS2 ‘해피투게더3’,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종합편성채널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외국어·외래어 남용이 두드러졌다. ‘룸 차지’, ‘비주얼 쇼크’, ‘셀프 디스’, ‘스킬’, ‘디스’, ‘클리어’ 등의 표현이 대사와 자막을 통해 방송됐다.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순화용어가 있음에도 외국어·외래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외국어·외래어 표기에 대해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올바른 국어사용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 은어 및 통신어의 사용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최근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위축과 함께 예능프로그램이 전체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며 방송프로그램에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표현이 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은어 및 통신어 사용의 증가다.

이러한 현상은 시청연령이 낮은 MBC ‘일밤-진짜 사나이’, SBS ‘런닝맨’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다. 영어를 비롯한 일본어 등 외래어의 남용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자층으로 등장함으로써 어원을 알 수 없는 게임 용어나 인터넷 채팅 용어들도 심심찮게 방송 자막에 사용되고 있다. ‘초긍정’, ‘싼티’, ‘짱’, ‘득템’, ‘조공도시락’, ‘누나보이’, ‘슈퍼갑’, ‘붐빠이’, ‘올킬’, ‘먹튀’ 등의 표현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러한 표현은 국민의 올바른 국어사용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언어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어문 규범에 위배되는 표현, 자막표기 오류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전국 국어문화원 연합회 방송 언어 조사 결과(국립국어원 제공)

자막표기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요즘 방송의 주를 이루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자막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자막이 시청자의 방송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보다는 단순히 재미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뜻 모를 유행어나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어문 규범조차 지키지 않은 자막이 버젓이 방송화면에 표시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언어순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로 방송 제작자들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주말에 가족들이 함께 시청하는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의 경우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가 대상인 만큼 한국어의 품격을 저해하는 저속한 표현을 자제하고, 정확하고 품격 있는 우리말의 사용이 절실하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관계자는 “매달 방송프로그램을 관찰한 결과 표현·표기에 오류가 있는 부분을 집계해 공문을 통해 제작진에게 전달하고 있으나, 사실상 이것이 반영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잘못된 언어사용에 대한 별다른 제재 방침이 없으므로 권고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라고 전했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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