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수)]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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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첫 날. 어김없이 귀성길 교통체증이 찾아온다. 제아무리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최첨단교통정보서비스 애플리케이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도, 이날만큼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이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 안에 있다 보면 민족 대이동이건 뭐건 신세한탄부터 하게 된다. ‘아, 빌어먹을 코리아!’ 앞에 끼어드는 새치기족을 만나면 ‘정정당당 코리아!’를 외쳐 보고도 싶다. 마침 마음껏 외치시라고 KBS2가 ‘코리아’(12시 10분)를 준비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어르신이라면, 북한 탁구 선수로 등장하는 배두나와 한예리의 구수한 사투리에 “어머니~!”를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1991년 남북탁구단일팀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KBS1은 명절증후군에 시달릴 주부들이 빙의할 만한 영화를 내놓는다. 하루 종일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시어머니 눈치보다보면 드는 생각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본 아이텐티티>(23시 40분)의 제이슨 본(맷 데이먼)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MBC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 보겠다며 <내 아내의 모든 것>(00시 40분)을 준비했다. 명절은 부부들의 사랑이 시험에 드는 날이다. 아내는 과도한 가사노동에 기진맥진인데, 남편은 안방에 8자로 뻗어 풍유를 즐긴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파경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내 아내의 숨겨진 매력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참에, 부부간 소통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추석은 친척들이 모여 사회현안부터 시시콜콜한 문제에 대해 잘난 척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KBS2가 준비한 (23시 10분)는 그러기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군대에서 여러 곤욕을 치른 비(정지훈)가 공군으로 나오는 영화이니, 많은 의견이 갑론을박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비만 괴롭게 됐다.

드라마 팬들이 추석이 싫은 이유? 특집프로그램으로 인해 챙겨보던 프로그램이 결방돼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결방되는 프로그램들이 속출했다. 이 중 팬들을 가장 분노케(?) 하는 건,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결방이다. ‘도둑들’(20시 40분) 방송으로 인해 ‘주군의 태양’이 하루 쉬어간다. 지난 여름 전국 천만 관객의 마음을 훔친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 ‘도둑들’이라 할지라도 ‘주군의 태양’ 팬들의 원성을 피해갈 수는 없을 듯하다.

[19일(목)] 재탕 영화가 판을 친다
목요일
목요일
19일 추석 당일. 싱글들에겐 명절만큼 피곤한 날도 없다. 결혼해라, 애인은 있냐, 그 나이 되도록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일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인 골드미스라면 <댄싱퀸>을 봐도 좋다. 외롭다고 덥석 결혼하기 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시장후보의 아내와 ‘댄싱퀸즈’의 리더로 이중생활 하는 엄정화의 열연이 아름답다. MBC가 준비한 한가위 영화는 ‘마이웨이’(23:20)다. 예상보다 흥행이 저조했던 작품인 만큼,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유효 시청자가 많다. TV 시청률에서는 선전할 수 있겠다.

KBS1은 전날 ‘본 아이덴티티’에 이어 ‘본 슈프리머시’(23시 40분)를 출격시킨다. 그렇다면 추석 다음 날은? 아니나 다를까. ‘본 얼티메이텀’도 대기시켜 놨다. 맷 데이먼 빠진 본 시리즈가 아쉬운 시청자에겐 시리즈 전체를 복습할 좋은 기회다. 제레미 레너 표 본 시리즈도 궁금하다면 케이블 영화 채널 캐치온으로 눈을 돌리시라. 20일 밤 11시에 ‘본 레거시’가 방영된다.

과식과 소화불량으로 잠이 오지 않는 이들이라면 내친김에 ‘평양성’(SBS 익일 01:10)까지 달리면 되겠다. 머리 비우고 볼 수 있는 코미디라 부담도 없다. 다만, ‘평양성’은 지난 설날에도 특집으로 방영된 영화라는 점이 아쉽다. 한마디로 이 영화, 재탕이다. 그러고 보니, ‘댄싱퀸’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일 KBS2 12:10), ‘내 아내의 모든 것’도 지난 설날에 이미 전파를 탄 영화들이다. 덕담 대신 ‘날로 먹으려 한다’는 충고 한마디 해주는 게 더 낫겠다.

[20일(금)] 내 쉴 곳은 TV 앞 뿐이니
금요일
금요일
추석 차례도 지냈겠다, 배도 불렀겠다, 슬슬 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자식 놈(혹은 언니 오빠 형 동생)들은 애인 만난다며 집 밖으로 사라진지 오래. 만나고 싶은 친구들은 전국 8도로 뿔뿔이 흩어졌고, 홀로 쇼핑을 하려니 문 연 가게가 별로 없다. 역시 ‘즐거운 추석은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TV 앞’뿐이리니. 다행히 고수들이 다 모였다. 연휴가 긴 탓에 추석 당일보다, 연휴의 중간인 금요일에 알짜배기 영화들을 배치한 느낌이다.

특히 밤 시간대에 뜨거운 시청률 전쟁이 예상된다. KBS2는 전국 할머니 어머니 누님 여동생들의 마음을 훔쳤던 송중기의 ‘늑대소년’(KBS2 23시)을 보름달이 살짝 기운 금요일에 내보낸다. 이를 견제하는 MBC의 편성도 만만치 않다. 올 상반기 흥행영화 ‘베를린’을 20분 먼저 내 보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다. 세 작품 모두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인 만큼, 집집마다 리모콘 전쟁이 예상된다. 아마, 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집은 ‘늑대소년’, 하정우의 매력에 빠진 20-30대 여성이 많은 집은 ‘베를린’을 보지 않을까 싶다.

[21일(토)] 부끄러운 줄 아시오!
토요일
토요일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과 헤어져야 할 날이 다가온다. KBS1은 ‘가족의 나라’(23시 10분)로 가족 간의 단합을 이끌어내겠다는 심사다. 원치 않는 이별에 아파 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웬수 같은 가족이라도 옆에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느끼게 된다. 명절에 정치 얘기가 빠지면 또 아쉽다. <광해, 왕이 된 남자>(KBS2 22시 25분)를 통해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해, 지난 대선에 대해, 그리고 최근 정치판에서 일어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황당한 사건 사고들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다만, 개봉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인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TK(대구·경북)보다 PK(부산·경남) 지역에서의 더 높은 시청률이 예상된다. 이유야 어쨌든 광해의 이 한 마디에 뜨끔할 분, 많겠다 싶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 임지혜 a984038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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