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불어라 미풍아’ 캡처 / 사진제공=MBC 방송화면
‘불어라 미풍아’ 캡처 / 사진제공=MBC 방송화면
남북 간의 뿌리깊이 자리한 갈등부터 이산가족의 아픔까지,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은 살바람(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이 되어 우리 민족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1950년 6·25 전쟁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현실을 MBC 새 주말극 ‘불어라 미풍아’(극본 김사경, 연출 윤재문)가 가족드라마에 담았다.

지난 27일 첫 방송된 ‘불어라 미풍아’는 2002년, 마카오에 사는 어린 장고(윤찬영)과 어린 승희(이영은)의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이날 장고가 자신이 다니는 국제학교에 북한 출신 승희와 영철(신기준) 남매가 전학 온 사실을 알리자, 어머니 황급실(금보라)은 “국제학교에 둘이나 보낼 정도면 북한에서도 고위층, 대단한 집에서 왔나보다”며 “북한 애들이랑 엮여서 좋을 것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장고는 “걱정마라. 그럴 일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앞서 승희-영철 남매가 한국인 장고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기 때문.

영철은 전학생인 자신을 도와주려는 장고에게 “간섭하지 마라. 남조선 애한테 볼 일 없다”고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승희 역시 “내가 왜 남조선 애한테 오빠라고 부르냐”고 퉁을 놓았다. 특히 동갑내기 장고와 영철은 체육 시간에 시비가 붙어 주먹 다툼을 하면서 퇴학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교장은 두 사람이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하며 진짜 친구로 거듭나면 퇴학 조치를 철회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고가 이 제안을 탐탁찮아하자 황금실은 “누가 북한 애들이랑 진짜 친구하라고 했냐. 친구인척만 하라는 거다”고 말했다. 영철의 부친 김대훈(한갑수) 역시 아들에게 “남조선 애들과 부딪히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어떻게 할 거냐. 퇴학 당하고 혼자 평양 들어가 봐야 정신 차릴 거냐”고 꾸중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현실이 어린 아이들의 사이마저 갈라놓았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반면 직접 전쟁을 겪은 세대는 분단의 갈등보다 거기서 비롯된 이산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통일을 바랐다. 6·25 전쟁 당시 피난 온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며 엄청난 부를 쌓은 김덕천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찾기 위해 중국 브로커를 고용했다. 그러나 사촌동생 조억만(정종준)은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가 형님한테 해준 게 뭐 있냐”며 “형님 옆에 있어준 것은 나다. 피난 가기 싫다고 다락방에 숨어 있는 내 손을 끌고 나온 게 형님이지 않냐. 그때 다락방에 숨어있게 놔두지 그랬냐”며 눈물을 흘렸다.

김덕천은 전쟁 당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사촌동생 조억만과 둘이서만 피난길에 올랐다. 임신 중인 아내를 비롯해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을 두고 떠난 뒤, 남북이 분단되면서 다시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가족을 찾고 싶다는 김덕천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덕천이 떠난 후 인민군이 마을을 공격하면서 주민 모두가 몰살당했다는 것. 이 사실을 안 김덕천과 조억만은 충격에 사로잡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같은 시각 마카오. 김덕천의 아내(손숙)는 살아있었다. 그는 아들 김대훈을 불러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며 “너희 아버지는 남에 있다. 아버지의 이름은 김덕천이다. 살아 있으면, 나중에 통일되면 꼭 만나라”고 말했다. 이어 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는 원망어린 물음에 “아버지가 혼자 남으로 갔다고 하면 네가 사람대접 받으며 살았겠냐”고 되물었다.

앞서 김덕천 역을 맡은 배우 변희봉은 제작발표회에서 “이번 작품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맞아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특이하다”며 “우리나라는 전세게 유일한 분단국가다. 우리 드라마를 통해 어르신들의 그리움과 한에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의 말대로 ‘불어라 미풍아’ 1회는 분단국가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다. 의도치 않게 가족의 곁을 떠나 그 이후로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했던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과연 김덕천이 아들의 존재를 알고, 그 아들의 가족과 만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을지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8시 45분에 방송되는 ‘불어라 미풍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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