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신파·재벌 로맨스에 길 잃은 '대행사'
'대행사' 메인포스터./사진제공=JTBC
'대행사' 메인포스터./사진제공=JTBC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임원과 그를 둘러싼 사내 정치와 대립, 광고대행사의 전쟁터 같은 치열한 일터의 모습을 담으며 호평받았던 JTBC '대행사'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길을 잃었다.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신파 요소가 추가되고 재벌 3세와 비서의 로맨스를 비중 있게 다루며 이보영의 분량을 잡아먹고 있다. 웰메이드에서 그저그런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고 있는 '대행사'의 현주소다.
'대행사' 스틸컷./사진제공=JTBC
'대행사' 스틸컷./사진제공=JTBC
'대행사'는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보영 분)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리는 오피스물이다. 누구보다 실력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던 고아인은 얼굴 마담으로 VC기획 제작본부장 상무로 승진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출 50%를 올리기 위해 달려왔다.

문제도 있었다. 고아인은 그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술과 약, 담배에 의존하며 우울, 불안장애, 공황, 불면증에 시달렸고, 복용했던 졸피뎀 때문에 몽유병 부작용도 생겼다. 여기에 VC그룹 재벌3세 남매의 후계 싸움에도 끼게 됐다.

그러나 고아인이 누군가. 300억 광고로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라는 여론을 형성해 우원회장의 보석 허가를 받아내면서 VC그룹 왕회장 강근철(전국환 분)에게도 신임을 얻었고, 공약으로 내건 6개월 안에 매출 50% 상승도 어렵지 않게 성공할 듯 보인다. 1년 계약직 얼굴 마담 임원이 아닌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 역시 멀지 않아 보이는 상황.
사진=JTBC '대행사' 방송 화면.
사진=JTBC '대행사' 방송 화면.
그러나 반환점을 돈 '대행사'는 고아인의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이유 아래 7살 때 그를 버린 엄마를 투입시키며 억지 신파를 이끌어냈다. 고아인 엄마 서은자(김미경 분)은 가정 폭력으로 인해 살기 위해 도망친 인물. 그러나 딸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35년 만에 고아인의 회사에 청소 도우미로 출근한다.

자신의 말로는 일주일만 옆에서 지켜보다가 떠나려고 했다는 서은자. 그러나 청소를 하며 누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우리 딸"이라고 말해 고아인의 비서 정수정(백수희 분)에게 바로 정체를 들키고, 무릎까지 꿇어 정수정을 난처하게 만드는 민폐까지 저질렀다. 고아인에게도 일부로 들키고 싶었던 것 마냥 팔찌를 건네기도. 아무리 가정 폭력 피해자라고 하나 딸의 인생은 나몰라라 하고 버린 채 35년 동안 찾지 않은 것이 서은자의 현실.

그러나 '대행사'는 VR 기술을 통해 죽은 딸을 다시 만나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광고에 빗대어 고아인이 서은자를 너무나도 쉽게 용서하게 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남들과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고아인이 서은자의 집을 찾아와 밥 먹고 가라는 한 마디에 밥을 먹지 않는가.
사진=JTBC '대행사' 방송 화면.
사진=JTBC '대행사' 방송 화면.
여기에 강한나(손나은 분)와 박영우(한준우 분)의 로맨스 분량이 커지면서 극의 중심도 흔들리고 있다. 재벌 3세와 머슴의 로맨스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들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박영우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멀어지려는 상황. 두 사람의 로맨스는 절절하지만, 강한나의 성장 스토리를 위해 설정한 로맨스는 오히려 독이 됐다. 재벌 여자와 가난한 남자의 로맨스는 막장 드라마서도 많이 봐왔던 플롯이기 때문. 고아인과 강한나가 서로를 이용하고 대립하는 워맨스가 '대행사'의 강점이었는데, 로맨스가 뿌려지면서 이보영의 분량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는 '대행사'. 그러나 후반부에 갈수록 이보영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에 분량과 포커스가 맞춰지고, 뻔하고 신파적인 내용이 담기면서 재미를 잃고 있다. 종영까지 6회만을 남겨놓은 상황 속, 또 하나의 용두사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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