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에 출연한 배우 박광재./사진=서예진 기자
'스위트홈'에 출연한 배우 박광재./사진=서예진 기자
"농구선수와 배우요? 배우 생활이 더 잘 맞는것 같아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16년의 농구 생활을 마치고 이후 시작한 배우 생활. 어느덧 9년 차에 들어섰지만 그래도 인생의 절반의 시간을, 그리고 인생의 전부였던 농구를 그만두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박광재는 연기라는 공을 드리블하는 배우로 슬램덩크를 꽃기 위해 림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슬랩덩크'의 강백호가 최고의 순간을 '지금'이라 말했듯, 박광재에게 있어 연기를 하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

박광재는 지난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극본 홍소리, 김형민, 박소정 연출 이응복)에서 '프로틴 괴물'을 열연했다. '스위트홈'은 동명의 인기 웹툰 원작으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욕망에 잠식된 인간들이 괴물로 변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프로틴 괴물'은 근육에 대한 욕망이 있는 괴물이다.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연기자는 무거운 분장을 해야했다. 오른손 하나의 무게가 20kg이었으니, 전체 무게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박광재는 '스위트홈'에서 '프로틴 괴물'을 실감나게 연기했다./사진=서예진 기자, 박광재 인스타그램
박광재는 '스위트홈'에서 '프로틴 괴물'을 실감나게 연기했다./사진=서예진 기자, 박광재 인스타그램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무래도 분장의 무게였다. 처음 분장을 다 입고 나니 폐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았다. 또 연기 하면서 느낀 점은 원작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조금 다른 캐릭터도 등장하긴 한데 원작을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직접 찍었기 때문에 (드라마가)조금 더 재밌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광재를 만나니 '거구'라고 하지만 도저히 '프로틴 괴물'과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장난기를 보태 건넨 프로틴 음료를 받아들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한 입담과 인터뷰 내내 보여준 수줍은 제스처는 프로틴이 아닌 '쁘띠광재'란 이름이 더 어울렸다.

박광재의 '프로틴 괴물'은 특수 분장 및 CG와 함께 그를 넘는 섬세한 연기력으로 탄생했다. 전신에 괴물 분장을 한 채 빠른 몸짓과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선보여야 했다. 배우로서 얼굴을 가리고 연기한다는 건 결호 쉽지 않은 일, 그 속마음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감독님이랑 스텝들과 미팅하러 갔는데 감독님이 저를 좋게 보셨다. 덩치는 크지만 얼굴은 순해 보이는, 딱 감독님이 원하는 느낌이라 좋아하셨다. 감독님이 유명해서 라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좋아서 얼굴이 좀 안 나오더라도 출연하고 싶었다. 감독님도 가면을 벗고 꼭 얼굴이 공개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분장을 쉽게 뗄 수 없어서 저도 아쉽긴 하다"

박광재는 얼굴을 포기한 대신 존재감을 얻었다. 분장 때문에 피부병까지 얻었지만 열연의 대가는 확실했다. 특히 근육 덩어리의 '프로틴 괴물'은 웃으면서 사람을 때려잡았다. 기쁨의 웃음이 아닌 섬뜩하고 오싹한 미소였다. 피를 흘리는 입에서 전해지는 그로테스크한 광소는 안방극장에 '프로틴 괴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데뷔 9년 차, 하지만 아직 캐릭터 이름보다 '거구 역할'로 소개되는 박광재의 연기가 만든 묵중한 존재감이었다.
박광재의 연기 데뷔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자코포'였다./사진=서예진 기자
박광재의 연기 데뷔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자코포'였다./사진=서예진 기자
프로농구선수였던 박광재의 연기 데뷔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자코포'였다. 해적선을 타고 다니며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몬테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그와 동행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몬테 옆에 항상 등장하기에 그만큼 비중도 많았다. 갓 데뷔한 신인에게는 엄청나게 큰 역할이었다.

"농구선수 시절 마지막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고민 끝에 은퇴하게 됐다. 쉬는 기간 동안 재활 치료도 하면서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인이 뮤지컬을 권했고, 처음엔 미팅 자리인 줄 알고 따라갔는데 거기가 오디션 장소였다. 그날 시험을 봤는데 이틀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작품에 딱 맞는 역할을, 그리고 제 기준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박광재는 다작에 출연하며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사진=서예진 기자
박광재는 다작에 출연하며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사진=서예진 기자
남다른 피지컬 때문이었을까. 이후 덩치가 필요한 역할엔 박광재가 자리했다. 첫 영화인 '강남 1970'을 시작으로 '봉이 김선달', '악녀', '양자 물리학'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역할의 이름 대신 '거구 역 박광재'라는 크레딧으로 이름을 올릴 일이 많았지만 배역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늘 배움의 자리였고, 인연의 연속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설경구 선배를 처음 만났다. 당시 촬영 장면도 안 겹치고 첫 대본 리딩 때만 만났다. '불한당' 촬영장에서 설경구 선배를 다시 만났다. '큰 애가 나온다고 했는데 너였구나'라며 반갑게 맞아주시고 많이 챙겨주셨다. 마동석 선배는 '범죄도시', '챔피언', '성난항소', 나쁜녀석들’까지 해서 총 네 작품을 함께 했다. 워낙 많이 챙겨주시고 연락도 자주 한다"

시나브로 커져가는 배우로서 역량과 함께 예능 출연도 성사됐다. 농구 선배 현주엽과 함께 하는 KBS2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이하 '당나귀 귀')가 그것이다. '쁘띠광재', '광데렐라', '핑크털뱅이'라는 별명과 함께 인지도도 올라가고 있다. 박광재는 "현주엽과 먹방을 펼치며 무려 20kg나 몸무게가 늘었다"라며 불평했지만,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신다. 식당에서도 '왜 이리 조금 먹냐'며 서비스도 주신다"라는 말엔 행복이, 그리고 예능에 대한 욕심도 엿볼 수 있었다.

"선수 생활부터 봐 왔던 허재 형, 주엽이 형과 함께라 편안하게 촬영 중이다. 다들 많이 챙겨 준다. 예능에 대한 욕심은 있다. 영화랑 드라마를 꾸준히 하면서 예능도 많이 하고 싶다. '전지적 참견 시점'이나 '정글의 법칙'을 정말 재밌게 보고 있다. 요즘에는 낚시를 좋아해서 '도시 어부'도 해보고 싶다"
박광재에게 농구는 '아픈 손가락'이다./사진=서예진 기자
박광재에게 농구는 '아픈 손가락'이다./사진=서예진 기자
현재 차기작을 준비 중인 박광재는 연기 레슨과 함께 미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릇 꿈은 항상 크게 가져야 한다는 신조 때문이다.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 예능, 유튜브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선 언제나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예정이다. "단 가수는 빼고"라는 박광재지만, 그의 데뷔작이 뮤지컬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농구는? 인생을 바쳤고, 후회 없던 시간이었지만 본인 역시 운이 따르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아픈 손가락이다.

"아마 제 인생에서 농구공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솔직히 실제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현재 아마추어 농구팀에서 감독 겸 선수로 활동 중이죠. 연기와 농구, 둘 다 열심히 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예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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