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아직도 지원 오빠는 농구 잘 하고 있어?
지원 오빠? 우지원? 어떤 의미에선 잘하고 있지. 그런데 무슨 꼭 2년 전 쯤 우지원이랑 헤어진 여자친구처럼 안부를 물어보냐.

이번에 KBS <개그콘서트>에서 ‘순정만화’라는 새 코너가 나왔는데 거기에 우지원이라는 농구부 주장이 나오는 거야. 그런데 연세대 있을 때 지원 오빠 모습 그대로인거 있지.
아, 그 개그우먼 장도연이 분장한 거? 얼굴은 진짜 많이 닮았더라. 그거 보고 옛 기억이라도 떠오른 모양이구만? 팬이었어?

당연하지. 그 때 연세대 농구팀 오빠들 얼마나 멋있었는데. 지원 오빠랑, 상민 오빠랑, 경은 오빠랑…음…장훈 오빠…아니 아저씨는 글쎄…
하긴 그 때 오빠 부대 장난 아니었지. 그런데 넌 팬이었다는 애가 왜 지금 우지원이 뭐하고 지내는지는 왜 몰라?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왜 따져?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해주고.
아니, 그냥 난…따지는 게 아니라…미안. 우지원은 지금 울산 모비스라는 프로팀에서 뛰고 있어. 예전처럼 3점슛을 열 개 가까이 넣는 에이스는 아니지만 팀의 큰형님 역할을 해주고 있지. 동생들 독려하고, 솔선수범해서 기초체력훈련하고, 수비 열심히 가담하고. 한 때 최고 스타였던 우지원이 이렇게 성실한 역할을 해주니까 팀 분위기도 좋고, 덕분에 현재 프로농구 팀 순위 1위에 올라있어.

역시 우리 오빠는 인간성까지 좋구나. 그런데 왜 요즘은 3점슛을 많이 못 넣어? 동생들만 너무 챙기느라 그런 거야?
아니, 그보다는 나이 먹고 체력이 떨어져서 출장 시간 자체가 짧아진 게 이유지. 이번 시즌에는 평균 8분 정도 뛰고 있거든. 팀 분위기 챙기는 건 오히려 그런 체력적 한계를 극복해서 팀에 공헌하려는 노력으로 보는 게 맞을 거야. 대신 요즘의 우지원이 정말 대단한 건 3점슛 성공률이야. 한창 잘 나갈 때도 40%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50%를 훨씬 상회하더라고. 두 번을 던지면 하나는 꼭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 요즘 출전 시간이 짧아서 이번 시즌 평균 득점이 4점 밖에 안 되지만 잠깐 나왔을 때 자기 할 몫은 충분히 해준다고 볼 수 있어. 가끔 20분 이상씩 뛸 때는 10점 이상씩 넣어주고. 나이 먹은 선수로서는 굉장히 모범적인 모습이지. 요즘은 코트의 황태자가 아니라 마당쇠라고 한다니까?

자꾸 나이 먹었다고 할래? 그리고 뭐 마당쇠? 납득할 수 없어.
저기…뭐 예전의 팬으로서 서운할 수도 있긴 한데 네가 기억하는 우지원은 1996년까지거든? 1997년에 프로팀 입단했으니까 프로선수로 10년 이상을 보낸 건데 체력이 예전 같을 수 있겠어? 연세대가 예전에 농구대잔치 시절에 허재가 있던 실업 최강팀 기아자동차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체력적인 우위였어. 그런데 연세대 우지원이나 이상민, 문경은, 고려대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같은 그 때의 오빠들이 이제 딱 자기들이 싸우던 실업팀 형님뻘, 아니 그 이상으로 나이를 먹었는데 용빼는 재주 있겠냐. 심지어 전희철은 은퇴까지 했다고. 운동선수가 나이 먹고 전성기가 지나는 건 절대 흉이 아니야.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팀에서 궂은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박수를 쳐야 마땅한 거지. <슬램덩크>에서도 변덕규가 말하잖아. ‘나는 팀의 주역이 아니어도 좋다’고.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들이 최상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짜 프로인 거야.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나. 그런데 왜 요즘은 연세대나 고려대 농구팀이 안 보이는 거야? 오빠들이 나이를 먹은 만큼 새로 파릇파릇한 대학팀 선수들이 생겼을 거 아냐.
생겼지. 그런데 이제는 그 시절 농구대잔치처럼 실업팀이랑 대학팀이 붙는 시합이 없어. 1997년에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실업팀이 프로팀으로 전환되고, 아마추어인 대학팀은 프로농구에 출전할 수 없게 됐거든. 그래서 왕년의 오빠들은 프로농구에서, 요즘의 파릇파릇한 오빠들은 농구대잔치에서 뛰고 있어.

내가 안 봐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프로농구를 만들었으면 인기도 더 많아지고 그래야 하는데 오히려 옛날보다 관심을 못 받는 거 아니야?
네가 기억하는 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인기가 떨어졌지. 사실 프로농구가 출범하게 된 것 자체가 당시 농구대잔치 인기를 등에 업고 좀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었으니까. 이미 졸업해서 삼성에서 뛰는 문경은이나 졸업을 앞둔 우지원처럼 대학 스타 출신 선수들도 바로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뭐 그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지금의 프로농구 인기는 그 때만 못하지. 사실 90년대 중반의 농구 인기라는 게 농구 자체의 인기만이 아니라 연세대랑 고려대의 오빠들 인기랑, 마이클 조던 같은 미국프로농구 스타의 인기, MBC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의 인기가 혼합된 거였거든. 그렇게 복합적으로 터져준 걸 고스란히 농구의 인기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당연히 지금 그만큼 농구 열풍이 불긴 어려울 거고.

지원 오빠랑 상민 오빠가 나이든 것도 가슴 아프지만 왠지 농구 인기가 줄어든 것도 좀 서운한대? 다시 예전처럼 그렇게 되는 건 정말 불가능할까?
지금 와서 <슬램덩크> 시즌 2 나와서 강백호가 ‘하하핫 풋내기, 내가 왔다’ 이러고, <마지막 승부>도 시즌 2 나와서 장동건이 프로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면 혹시 모르겠네? 같은 팀의 건방진 신인은 비, 상대팀 라이벌은 정우성 정도로.

불가능하다는 얘기구나.
혹시 모르지.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번에는 오바마 만나서 골프 대신 1 대 1 농구 뛰고 사진 찍고 ‘농구 프렌들리’한 정책을 하게 되면. 하긴 그래봤자 농구 코트만 한 100개 짓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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