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 약자를 위한 선전 포고
, 약자를 위한 선전 포고" /> 7회 SBS 수-목 오후 9시 55분
영화였다면, 결코 벌어질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연쇄살인범과의 맞대결 끝에 그를 검거한 의 주인공들은 치열하게 범인의 여죄를 파헤치거나 성공의 화려한 영광을 얻는 대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터질듯 당겨졌던 긴장의 고삐는 맥없이 풀려버렸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줄거리가 만들어지는 방식도 아니요, 매 회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방식도 아닌 ‘한국형 미드 구성법’을 따라가는 으로서는 불가피한 이완이었다. 사건 속으로 들어가 해결하고 다시 걸어 나올 수 있는 미드와 달리 의 사건들은 언젠가 크게 터져버릴 클라이막스를 위해 사소한 켜를 쌓는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때, 이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싸인을 남긴다. 무고한 여성들을 살해한 범인이 잡혔으되, 드라마 안에서 가장 위협적인 악당이 여전히 이명한(전광렬)이라는 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신호다. 그리고 이명한이 남기는 부정한 싸인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이 윤지훈(박신양)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닿아 있다. 윤지훈은 죽은 자가 남긴 흔적을 해독하고 그것으로 사회의 안녕에 힘을 보탠다.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권력과 싸우고, 때로는 절차를 무시한다. 뚜렷한 사실이야말로 어떤 법과 힘보다 강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해독자의 힘을 빌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그 사실들을 가리기 위해 많은 법과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은 죽음과 부검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게다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죽음을 은폐하는 권력에 관한 것이다. 통쾌하기보다는 통렬한 드라마가 되겠다는 작정이다. 약자를 위한 나라가 없는 세상에서 이것은 반가운 선전포고다.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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