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기 그룹 A.N.JELL에게도 굴욕의 ‘과거’는 있었다. 일산 SBS 탄현 제작센터 내 넓은 운동장 한 켠, 초라한 행사 무대 위에 A.N.JELL의 황태경(장근석), 제르미(이홍기), 강신우(정용화)가 올라 있다. 황태경의 트레이드 마크인 2대 8 가르마는 어디 가고 새 멤버 고미남(박신혜)도 무대 아래에서 구경 중인 이유는, 이 장면이 <미남이시네요> 5회에 들어갈 신인 시절 A.N.JELL의 활동 영상이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답게 신인에게는 당연히 ‘개인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 ‘갈갈이’가 되기로 결심하는 태경은 내면적 고뇌로 부들부들 떨기조차 하며 “무를…주세요”라고 선언한다. 그 비장한 모습에 수십 명의 스태프와 기자들이 푸훗-하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가운데 장근석의 얼굴도 점점 미세하게 붉어지지만 무정한 홍성창 감독은 “다시 한 번!”을 외쳐대고, 어디선가 “근석아, 무를 더 가까이 해야 돼!”라는 주문까지 나온다. 하지만 프로페셔널답게 코믹한 표정으로 앞니를 드러내며 무사히 신을 마친 장근석은 사진 촬영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온 박신혜에게도 “<아이리스>가 쫓아온다”며 함께 무를 갈 것을 제안하는데, 용기를 내어 무를 들어 올리던 박신혜의 “안 돼! 나 화장품 모델이란 말이야!”라는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유출시키고 싶을 정도”라는 한 매니저의 말 만큼이나, 너무 재밌어서 안구를 공유하고 싶을 정도의 현장이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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