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배우 박보검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보검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보검이 ‘저주를 푼 자’가 됐다.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이하 구르미)’의 흥행이 주연배우 박보검의 ‘저주를 이겨낸 승리’로 해석되는 것은, 그의 전작이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응답하라’ 시리즈는 지난 2012년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을 시작으로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거쳐, ‘응팔’까지 모두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며 tvN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 가수 출신 서인국, 에이핑크 정은지, 아역 출신 고아라, 연기파 배우 정우, 신인 류준열과 박보검, 걸스데이 혜리 등 새 얼굴을 발굴하고 재조명해냈다는 점에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빛나는 동시에,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회자되는 ‘응답의 저주’가 배우들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응답의 저주’는 ‘응답하라’ 시리즈 출연 배우들이 이후의 행보에서는 그만큼 대중들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구르미’는 방송 7회 만에 20%대 시청률을 돌파(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 동시간대 시청률 왕좌를 지키고 있다. 극중 이영 세자 역을 맡은 박보검은 특히 매회 마지막 신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엔딩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로써 박보검은 ‘응팔’ 출연진 중 ‘응답의 저주’를 깬 거의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박보검이 깬 것은 ‘응답의 저주’가 맞을까?

배우 류준열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류준열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응팔’에서 박보검과 마지막까지 남편 후보로 열연을 펼친 류준열은 MBC ‘운빨로맨스’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로코퀸 황정음과 호흡을 맞추며 ‘짝사랑’아닌 ‘쌍방 로맨스’ 연기로 호평을 얻었다. 허지만 동시간대 1위 시청률로 시작해서 마지막 회 6%대 시청률을 기록하자, 대중은 류준열이 ‘응답의 저주’를 이기지 못했다고 평했다.

다른 시각에서 류준열의 행보를 지켜보면 그에게 ‘응답의 저주’가 드리워졌다고 말할 수 없다. 류준열은 ‘응팔’ 종영 이후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다. 첫 스크린 주연작 ‘글로리데이’를 시작으로 ‘계춘할망’, ‘양치기들’에서 감초 연기를 선보였고, 개봉을 앞둔 ‘더 킹’과 ‘택시운전사’에서는 조인성, 정우성, 송강호, 유해진 등 국내 대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혜리가 ‘응팔’ 이후 출연한 SBS ‘딴따라’는 7%대 시청률로 종영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혜리에게는 연기도전 후 첫 공중파 주연을 꿰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후에도 혜리는 다양한 광고에 모습을 드러내며 인기를 굳건히 하고 있다.

고경표 역시 현재 SBS ‘질투의 화신’에서 공효진, 조정석과 양다리 로맨스를 형성하며 인기 몰이 중이다. 이동휘는 ‘아가씨’, ‘럭키’ 등 다수의 영화는 물론 KBS2 드라마 스페셜과 tvN ‘안투라지’ 등을 통해 쉼 없는 연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극중 덕선(혜리)의 친구로 출연했던 개그맨 이세영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SNL 코리아’로 팔색조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포스터 / 사진제공=tvN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포스터 / 사진제공=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작 출연진들의 행보 역시 ‘응답의 저주’를 받았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서인국은 ‘응칠’ 출연 이후 SBS ‘주군의 태양’, tvN ‘고교처세왕’, KBS2 ‘너를 기억해’, OCN ‘38사기동대’, MBC ‘쇼핑왕 루이’ 등 꾸준한 연기 활동으로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 성공했다. 정은지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KBS2 ‘트로트의 연인’, ‘발칙하게 고고’로 지상파 연기 데뷔에 성공한 동시에 솔로 음원까지 흥행하면서 가수와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응사’의 정우는 ‘쎄시봉’, ‘히말라야’ 등 스크린 주연으로 거듭나 흥행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고아라 역시 ‘응사’ 이후, 앞선 공백기를 털어내고 활발한 연기 활동을 벌였으며, 현재 오는 12월 사전제작 드라마 KBS2 ‘화랑: 더 비기닝’의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일등공신 성동일, 이일화, 김성균, 라미란 등 감초 배우들에게는 ‘응답의 저주’라는 말을 가져다 대기도 민망하다.

“‘응답의 저주’라는 말이 속상하다.” 박보검이 ‘구르미’ 제작발표회에서 내비친 진심이다. 박보검은 “‘응답’이라는 작품을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려드릴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축복 같은 작품”이라며 “‘응팔’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차기작 역시 흥망성쇠를 떠나서 그분들이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고,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모든 작품을 임하는 마음은 똑같다. 당연히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지만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문현답이다. 출연 배우들 모두 ‘응답하라’ 시리즈 출연으로 빛을 받지 않았다면 누리기 어려웠을 꽃길을 걷는 중이다. 설령 수치화된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하더라도, 배우들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과정이 어찌 ‘저주’라는 단어로 명명될 수 있을까?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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