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낭만닥터 김사부’ 한석규, ‘마스터’ 강동원 / 사진=SBS,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낭만닥터 김사부’ 한석규, ‘마스터’ 강동원 / 사진=SBS,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안방극장과 스크린에는 판타지가 넘쳐나고 있다. 인어(푸른 바다의 전설)와 도깨비(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가 큰 사랑을 받고 있고,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이야기(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중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로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러나 꼭 비현실적인 소재만이 판타지를 안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도 판타지는 그려진다. 이러한 판타지는 결핍에서 시작된다. 요즘 판타지는 정의의 부재와 연관된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사회정의를 지켜야 하는 이들이 이를 묵인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세월호 침몰 사건, 최순실 국정 농단 등 2016년도를 강타한 사건들은 올바른 사회에 대한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방영 중인 SBS ‘낭만닥터 김사부’와 영화 ‘마스터’ 속 정의를 지키려는 의사와 경찰의 모습은 의미가 깊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자신을 낭만닥터로 칭하는 김사부(한석규)와 열정 넘치는 젊은 의사 강동주(유연석)·윤서정(서현진)이 펼치는 진짜 닥터 이야기를 표방한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방영 8회 만에 시청률 21.7%(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한 뒤 꾸준히 20%대 성적을 유지 중이다. 흥행 불패 장르인 의학드라마와 한석규 그리고 ‘제빵왕 김탁구’를 집필한 강은경 작가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산 건 사실이었으나 예상보다 파급력이 크다. 그건 ‘낭만닥터 김사부’가 전하는 메시지가 현실과 맞닿았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 한석규
‘낭만닥터 김사부’ 한석규
‘낭만닥터 김사부’가 기존 의사들의 이야기와 차별점을 갖는 지점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통렬하게 꼬집어 냈다는 점이다. 1회 강동주와 윤서정의 돌발 키스, 교통사고 등 빠른 전개로 이목을 끈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아닌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진정한 의사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켜놓고도 당당한 기득권층, 군대 내 구타로 사망한 탈영병을 둘러싼 의사로서의 양심, 의료제도의 허점, 중앙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현실과 닮아 절망감을 안긴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전횡과 출세 만능 주의, 돈으로 차별받는 현실 등 대한민국의 어두운 이면 역시 가감 없이 그려낸다. 김사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굳건하게 지키며 이 시대의 정의에 대해 생각게 한다.

강은영 작가의 통찰력이 깃든 필력은 드라마의 힘을 더한다. “네가 시스템 탓하고, 세상 탓하고, 그런 세상 만든 꼰대들 탓하는 거 다 좋아. 좋은데 그렇게 남 탓 해봐야 세상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래봤자 그 사람들 네 이름 석 자 하나 기억하지 못할걸. 정말로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 그만하고 네 실력으로”, “환자의 인권? 의사로서의 윤리강령? 내 앞에서 그런 거 따지지 마. 내 구역에선 오로지 하나밖에 없어.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다른 건 그냥 다 엿 많이 잡수시라고 그래라”, “최고의 의사냐, 좋은 의사냐를 묻는다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한다” 등 자신의 안위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보여주는 김사부의 설파는 울림이 크다.

개봉 3일째 100만, 4일째 200만, 5일째 300만 관객을 동원한 ‘마스터’(감독 조의석)에는 답답한 현실과 대비되는 통쾌한 한방이 있다. 진회장(이병헌)은 화려한 언변과 사기수법, 정관계를 넘나드는 인맥으로 조 단위 규모의 사기 사건을 벌인다. 그를 끈질기게 추적해 온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진회장의 로비장부에 접근할 수 있는 진회장의 최측근이자 브레인 역할을 하는 박장군(김우빈)을 압박한다. 영화는 세 사람의 치열한 두뇌 싸움과 서울과 필리핀을 오간 대규모 로케이션 등으로 범죄오락액션의 장르를 충실히 따르며 흥행 질주 중이다.

‘마스터’ 강동원
‘마스터’ 강동원
‘마스터’는 그간의 범죄오락애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예측 가능한 전개를 보인다. 새롭지는 않지만 현실을 반영했고, 이를 쫓는 끝까지 쫓는 경찰의 모습으로 통쾌함을 더했다. 로비 장부와 정관계 인맥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진회장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일련의 사건들을 연상케 한다. 실제 진회장의 이름인 진현필은 희대의 사기범인 조희팔에서 초성을 따온 이름이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의료기기 임대업 사기를 통해 약 3만여 명으로부터 5조원 이상의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달아났다. 피해자는 대부분 서민이었고, 30여 명이 이 사건으로 자살을 했다. 이후 2011년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도주 과정서 조희팔과 정관계 유착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실은 여기서 끝이 난다. 조희팔은 사망했고, 그에 대한 수사도 이대로 끝났다. 하지만 영화는 투철한 사명감과 지능적인 경찰 김재명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김재명은 진회장을 잡겠다는 집념이 강하고,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김재명은 영국 윈스턴 처질 수상의 일화를 예로 들며 영화의 포문을 연다. 처칠 수상이 미팅에 늦어 과속을 하다 경찰에 걸렸다. 경찰은 “이 차에 수상이 타고 있더라도 예는 없다”며 벌금을 물렸다. 이에 감동한 처칠은 그 경찰을 특진 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경시청의 간부는 “당연한 일을 한 경찰을 특진시키는 조항은 없다”고 한다. 김재명은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인물이다. 나쁜 놈은 강한 외압이 있든 잡으려 한다. 모두의 만류에도 진회장은 물론 그 뒤를 봐주는 배후 세력까지 정조준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사회정의에 대한 결핍이 신념과 원칙을 지키는 캐릭터의 창조에 일조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며 사회정의를 구현하려고 하는 작품과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위로를 안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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