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박진경 CP의 분노 트윗
추락한 지상파 권위 보여준다
카카오M 박진경 CP/ 사진=텐아시아 DB
카카오M 박진경 CP/ 사진=텐아시아 DB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지난해 MBC에서 카카오M으로 이적한 박진경 CP가 친정을 향해 날선 트윗을 남겼다. 한 명의 PD가 한때 몸 담았던 방송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박 CP는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MBC 시청자위원회 결과가 보도된 기사를 공유하며 "내가 14년 다닌 MBC를 때려친 이유 중 하나"라고 적었다.

해당 기사에는 MBC 관계자가 지난 9월 열린 시청자위원회에서 '놀면 뭐하니?' 속 이미주 캐릭터의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에게 해명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한 시청자 위원은 "미주 씨가 보여주는 캐릭터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며 "미주 캐릭터가 흔히 예쁘고 섹시한 백치미 캐릭터로 비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유재석과 미주가 다른 방송에서도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출연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그 캐릭터를 가져와서 반복할 필요가 있냐"며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테니 섭외했으리라 유추하고 있지만, MBC가 갖고 가기에는 아쉬운 게스트 조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진수 MBC 예능기획센터장은 이미주 합류를 두고 "매회 유재석 씨 혼자 이끌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올림픽 시즌을 기점으로 패밀리십을 구축해서 제작해 보자고 프로그램 방향을 정했다"며 "그 과정에서 이미주 씨와 신봉선 씨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주가) 다른 멤버들과의 호흡이 발전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과 함께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섹시한 백치미 캐릭터'를 향한 우려에 대해선 "그런 캐릭터를 필요로 해서 섭외를 한 것이 아니다. 예능인으로서 재미있고 유재석 씨와 초반에 호흡을 잘 맞추면서 성별을 균등하게 하자는 의도로 이미주 씨를 섭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접한 박진경 CP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는 "(MBC 소속이라면) 이런 느낌의 의견들에 저자세로 꼬박꼬박 답변해 줘야한다"며 "소중한 전파 사용의 대가 달게 받아라 방송국 X들아"라고 비꼬았다.
'놀면 뭐하니' 이미주/ 사진=MBC 제공
'놀면 뭐하니' 이미주/ 사진=MBC 제공
2008년 MBC에 입사한 박진경 CP는 지난해까지 약 14년간 소속원이었기에 내부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재직 당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 '두니아' 등을 연출해 방송사에 크게 기여해온 터라 갑작스러운 비판에 많은 이목이 쏠렸고, 일부 공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발언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느낀 불만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인지, 남아 있는 동료 PD들을 대신해 의견을 낸 것인지, 그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조직을 떠난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건 신중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박진경 CP 발언에 대한 옳고그름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트윗은 상당히 의미하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 추락한 지상파의 권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PD 개인의 트윗이 많은 관심을 받은 건 그의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박 CP는 레거시 미디어를 겪은 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건너간 인물이다. 그는 MBC에서도 인터넷 방송 문화를 접목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선보이는 등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의 형식을 깬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왔다.

카카오M으로 이적한 뒤에는 주식 투자를 소재로 한 예능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같은 콘텐츠로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MBC 소속이었다면 종목명조차 말할 수 없으니 불가능했던 기획이다. 비교적 규제를 덜 받는 OTT에서 과거 느꼈던 갈증을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발언만 봐도 그가 MBC라는 조직에서 느꼈을 염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지상파 3사가 자기 검열을 할 때 자주 변명으로 드는 건 '전파의 가치'다.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방송국이 창작자들을 옥죄는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상파 PD들은 시청률과 광고 걱정하랴, 규제 피해가랴 신경 써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 제작비나 소재의 한계 없이 오직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넷플릭스가 승승장구하는 원인과 겹친다. 실력 있는 PD들의 '탈'지상파만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박 CP의 발언이 모두 맞는 건 아니다. 그가 말한대로 '저자세'일 필요는 없지만 연출자는 소수의 시청자 의견도 귀담아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CP의 트윗은 시청자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 CP가 분명하게 밝힌 건 퇴사의 이유다. 그의 트윗은 각종 규제와 눈치 싸움 속에 창작자를 가둔 결과, 몰락한 지상파 방송사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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