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만한 예능
CJ ENM 대놓고 망신준
TV조선 '국민가수'
'내일은 국민가수' 김국헌/ 사진=TV조선 제공
'내일은 국민가수' 김국헌/ 사진=TV조선 제공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저 친구가 조작에서 떨어진 친구인가보다"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 가수 김국헌이 등장하자 심사위원 신지는 이렇게 말했다. Mnet '프로듀스101' 시즌4에 출연했다가 투표 조작 사건의 희생양이 된 그의 과거를 들춘 것이다. 한 방송사가 다른 방송사의 민감한 이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해당 장면은 지난 14일 방송된 '내일은 국민가수' 2회에서 나왔다. 이날 김국헌은 '국민가수' 타오디션부에 출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국헌은 지난해 열린 '프로듀스 101' 전 제작진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발표한 피해자 명단에 포함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프로듀스101' 시즌4 출연 당시 제작진의 3차 투표 결과 조작으로 탈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정적인 보컬 실력과 훈훈한 외모를 앞세워 데뷔조까지 노려볼 만한 참가자였기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김국헌은 자신을 두고 "오디션의 아픔을 겪고 다시 도전하게 된 김국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몇 개월간은 과거에 갇혀서 살았다. 그래서 음악도 포기하고 다른 생활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아직은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던 가수 이석훈은 그의 재도전을 환영하는 의미를 담아 큰 박수를 보냈다. 이석훈은 '프로듀스101' 시즌4 프로듀서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사제지간이었던 두 사람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프로듀스101' 조작 사태를 다시 한 번 떠오르게 만들었다.

제작진은 또 '김국헌 등 "프듀" 조작 피해 연습생 공개', '상처만 남긴 "프듀" 조작 사태, 결국 모두가 피해자'라는 제목의 기사도 화면에 실었다. 해당 사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수차례나 언급한 것이다.

김국헌이 아픔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한 만큼 '프로듀스101' 조작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참가자 김국헌에게 극적인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제작진이 놓칠 리 없었다. 하지만 '국민가수'가 이렇게 해당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 것은 이례적이었고,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TV조선의 이러한 연출에는 '오디션 명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속셈이 담겨있다. 최근 TV조선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신흥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자'로 올라섰다. 또한 '미스터트롯' TOP6와 계약이 만료됐으니 새 얼굴이 필요한 시점이라 '국민가수'를 향한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오랜 시간 오디션 프로그램의 절대 강자는 CJ ENM의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Mnet의 몫이었다. 과거 '슈퍼스타K' 시리즈를 선보여 전국민적인 돌풍을 일으켰으며, 조작으로 빛바랜 '프로듀스 101' 시리즈도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현재는 '걸스플래닛999'를 통해 한중일 국적을 가진 걸그룹을 찾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다시 우뚝설 기회를 엿보고 있는 셈이다. 이에 TV조선은 Mnet의 과거를 발목잡으며 강력한 경쟁자부터 견제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문제는 TV조선 또한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내일은 미스트롯2'의 지원자 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방송심의소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주의'를 받았다. 물론 Mnet처럼 순위를 바꾼다거나 생존과 탈락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프로듀스101'을 언급하며 '국민가수'에는 투표 조작이 없다고 선을 긋고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TV조선의 이번 언급으로 CJ ENM은 또 다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오디션 절대 강자' 채널로 그간 쌓아올린 명성을 투표 조작 논란으로 단번에 내준 데 이어 아직까지 돌아가는 길마저 가시밭길이 깔린 모양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번 언급에 대해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은 걸 봐선 아직은 CJ ENM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여전해 보인다. 연습생들의 꿈을 짓밟은 댓가는 생각보다 크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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