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최근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임신'. 그동안 청소년·미혼모·대리모 임신과 낙태, 그 안에서 생겨나는 고민과 갈등은 꽤나 자세히 묘사되곤 했다. 오랜 시간 낙태죄를 유지해왔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엄격하게 단속해온 사회에 익숙한 우리는 이러한 소재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임신이나 낙태와 관련 콘텐츠는 가볍게 넘길 소재가 아니다. 자칫하면 사회에 부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에 더욱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이유에서 SBS 새 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는 좋은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여자 주인공 임수향의 '출연 겹치기 논란'에도 흥행을 기원한 제작진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첫 화부터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9일 '우리는 오늘부터'가 기상천외한 스토리로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오우리(임수향)는 이강재(신동욱)와 2년째 교제 중이지만 혼전순결을 지켜오고 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통해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오우리. 하지만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과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는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했다.

라파엘(성훈)은 2년간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라파엘은 이마리(홍지윤)에게 이혼 의사 확인 신청서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내 정자 있잖아요. 난 이제 아기 만들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고.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마리는 아니다"라며 이마리와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잦은 스트레스로 건강 검진이 필요해진 우리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밤을 샌 탓에 졸고 있던 우리는 의사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 채 인공수정을 받는 대참사를 겪게 됐다. 담당의가 우리를 마리로 착각해 라파엘의 정자를 주입해 인공수정 시술을 했기 때문. 결국 행사장에서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간 우리에게 의사가 건넨 말은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였다.

담당의는 의료사고를 인정하며 “사고니까 바로 수술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다. 의사 과실로 인한 임신 사고에도 아무렇지 않게 낙태를 권유하는 의사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우리는 오늘부터' /사진=SBS
의료사고 임신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짚으려는 노력보다는 희화화시키기에 더 가까웠다. 지극히 자극적인 드라마 소재를 사용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 정정화 감독은 이를 두고 "다소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소재지만 무책임하게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 그렇지만 '어느 쪽이 정답이다'라는 답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 있을 수 있지만 ‘극적 허용’으로 이해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모든 것엔 답이 없고 아무리 연출된 픽션이라지만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의료사고'를 '극적 허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맞는지 의문.

낙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2021년 1월부로 낙태법이 폐지되었다고 해도 의사가 역으로 환자에게 권유할 부분은 아니다. 한 생명의 인권과 환자의 임신 중단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법. '우리는 오늘부터'는 어딘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의료사고와 임신, 낙태를 너무 가볍게 봐서일까.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각종 논란에 휩싸이는 중이다.

넘쳐나는 콘텐츠 속 드라마 소재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아무리 중요해도 의료사고 임신과 낙태가 가벼운 소재거리로 전락해선 안 되지 않을까.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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