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은 왜 빨간색일까? 영화인들이 밟을 레드카펫이 놓인 길 위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뜨겁기 때문은 아닐까.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의 레드카펫 위에서는 차가운 바닷바람마저 온기를 품는다. 하얗게 샌 머리로 레드카펫을 밟은 신성일부터 깜찍한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왕석현까지. 처음으로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신인부터 영화제에는 빠지지 않는 스노우맨 패션의 앙드레 김까지. 하얀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은 환하게 부서지는 카메라 플래시로 추위를 떨쳐내고, 사위가 저문 뒤로 담요를 둘러야 할 만큼 쌀쌀해진 부산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저와 얼굴로 쌍벽을 이루는 장동건 씨와 함께해서 기쁩니다.” 이병헌도, 조쉬 하트넷도, 소지섭도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세계 최초 남자 영부인으로 출연하는 임하룡의 한마디에 개막식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개인적으로 저도 실물로는 소녀시대를 처음 봤습니다.” 개막식 내내 경직되고 진지한 표정이던 진행자 김윤식이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조쉬 하트넷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출 때마다 무조건반사로 소리를 지르던 소녀들 대신 오랜만에 소년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어두운 하늘 위로는 반짝이는 불꽃이 번져가고,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는 별들이 쏟아진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반짝이는 부산의 가을밤이다.

글. 부산=윤이나 (TV평론가)
사진. 부산=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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