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판타지를 위한 드라마는 있다
판타지를 위한 드라마는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해야 할까, 아니면 철저히 허구의 세계를 구현해야 할까. 만약 후자를 지지한다면, 김은숙 작가는 당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취향저격수’가 될 것이다. ‘김은숙-판타지=0’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드라마 세계에서 김은숙이라는 이름은 곧 판타지 로맨스의 절대자다.

김은숙의 판타지는 이제 넘볼 수 없는 그만의 시그니처다. 여자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작가, 김은숙이 만든 판타지는 꿈처럼 환상적이고, 성벽처럼 공고하다. 누가 이 판타지에 ‘현실’이라는 잣대로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이미 김은숙의 드라마에서 꿈과 환상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됐다.

#김은숙의 드라마 월드…왕자님, 로맨스, 판타지, 성공적

‘태양의 남쪽’에서부터 최근 방송 중인 ‘태양의 후예’까지, 김은숙 드라마 속 남성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자들’을 표방한다.

억울한 옥살이로 청춘을 모두 허비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그 사랑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태양의 남쪽’의 강성재(최민수), 패배도 추락도 겪어보지 못한 재벌이지만 사랑만은 두려운 로맨티스트 ‘파리의 연인’ 한기주(박신양),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본 적 없지만 겁 없이 똑똑하면서도 순진한 성형외과 의사 때문에 심장이 고장 난 ‘연인’ 속 조직폭력배 두목 하강재(이서진),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탓에 감봉이 끊이지 않지만 애인을 유학보낼 정도의 순정남 ‘프라하의 연인’ 속 최상현(김주혁), 행시와 사시를 동시에 패스한 천재관료이자 대한민국 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시티홀’의 조국(차승원), 신이 질투한 완벽남 ‘시크릿가든’의 김주원(현빈), 대한민국의 신흥 왕자님 ‘상속자들’ 김탄(이민호)과 최영도(김우빈), 그리고 현재 방송 중인 ‘태양의 후예’ 유시진(송중기)까지, 김은숙의 남자들은 모두 로망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피조물들이다.

이러한 남자 주인공들 때문에 김은숙의 드라마들은 흔히 ‘신데렐라 스토리’로 요약되기도 하지만, 사실 자세히 따지자면 김은숙표 드라마 속 ‘신데렐라 스토리’는 ‘파리의 연인’, ‘시크릿가든’ 그리고 ‘상속자들’까지 단 세 편에 불과하다. 오히려 ‘프라하의 연인’처럼 평범한 경찰이 대통령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역 신데렐라 스토리도 있었고, 방송가 전반을 다룬 ‘온에어’나 정치와 로맨스를 맛깔나게 버무린 ‘시티홀’ 역시 김 작가의역작이라 할만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은숙의 드라마들이 그 범주만이 조금씩 다를 뿐, 모두 판타지 요소가 덕지덕지 점철된 로맨스라는 점이다. 그것도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남녀 로맨스의 설렘포인트만 속성으로 쏙쏙 짚어낸다. 완벽하게 황홀한 로맨스, 어느 누가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씩 그 형태가 변주된 김은숙의 판타지 월드가 가장 극명하게 구현된 것은 ‘파리의 연인’. 이어 김 작가는 ‘시크릿가든’을 통해 이 뻔한 신데렐라 월드가 남녀가 몸이 바뀐다는 역대급 판타지를 만나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계급 차이를 부르짖지만, 이내 스스로 인정했던 계급차를 부수고 신데렐라의 세상으로 진입하려던 왕자님의 판타지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신사의 품격’에서 김은숙의 판타지는 여성에서 남성의 것으로 변화했다. ‘신사의 품격’ 전까지 김 작가가 여성의 판타지에 집중했다면, ‘신사의 품격’에서는 오히려 ‘40대가 되어도 남성들은 섹시할 수 있다’는 남성들의 판타지를 대변한듯한 캐릭터와 로맨스가 눈길을 끌었다. 최근 방송 중인 ‘태양의 후예’에서는 ‘제복’으로 이어지는 군인과 의사라는 특별한 직업군의 로맨스가 안방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졸지에 군대를 두 번 간 특전사 송중기와 의사가 된 송혜교, 두 사람의 만남만으로도 이미 화면은 판타지다.

#왕자님은 나만이 구할 수 있어! 김은숙, 여성들의 로망을 꿰뚫다

김은숙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것은 바로 신데렐라 스토리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이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진부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전 세대에 통하는 러브스토리의 정수다. 김은숙 작가는 왕자님을 만나고, 그의 유리 구두를 신는, 여성이 한번쯤은 꿈꿔본 내면의 욕망을 드라마로 구체화했다. 각자의 여성 시청자가 ‘나’를 투영할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여자, 그리고 재력, 매력, 비주얼 모두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가 어이없는 일로 인연을 맺어 영화처럼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나’에게 매달리는 남자가, 그것도 내외적 조건 모두 최고로 갖춘 남자가 거짓말처럼 또 한명 나타나 삼각 로맨스를 펼친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너무나도 진부하지만 그래서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이것은 성공 100%의 서사다.

여기에 김은숙 작가는 하나의 양념을 더했다. 더없이 완벽한 세상 최고의 남자에게는 영원히 아물지 못할 것 같은 상처가 있고, 상처가 만든 그늘 때문에 남자는 세상에, 그리고 사랑에 벽을 쌓았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지만, 그 남자에게는 환경이 준 선천적 결핍이 있다. 결핍은 치기를 만들고, 한없이 엇나가기만 하는 그는 세상에 상처받는다. 왕자님을 이 늪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만이 그를 바꿀 수 있다’는 여성 판타지의 최고봉, 김은숙 작가 역시 여성이기에 한 번쯤은 꿈꿔봤을 판타지의 결정체. 김은숙 작가가 꿈꾸는 로망은 곧 시청자들의 로망과 부합했다. 클래식은, 영원했고, 앞으로도 영원하다.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더불어 자기복제, 반복되는 유치한 클리셰 장본인이라는 오명도 동시에 얻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판타지와 로맨스와 만남이라는 무기를 가진 김은숙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결과물로 증명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신작 ‘태양의 후예’는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신드롬적 인기를 기록 중이다. 여전히 김은숙 작가는 2030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태양의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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