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홍보판에서 뒤풀이판으로
배우들의 달라진 예능 출연
'해치지 않아'(위)와 '슬기로운 산촌생활'/ 사진=tvN 캡처
'해치지 않아'(위)와 '슬기로운 산촌생활'/ 사진=tvN 캡처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배우들의 예능 활용법이 달라졌다. 과거 작품을 선보이기 전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들이 최근에는 작품을 마친 뒤 단체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히트작의 남은 여운을 끌어올리는 건 물론, 코로나19로 종방연도 사라진 상황에서 예능 출연으로 축포를 터뜨리며 마무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빠르게 간파하고 직접 뛰어든 건 tvN이다. 한 작품 안에서 만난 배우들을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13일 첫 방송된 '빌려드립니다 바퀴 달린 집'을 통해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이하 '해적2')' 주연 배우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게 시작이다.

'빌려드립니다 바퀴달린 집'은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 시리즈의 스핀오프물이다. 새로운 출연진이 메인 호스트 배우 성동일과 김희원에게 '바퀴 달린 집'의 열쇠를 빌려 주인 없이 살아보는 이야기를 그린다.

'해적2' 촬영 기간 동안 끈끈한 팀워크를 맺어온 배우 강하늘, 한효주, 이광수, 권상우, 채수빈, 오세훈, 김성오, 박지환, 김기두가 캠핑을 하며 그리는 좌충우돌이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빌려드립니다 바퀴 달린 집'은 초호화 라인업에도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진 못했다. '해적2' 팀이 개봉 전 홍보를 목적으로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먼저 출연한 게 패착으로 꼽힌다. 배우들끼리 친해졌다고는 하나, 작품을 접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이들간의 케미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짧은 기간 이들의 관계에 몰입될 만큼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빌려드립니다 바퀴 달린 집'/ 사진=tvN 캡처
'빌려드립니다 바퀴 달린 집'/ 사진=tvN 캡처
이에 반해 시즌제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 큰 인기를 얻었던 배우들을 내세운 새 예능 프로그램들은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시청자들과 유대 관계를 형성한 배우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빌려드립니다 바퀴 달린 집'과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첫 방송된 tvN '해치지 않아'는 그 기대에 걸맞는 결과를 보여줬다.

'해치지 않아'는 SBS '펜트하우스'에서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맡았던 엄기준, 봉태규, 윤종훈이 폐가에서 며칠간 지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1년간 악역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던 세 사람이 생고생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과 웃음을 자아냈다. 여기에 배역과는 또 다른 각각의 '본캐'가 반전 매력을 선보이면서 흥미를 돋웠다.

'펜트하우스'가 20~3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히트작이었기에 드라마 팬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도 엄기준, 봉태규, 윤종훈의 절친한 관계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배우 이지아, 김소연, 김영대, 한지현 등 '펜트하우스'의 다른 배우들도 세 사람이 지내고 있는 폐가를 방문할 예정이라 더욱 기대감이 쏠린다.

tvN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배우들도 '슬기로운 산촌생활'을 통해 종영을 기념하는 축배를 든다. 극 중 동갑내기 절친으로 나왔던 배우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의 티키타카 케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 팬들의 기대감이 높다.

'해치지 않아'와 '슬기로운 산촌생활' 모두 기본적인 포맷은 tvN 대표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와 궤를 같이 한다. 캐스팅만으로 높은 화제성을 기대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 포맷을 활용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새 예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 검증된 포맷에 초호화 라인업을 조합해 실패 확률을 낮추는 전략이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의 탄생은 시즌제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앞서 언급한 '슬의생'과 '펜트하우스' 모두 시즌제 드라마로 장기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햇수를 넘기는 긴 촬영 기간 동안 배우들간 호흡이 두터워질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과도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해놓은 장점이 있다. 방송사는 히트작의 배우들을 통째로 불러모으기만 하면 많은 기대 속에 새 예능을 선보일 수 있다.

배우들은 다른 예능 출연보다 부담감을 적게 가질 수 있다.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작품 활동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동료와 함께한다. 긴 시간을 함께한 캐릭터와 공식적으로 작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고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드라마 종방연을 가질 수도 없고 단체 회식도 하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예능 출연으로 자축포를 대신 터뜨릴 수 있는 셈이다. 시청자들도 드라마 종영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기에 반기는 분위기다.

인기 드라마 출연으로 이미 주가를 올린 상태의 배우들을 활용하면 흥행을 노릴 만한 카드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와 '슬기로운 산촌생활'처럼 기존의 포맷을 가져다쓰는 방식으로는 매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익숙한 그림 속에서 출연진이 줄 수 있는 신선함은 한계가 있다.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들을 모았다면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단순히 종방연 파티를 화면 속으로 옮겨오는 것만으론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해치지 않아'와 '슬기로운 산촌생활'은 어떤 차별점을 그려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