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보라! 데보라' 아우슈비츠 수용소 대사 논란
앞서 '닥터 차정숙'도 크론병 비하로 뭇매
'닥터 차정숙', '보라 데보라' 포스터./사진제공=JTBC, ENA
'닥터 차정숙', '보라 데보라' 포스터./사진제공=JTBC, ENA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무지함과 안일함이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들이 잇달아 대사 설정 논란에 휩싸였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크론병 비하 단어로 몸살을 앓았고, ENA 수목드라마 '보라! 데보라'는 역사적 비극을 외모 치장의 중요성으로 비유하는 과실을 저질렀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짤막한 사과와 영상 부분 삭제로만 끝난다는 점 역시 아쉽다.

최근 '보라! 데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일화를 외모 가꾸기로 비유해 논란이 됐다. 해당 대사는 9회에서 데보라(유인나 분)가 이수혁(윤현민 분)에게 외모 관리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됐다.
사진='보라 데보라' 방송 화면.
사진='보라 데보라' 방송 화면.
데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말이다. 자기 배설물 위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한 컵의 물을 받아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세수했다.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의 얼굴을 보면서 면도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이수혁이 "독서에 재미 좀 붙이셨나 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맞죠?"라고 하자 데보라는 "잡지에서 봤다"라고 답했다.

해당 방송 후 해외를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곳.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존엄성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했던 행위를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일과 연관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라 데보라' /사진제공=ENA
'보라 데보라' /사진제공=ENA
한 해외 시청자는 "평생 이런 비유를 들을 줄 몰랐다"며 "작가가 이걸 생각해냈고, 그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걸 승인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무지의 공포"라고 분노했다. 수용자들이 세수와 면도를 한 건 치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혈색이 좋아 보여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든 사람들은 가스실로 보내지는 잔인한 현실 앞에 최소한의 노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비극을 가십거리 삼아 빗댄 대사에 한국 누리꾼들 역시 거세게 지적했다. 대본을 받고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배우들에게까지도 화살이 쏟아졌다.

결국 '보라! 데보라' 측은 대사에 있어 신중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시각으로 언급했어야 했는데,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역사적 비극을 가볍게 소비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앞으로 제작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고 사과했다. 해당 대사가 언급된 장면 역시 전부 삭제됐다.
사진='닥터 차정숙'
사진='닥터 차정숙'
앞서 '닥터 차정숙' 역시 크론병을 '못된 병'이라고 칭해 문제가 됐다. 크론병 환자의 에피소드 중 병원을 찾아온 환자의 장인과 장모가 "어떻게 이런 못된 병을 숨기고 결혼을 할 수 있나. 이 병 유전도 된다면서"라며 비난한 것. 이에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장면도 등장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크론병은 유전이 아니다", "어린 환우들에게 상처 주는 드라마"라고 비난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수십건의 민원이 제보됐다. 시청률 18%를 돌파하며 신드롬적인 인기를 얻는 만큼, 드라마 속 왜곡된 인식을 안겨줄 수 있는 설정들에 신중을 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

이에 제작진은 "투병 중인 환자분들의 고통과 우울감을 가볍게 다루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환자를 몰아세울 의도로 발언한 대사가 특정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였다"고 고개 숙였다.

물론 처음부터 가볍게 다루기 위해 대본을 쓰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결과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됐고,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작가의 어설픈 지식 자랑과 연출자의 안일한 제작행태가 만들어낸 촌극이다. 직접 연기에 나선 배우들조차 문제 의식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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