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신파·재벌 로맨스에 길 잃은 '대행사'
신파·재벌 로맨스에 길 잃은 '대행사'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임원과 그를 둘러싼 사내 정치와 대립, 광고대행사의 전쟁터 같은 치열한 일터의 모습을 담으며 호평받았던 JTBC '대행사'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길을 잃었다.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신파 요소가 추가되고 재벌 3세와 비서의 로맨스를 비중 있게 다루며 이보영의 분량을 잡아먹고 있다. 웰메이드에서 그저그런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고 있는 '대행사'의 현주소다.

문제도 있었다. 고아인은 그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술과 약, 담배에 의존하며 우울, 불안장애, 공황, 불면증에 시달렸고, 복용했던 졸피뎀 때문에 몽유병 부작용도 생겼다. 여기에 VC그룹 재벌3세 남매의 후계 싸움에도 끼게 됐다.
그러나 고아인이 누군가. 300억 광고로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라는 여론을 형성해 우원회장의 보석 허가를 받아내면서 VC그룹 왕회장 강근철(전국환 분)에게도 신임을 얻었고, 공약으로 내건 6개월 안에 매출 50% 상승도 어렵지 않게 성공할 듯 보인다. 1년 계약직 얼굴 마담 임원이 아닌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 역시 멀지 않아 보이는 상황.

자신의 말로는 일주일만 옆에서 지켜보다가 떠나려고 했다는 서은자. 그러나 청소를 하며 누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우리 딸"이라고 말해 고아인의 비서 정수정(백수희 분)에게 바로 정체를 들키고, 무릎까지 꿇어 정수정을 난처하게 만드는 민폐까지 저질렀다. 고아인에게도 일부로 들키고 싶었던 것 마냥 팔찌를 건네기도. 아무리 가정 폭력 피해자라고 하나 딸의 인생은 나몰라라 하고 버린 채 35년 동안 찾지 않은 것이 서은자의 현실.
그러나 '대행사'는 VR 기술을 통해 죽은 딸을 다시 만나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광고에 빗대어 고아인이 서은자를 너무나도 쉽게 용서하게 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남들과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고아인이 서은자의 집을 찾아와 밥 먹고 가라는 한 마디에 밥을 먹지 않는가.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는 '대행사'. 그러나 후반부에 갈수록 이보영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에 분량과 포커스가 맞춰지고, 뻔하고 신파적인 내용이 담기면서 재미를 잃고 있다. 종영까지 6회만을 남겨놓은 상황 속, 또 하나의 용두사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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