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안테나에 X표시가 떴다. 이제 전화는 터지지 않는다. 충북 제천에 위치한 KBS <천추태후> 촬영장, 승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가파른 산길 위쪽에서는 궁녀 복장을 한 단역 배우들이 줄을 지어 내려오고 있다. 여기저기 동물 가죽이 널려 있는 여진족의 산채 안에서는 태조 왕건의 후손으로 태어나 훗날 고려를 지배하는 천추태후가 될 헌애왕후(채시라)와 그를 보좌하는 강감찬(이덕화), 천추태후를 지키며 묵묵히 사랑하는 강조(최재성), 천추태후와 사랑에 빠지지만 애증의 관계가 되는 김치양(김석훈)이 마주앉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산과 들, 오지에서 찍을수록 힘이 난다”는 신창석 감독의 “엏께이, 쪼-아~ 천추태후 퐈이튕~!”이라는 독특한 외침만이 뼛속까지 시린 공기와 매캐한 스모그 사이를 가르며 산골짝을 울린다.

<천추태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91년을 강타했던 MBC <여명의 눈동자>에서 비운의 연인 윤여옥과 최대치로 출연했던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채시라와 최재성의 재회다. 그동안 각자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중년이 된 이들은 다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까? 최재성이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돌이 갓 지난 둘째를 둔 채시라와 산후조리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니, 그 시절 초콜릿 광고의 미소녀와 터프가이 오빠 역시 현실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 그러나 세월과 함께 무르익은 이들의 연기는 1월 3일, 2009년을 여는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 같다.

오늘 현장의 한 마디 : “공개구혼 해라!”

98년 SBS <홍길동>으로 데뷔하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리고 올해 서른여덟이 되지만 아직 미혼인 김석훈이 촬영장 한켠에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특유의 소탈한 태도와 엉뚱하면서도 솔직한 답변으로 여기자들의 마음마저 사로잡는 것을 본 신창석 감독이 다가와 외친다. “우리 드라마 끝나기 전에 결혼하기로 했잖아. 공개구혼 해라!” 그러나 <천추태후>는 무려 80부작, 아무리 공개구혼을 한들 김석훈이 과연 올해 안에 결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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