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서 실명 나온 피해자
엠넷과 질긴 악연의 고리
'철저한 보상' 약속, 지켜질까
'아이돌학교' 투표 조작 피해자/ 사진=Mnet 제공
'아이돌학교' 투표 조작 피해자/ 사진=Mnet 제공
≪정태건의 까까오톡≫
'까놓고, 까칠하게 하는 오늘의 이야기'.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일요일 화제가 되는 연예·방송계 이슈를 까다로운 시선으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엠넷과 피해자 A씨의 질긴 인연

시청자 투표 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Mnet '아이돌학교' 제작진의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 A씨의 실명이 언급됐다. 어릴적부터 가수가 되겠다던 한 소녀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처참하게 짓밟혔다는 게 드러난 순간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김성훈 부장판사)은 지난 10일 '아이돌학교' 시청자 투표 조작 혐의(업무방해·사기)로 기소된 김 CP와 김 전 사업부장에 대해 각각 징역 1년과 100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시청자와 투표에 참여한 이들을 우롱한 데다, 탈락한 출연자들에게는 정식으로 데뷔할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투표 조작으로 탈락한 A씨를 언급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방송 당시 시청자 투표에서 실제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김 CP가 그의 이미지가 데뷔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떨어뜨렸다. 김 CP는 김 전 부장에게 "A씨가 1등인데 떨어뜨리는 게 맞겠냐"고 물었고, 이에 김 전 부장이 괜찮다는 식으로 답하자 실제로 탈락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돌학교'에서 A씨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방송 첫 주부터 1위를 거머쥐었다. 4주차까지도 3위 안에 들며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점점 순위가 내려가더니 최종 11위로 아쉽게 데뷔에 실패했는데, 제작진의 순위 개입이 그 이유였다.
'아이돌학교'/ 사진=텐아시아DB
'아이돌학교'/ 사진=텐아시아DB
A씨와 엠넷의 악연은 2016년 방송된 '프로듀스 101'에 그가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 남다른 비주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아쉽게 데뷔 조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도 투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공개된 피해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불공정한 게임의 참가자였던 만큼 A씨 역시 피해자다. 1등 자리를 빼앗긴 '아이돌학교'에서는 최대 피해자가 됐다.

두 번의 조작에 대해 방송사가 죄책감을 느껴서였을까. A씨는 '아이돌학교'가 끝난 후 CJ ENM 산하 연예기획사로부터 데뷔를 약속 받고, 아티스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소속사는 정식 계약한 A씨를 연습생처럼 방치했다. 결국 그는 현재까지 데뷔하지 못했다.

CJ ENM의 뻔뻔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A씨는 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노래 '러브밤(LOVE BOMB)' 가이드 보컬을 맡았다. '아이돌학교' 데뷔 조에 포함돼 자신이 받았어야 할 곡을 남들이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게 만든 셈이다.

그렇게 대중과 멀어진 A씨는 '아이돌학교' 이후 카페 아르바이트, 피팅 모델 등 각종 알바를 하면서 월세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꿈이었던 가수가 돼 무대에 오르겠다는 꿈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피해자는 지난해 한 유튜브 방송에서 "스물다섯 살이 되면서 '내 욕심만으로 계속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것이 맞는가' 생각이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스타성을 갖추고 있었고, 그에 걸맞는 실력자였다. 그는 순수하게 꿈을 좇았을 뿐이고, 다른 사람의 엉뚱한 욕심에 애꿎은 피해를 본 것인데도 이 모든 게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치부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피해를 끼친 장본인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됐지만 A씨의 짓밟힌 꿈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나. 그럼에도 엠넷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물론 '아이돌학교' 조작의 피해자들 위한 철저한 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상처받은 삶과 지나간 과거를 보상할지는 시청자들과 투표에 참여한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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