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은 화려하다. 돈과 여자, 음모가 뿜어내는 화려한 불빛에 이끌려온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가 된다. 그러나 오늘의 승자는 필연적으로 내일의 패자가 될 수 밖에 없고, 찰나의 승리의 기쁨은 너무도 강렬해서 수많은 패자들을 다시 판으로 불러들인다. 잃는 자와 얻는 자, 그 간극이 현실세계보다 강렬한 도박판은 그래서 화려하고, 그래서 비극이다. 도박판에 모인 사연 많고 욕망 가득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SBS <타짜>. 그들의 화려한 그림과 빠른 전개는 도박판과 닮아있다. 그러나 과연 욕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도박하는 인간들을 잘 그려내고 있을까? 도박에 영원한 승자가 없듯이 <타짜>도 방심하는 순간 이야기의 갈피를 종종 놓치고 있다. <10 매거진> 강명석 수석기자와 위근우 기자가 <타짜>를 위한 판을 벌였다. /편집자주

SBS <타짜>는 마치 만화와 영화 <타짜>의 리메이크가 아닌 리믹스처럼 보인다. <타짜>는 만화와 영화를 재해석 하는 대신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조금씩 발췌한다. <타짜>의 주인공은 만화 <타짜>의 1부 ‘지리산 작두’편의 고니(장혁)지만 정작 ‘작두’는 대호(이기영)고, 고니가 감옥에서 겪는 에피소드는 2부 ‘신의 손’을 연상시키며, 자신보다 젊고 예쁜 난숙(한예슬)을 경계하는 정마담(강성연)의 모습은 영화 <타짜>에 연원이 있다. 또한 포커와 카지노의 이야기는 <타짜>의 3,4부를 연상시키고, 고니가 주변 인물들을 모아 영민(김민준)과 아귀(김갑수)에게 사기를 치는 것은 영화 <오션스 일레븐>와 비슷하다. <타짜>는 다양한 원전들에서 가져온 매력적인 에피소드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는 방식은 매회 시청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TV 드라마의 형식에 알맞다.

우왕좌왕 캐릭터, 갈피 잃은 이야기

그러나 성격이 다른 작품에서 발췌된 에피소드들은 그 에피소드 만큼이나 많은 캐릭터를 요구한다. 고니와 영민이 고스톱, 섯다, 포커를 거쳐 카지노로 향하는 사이 그들 주변에는 몇 명의 사부와 동료, 설계대상이 등장하고, 고니와 영민은 난숙 말고도 각각 유라(이소정)와 정마담의 사랑을 받는다. 고니의 마지막 사기에 광렬(손현주)부터 짝귀(조상구)까지 고니의 거의 모든 주변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성격이 다른 에피소드가 나열되면서 캐릭터는 정리가 안 될 만큼 많아졌고,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은 대형 사기극뿐이다. 그 사이 원작에서 각자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광렬과 평경장(임현식) 등은 사기극의 조연에 머무르고, 욕망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도박판 위의 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졌다. 대신 서로를 속고 속이는 모습이 회당 한두 번씩 반복되는 지루한 사기극만 남았다. <타짜>는 원전의 에피소드를 허겁지겁 나열하느라 그 작품들이 그 캐릭터들을 왜 배치했는가를 고민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캐릭터가 에피소드를 이끄는 대신 에피소드가 캐릭터를 소비한다.

그래서 <타짜>는 창작물이면서도 <타짜>의 배경에 깔린 작품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기이한 상황을 맞는다. <타짜>에서 고니는 창작된 캐릭터 영민과 대립하지만, 작품 중반까지 고니의 적은 원작의 캐릭터 아귀다. 영민은 고니와 마주칠 일조차 많지 않고, 작품 중반부터 끊임없이 사람들을 배신한 뒤에야 고니와 대립한다. 이 과정에서 영민이 고민의 여지조차 없는 악인이 되면서, 영민은 고니와 애증이 섞인 갈등 대신 선악구도에 가까운 단순한 대립관계를 형성한다. 고니 역시 탈옥 뒤 친구들과 <오션스 일레븐> 놀이를 하느라 그를 울게 만들던 어머니나 어쩌면 평생을 떳떳하게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는 잊어버린 듯 하다. 오히려 <타짜>에서 가장 일관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인물은 아귀다. 고스톱에서 시작해 카지노에 이르는 도박판의 변화는 곧 아귀의 욕망의 변천사이고, 그 욕망의 종착지에서 몰락만이 남은 아귀의 개인사는 <타짜>의 캐릭터 중 가장 일관성 있는 서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귀의 일관성은 아귀가 <타짜>의 모든 판을 ‘설계’해 <타짜>가 발췌한 에피소드들을 끌어들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구라는 장난이 아니다

