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진의 프리즘》

예능 제작진의 '묻지마 폭로'
형태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가해자'
개그맨 임성훈, 배우 고은아./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텐아시아DB
개그맨 임성훈, 배우 고은아./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텐아시아DB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현황을 살핍니다. 프리즘을 통해 다양하게 펴져 나가는 빛처럼 이슈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익명 뒤에 숨은 ‘폭로 예능’이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사실상 보도에 가까운 폭로가 ‘크로스체크’(교차 확인) 없이 방송을 통해 퍼지고 있다.

화제성을 위한 제작진의 의도라면 ‘조작 방송’이라는 해석을 피할 수 없다. 한쪽 편의 일방적인 주장을 가지고 특정인을 고발하는 형태의 방송. ‘사실’이라는 베이스에 ‘예능’이라는 타이틀을 입혀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양새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서들은 네티즌 수사대를 움직인다. 폭로 속 주인공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 지목되기도 하고, 나아가 소송전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 28일 채널A, ENA채널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에선 십수 년째 양육비를 수천만 원이나 미지급하고 있는 연예인 남편을 고발하는 아내의 사연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A 씨는 자신이 유명 개그맨 B 씨의 전 아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 씨가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면서 여성 스태프와 불륜을 저질렀으며,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폭력에 지친 A 씨는 양육비 지급과 친정엄마에게 남편이 빌린 8000만 원의 빚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이혼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B 씨는 4년간 양육비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고 잠적했으며, 이후 연예계 활동을 접고 사업으로 대성공해 최고급 아파트에서 상간녀와 아이까지 두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사진= 채널A, ENA채널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방송 화면 캡처
사진= 채널A, ENA채널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방송 화면 캡처
‘유명 개그맨의 아내’라는 워딩 아래 불륜, 폭력, 배드파파 등의 자극적 소재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급기야 일부 누리꾼들은 방송 이후 ‘배드파더’ B 씨의 정체를 추측하고 나섰고, 이 과정에서 해당 사건과 상관없는 이름이 다수 거론되며 2차 피해로 이어졌다.

이후 네티즌 수사대의 끈질긴 조사로 B 씨의 정체가 밝혀졌다. 방송사 공채 개그맨, 이혼 후 재혼, 사업가 변신 등 여러 단서로 인해 ‘배드파파’가 임성훈으로 좁혀진 것. 그러자 임성훈은 90%의 거짓말로 만들어진 방송이라며 채널A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개그맨 박성광은 ‘배드파더’로 지목된 임성훈과 친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다. 그는 SNS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며 누군지도 모른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 전부이니 무분별한 추측성 댓글 자제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정작 논란에 불씨를 지핀 ‘애로부부’ 측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입장이다. 제작진 측은 29일 텐아시아에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끔 추측은 자제해달라”고 전하면서도, 사연자가 누군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형태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폭로. 속 시원히 밝힐 수 없는 제작진의 입장도 이해 가는 바이나, 방송 이후 파장을 예상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지난 2월, 배우 고은아는 방송에서 연예인 동료들로부터 받은 피해를 폭로했다. 채널S '진격의 할매'에 출연한 그는 과거 유일하게 친했던 연예인 동료 A가 자신의 월세금, 화장품, 회사 캠코더 등을 훔쳤다고 고백했다. 이를 들은 김영옥은 “도둑년이구먼”이라며 분노했다.

연예인 중에 친한 사이가 별로 없다는 고은아는 계속해서 A에 대한 힌트를 제공했다. 도둑질이 의심된다는 A는 자신보다 연상이며, “러블리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고은아보다 나이가 많고, ‘러블리’한 이미지나 별명을 가진 여자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가장 억울한 건 폭로와 관계없이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된 이들이다. 폭로 당한 당사자마저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운데, 뜬금없이 ‘가해자’로 몰려 어리둥절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호소할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진의 무책임한 ‘묻지 마 폭로’는 온라인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과 다를 바 없다.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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