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밝기로 켜진 조명, 그리고 선선한 공기 속에 섞인 습한 목재 냄새. 파주시 법흥리에 있는 <떼루아> 세트장은 어느 와인 애호가의 한적한 와이너리 같다. 실제로 이 세트장에는 태민(김주혁)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떼루아’의 와이너리 세트가 있다. 하지만 이날 촬영이 진행된 곳은 와이너리 옆 태민의 사무실 세트. 30대 전문직 남성의 로망과도 같은 널찍한 사무실 안 소파에서 태민이 잠든 사이 우주(한혜진)가 손님들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슬쩍 들어오는 장면이다.

원래는 감기 때문에 콜록거리며 태민이 잠시 눈을 뜨는 설정이지만 리허설 중 김주혁은 한혜진이 다가오자 갑자기 “어우, 뭐야?”라며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모습으로 스태프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진짜 웃을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혜진이 사무실 안에서의 동선을 촬영감독과 상의하는 동안 김주혁은 누워 눈을 감은 자세 그대로 기다렸다. 아니 기다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촬영시작. 우주가 사무실에 몰래 들어오고 태민이 콜록거릴 타이밍에 갑자기 김주혁은 “어?” 짧은 탄성과 함께 눈을 끔벅이며 놀란 듯 한혜진을 쳐다봤다.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멍한 시선을 보자 그는 “나…진짜 잠들었어.” 말끝에 ‘;;;’ 마크가 붙어있을 듯 한 말투로 자백했다. 물론 NG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잠깐 눈을 감은 사이 잠이 들 정도로 빡빡하고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장, 그곳에서 <떼루아> 팀의 돈독한 분위기는 와인처럼 숙성해가고 있었다.

오늘 현장의 한 마디 : “새로 들어온 막낸가?”

좁은 세트장 안에서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 조명 스탠드나 케이블이 살짝이라도 걸리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 벌어진다. 어두운 세트 안에서 조명은 넣어야하는데 스탠드는 치워야하는 진퇴양난의 상황들. 그러다보니 조명팀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도 누구하나 얼굴 찌푸리지 않는 건 “이쪽은 세팅 다 된 건가?”라고 조명팀 스태프가 외칠 때 배우인 한혜진이 “네~!”라며 힘차게 대답해주고, “뭐야, 새로 들어온 막낸가?”라고 농담으로 화답해주는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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