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KO 선언을 하는 순간 자리에 앉아 숨을 죽이며 쳐다보던 모든 관중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역전 KO. 결승전에서 이수환의 킥 공격에 두 번이나 다운을 당하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던 임치빈이 승리를 확정지으려는 듯 다시 회심의 킥을 뻗는 이수환의 다리를 잡고 강한 펀치를 날렸고, 순식간에 이수환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오늘의 경기는 K-1 맥스 월드 그랑프리 16강을 가리기 위한 지역 토너먼트 중 하나인 한국 그랑프리. 이 경기의 우승자는 도쿄에서 열리는 K-1 맥스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 출전할 자격을 얻는다. 한계체중 70㎏의 경량급 선수들이 싸우는 K-1 맥스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탄탄한 선수층 때문에 맹수들의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다. 실제로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이수환의 일격에 몽골의 문군트수즈 난딘 에르덴이 실신당해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과 노재길과 일본의 와타나베 마사카즈가 연장전까지 치루며 보여줬던 난타전에서는 약육강식의 생존전쟁과도 같은 피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확실한 비정한 승부의 세계라 해도 단순한 먹이사슬과 격투기를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 작년 대회에서 노재길에게 졌던 이수환은 강한 킥으로 노재길을 KO시키며 패배를 설욕했고, 재작년 대회에서 이수환에게 KO 당했던 임치빈은 두 번이나 다운 당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역전 KO로 자신의 투지를 증명했다. 오늘 패배한 다른 선수들도 언젠가 다시 전의를 불태우며 등장할 것이다. 패배는 하지만 마음은 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링 위가 뜨거운 건 그래서다.

오늘 현장의 한 마디 : “우.윳.빛.깔 임.수.정!”

오늘 경기에서 결승전 이상으로 관심을 끈 경기는 K-1 최초의 여성 경기인 한국의 임수정과 일본의 레이나의 경기였다. 여성 격투기의 저변이 넓지 않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임수정은 격투기 매체에선 ‘얼짱’ 파이터 혹은 미녀 파이터라고 소개된다. ‘파이터는 봤으니 이제 미녀를 보여 달라’는 짓궂은 댓글 때문에 본인은 기자들이 그런 제목을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지만 막상 그녀의 경기가 시작되자 남자 팬들은 목청 높여 그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우.윳.빛.깔 임.수.정!”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딸기우윳빛깔이 됐지만 자신이 선 자리에서 모든 걸 불태우는 모습을 표현하기엔 ‘아름답다’는 수식이 가장 어울린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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