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MBC, 유튜버와 첫 협업
'피의 게임'이 의미하는 것
'피의 게임' 크리에이터 진용진/ 사진=MBC 제공
'피의 게임' 크리에이터 진용진/ 사진=MBC 제공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지상파 방송사가 유명 유튜버의 손을 잡고 새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고액연봉을 받는 PD들을 대거 보유한 방송사가 자존심을 굽히고 개인 방송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 MBC 새 예능프로그램 '피의 게임' 이야기다.

지난 1일 첫 방송된 '피의 게임'은 배신, 거짓, 음모 등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하고 처절한 생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10인의 참가자가 11일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최대 상금 3억을 놓고 경쟁을 펼친다.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현실판 '오징어 게임' 같다는 이야기가 확산되면서 많은 기대감을 모았다.

이날 공개된 첫 방송은 10명의 참가자가 처음 만났다. 야구선수, 한의사, 아나운서, 래퍼, 경찰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참가자들의 조합은 신선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몸 담았던 정근우부터 '더 지니어스'를 통해 서바이벌 게임을 경험한 최연승, UDT 출신 유튜버 덱스, 현직 경찰관 이태균까지 기대되는 참가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피의 게임'은 이들이 모두 모인지 1시간 만에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선정하게 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게임의 문을 열었다. 방송 말미에는 탈락자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것이 아닌 별도로 마련된 지하 공간에서 게임을 이어간다는 규칙이 공개되며 큰 충격을 안겼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케 하는 전개에 '피'가 '혈액'과 '기생충(Parasite)'의 'P'를 모두 의미하는 중의적 단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신선한 기획은 방송국 PD들과 유튜버 진용진의 협업으로부터 나왔다. '피의 게임'은 MBC가 유튜버와 최초로 협업하는 프로그램이다. 진용진의 아이디어에 방송사는 수십억의 제작비를 들여 거대한 스케일로 구현해냈다.
'피의 게임' 1회/ 사진=MBC 캡처
'피의 게임' 1회/ 사진=MBC 캡처
진용진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패러디한 '그것을 알려드림'으로 이름을 알린 유튜버다. 현재 22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초에는 웹툰 '머니게임'을 실사화한 콘텐츠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가 선보인 '머니게임'은 누적 조회수가 6000만뷰를 웃돌며 인기몰이했다. 이에 '피의 게임' 역시 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본능을 자극하고 몰입감을 높이는 진용진만의 콘텐츠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방송 전 진용진의 구독자들 사이에선 공중파 방송국은 제약이 많다는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피의 게임' 특성상 극한의 상황 또는 불편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방송국은 이를 모두 편집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교적 규제를 덜 받는 유튜브나 케이블 방송사가 비슷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선보여왔기에 더 좋은 선택지라는 것.

이에 대해 진용진도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전작인 '머니게임'보다 못 할 것 같다는 댓글이 많았다며 "MBC와 함께하면 '선비화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중파에서 제작되면 순한 맛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PD님께 어디까지 편집으로 자르냐는 말을 계속할 정도로 부담이었다"고 했다.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진용진이 지상파식 편집에 크게 신경을 쓰며 경계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피의 게임'은 흥미진진한 소재에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로 많은 호평을 얻었다. 진용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탓인지 빠른 호흡의 전개와 편집 방식으로 일각의 우려를 씻어냈다.

TV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피의 게임'은 이날 방송된 비드라마 프로그램 가운데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며 점유율 26.1%로 1위를 차지했다. 진용진의 유튜브 채널이 1시간 분량의 지상파 방송을 30여 분으로 줄여 올린 영상은 6일 0시 기준 90만뷰를 돌파했다.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했다.

지상파 방송국과 개인 유튜버의 협업이라는 신선한 도전이 유의미한 수치를 만들어냈지만 낮은 시청률은 아쉽다. 닐슨코리이아에 따르면 이날 첫 방송 전국 가구 시청률이 1.8%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피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유튜버 진용진/ 사진=진용진 유튜브 채널 캡처
'피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유튜버 진용진/ 사진=진용진 유튜브 채널 캡처
MBC가 크리에이터로 유튜버를 투입한 건 파격적인 시도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방안이다. 방송국은 반짝이는 크리에이터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쓸 수 있고, 유튜버도 규모가 큰 방송국의 참여로 많은 제작비를 들여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한편으로 방송사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일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고스펙의 PD들이 수두룩한데, 개인 유튜버에 의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방송국에서는 개인 방송인들을 무시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그런데도 유튜버만큼 반짝이는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하니 제 속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현 시점에선 방송사가 굽힌 자존심만큼 합당한 성과를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피의 게임'은 성적과 별개로 새로운 도전이라는 자체만으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튜버의 방송사 진출이 기성 PD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돼 더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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