<타짜>의 진정한 ‘구라’는 이 드라마가 실제 스토리도, 주인공도 모두 속이고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타짜>에서 중요한 것은 도박이 아니라 사기고, 드라마를 이끄는 건 고니와 영민 둘 다 증오하는 악역이다. <타짜>가 후반으로 갈수록 사기극에만 집중하는 것은 여기저기서 가져온 에피소드에 따라 캐릭터가 휘청거린 드라마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이는 <타짜>를 만들면서 원작처럼 도박 기술에 대한 집착적인 분석도, 오션스 일당처럼 정교한 사기 과정도 없이 영화 <스팅>을 본따 가짜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는 정도의 사기만을 보여주는 허술한 제작 준비에서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타짜>의 전 시리즈를 뒤섞는 것은 대담한 시도지만, 그 에피소드만으로 작품을 만들려고 덤벼드는 건 ‘호구’나 할 일이다. 허영만의 빛나는 원작도, 김갑수의 연기력도 엉성한 ‘설계’를 다 가릴 수는 없다. 드라마건 도박이건, ‘구라’치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글 강명석

“타짜는 칼로 베는 게 아닌 꽃으로 베는 진정한 풍류객이다. 구라꾼이 많고 타짜가 적은 이유가 그것이지.” 조선 최고의 타짜 평경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SBS <타짜>에 타짜는 없는 셈이다. 고니를 비롯해 영민, 아귀, 짝귀 등 주요 타짜들이 벌이는 판은 배신과 음모, 심지어 살인까지 난무하는 수라장이자 냉혹한 구라판이다. 그 판에 풍류 따위는 없다. 단지 상대방을 짓밟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겠다는 욕망의 맨얼굴이 있을 뿐이다.

남 탓하느라 오늘도 바쁜 인물들

냉혹한 구라꾼들이 풍류객인 타짜를 자처하는 것처럼 <타짜>의 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행동과 자처하는 것 사이에 상당한 괴리를 가지고 있다. 하우스에서 구라를 치던 고니는 동춘에게 당해 어머니의 전재산을 잃지만 스스로 도박판에서 사기성 기술로 돈을 따려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피한 채 오직 동춘과 그 위의 아귀에게 그 잘못을 돌린다. 어머니 돈만 찾아 오면 도박을 끊겠다는 다짐은 불곰과 아귀의 카지노 쟁탈전에 얽히며 잊혀지지만 고니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아귀에 대해 “아버지도, 대호 아저씨도, 난숙이, 영민이도 그 자식이 망쳐놨어”라고 되뇔 뿐이다. 아귀의 악행에 가담해 종국에는 불곰과 대호를 죽인 영민조차 그 모든 것이 고니 때문이라고 말하고, 오빠에 의해 팔려가 설계자로 성장한 난숙 역시 자신의 설계가 만든 결과를 따지기보다는 정마담에게 화살을 돌린다. 정마담이 광태에게 했던 “지들이 잘못한 걸 갖고 왜 자꾸 날 갖고 그래”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 알고 있는 인물은 오히려 탐욕의 화신인 아귀 밖에 없다. 모두들 상대방의 잘못만 없다면 과거로 되돌리거나 멈출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동은 아귀가 만든 구라판의 룰을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타짜>의 판은 갈수록 커지고 상황 역시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승부에서 주인공을 비롯해 어느 누구 하나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제시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타짜>의 도박판은 전작 <식객>의 공정한 요리 경합과 비교할 만하다. <식객>의 경합이 우리가 원하는 공정한 대결의 이상향이었다면 <타짜>의 도박판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악다구니에 가깝다. 파국의 진흙탕에 발을 걸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최대의 악당 외에는 모두 그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식객>과 달리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어떤 부분을 반영한다. 하지만 마지막 판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 이 드라마의 극적 쾌감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이런 현실 반영의 요소는 무뎌지고 있다.

나쁜놈 vs 더 나쁜놈

짝귀와 감방 친구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아귀와 영민에 대한 복수 계획을 만들어가는 고니의 모습은 영화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을 연상시킬 만큼 흥미롭지만 그 때문에 극의 시선은 추잡한 구라판에서 유쾌하고 의리 있는 고니 패거리 대 추악한 아귀와 영민의 대결로 옮겨졌다. 그렇게 옮겨진 시야의 사각에는 아귀와 함께 만석꾼 호구를 삼키려 한 짝귀의 과거와 마카오 범죄조직과의 커넥션 등이 의도적으로 은폐되어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잘못한 건 없다고, 극악한 대상만을 처리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믿는 고니의 자기모순적 최면에 시청자까지 빠져 그의 승리가 정의의 승리인 양 기대하는 건 문제다. 종종 아버지와 대호의 죽음을 이유로 복수에 대한 정당화 뿐 아니라 도덕적 우위까지 확보하려는 고니의 모습이 불편한 것은 그래서다. 승패를 가르는 게임의 방식이 추악하다면 승리자가 누가 되든 거기서 도덕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마지막 한 판을 앞둔 이 드라마는 과연 자기모순과 기만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패를 들고 있을까.
글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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