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이윤정
이윤정
‘태릉선수촌’, ‘트리플’, ‘커피프린스 1호점’, ‘하트투하트’ 그리고 ‘치즈인더트랩’까지,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윤정PD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윤정표 드라마에는 스토리를 관통하는 공식이 있다. 이윤정PD는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이 아픔과 시련, 위기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아주 덤덤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며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시간이 흘러도 ‘이윤정표 청춘드라마의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에게나 성장통은 있다

이윤정PD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 몸은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 됐지만, 마음은 아직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멈춰 있는 것.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조금 부족해 보일지라도, 혹은 모두의 선망을 얻는 직업을 갖고 있어도, 이윤정표 드라마 속 청춘들은 모두 조금씩 아픔을 가지고 있다. 마치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치르기라도 하듯, 이들은 모두 아프고, 또 방황한다.

‘태릉선수촌’에서는 같은 체급 선수에 눌려 몇 년 째 파트너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유도선수 홍민기(이민기), 양궁 금메달리스트에서 상비군으로 전락한 방수아(최정윤), 100년 만에 나왔다고 일컬어진 체조천재였지만 부상으로 올림픽 첫 출전 문턱에서 좌절하는 정마루(송하윤), 한국 남자수영선수 최초로 결선 진출에 성공하지만 비인기종목 차별 대우와 갈수록 퇴보하는 기록에 갈등하는 이동경(이선균), 네 사람의 치열한 오늘과 내일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출생의 비밀이라는 아픔에 갇혀 안하무인으로 살았던 철없던 부잣집 막내 최한결(공유)이 등장했고, ‘하트투하트’에서는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 때문에 할머니 분장부터 헬멧까지 뒤집어써야 하는 차홍도(최강희)와 집안, 학벌, 외모까지 다 가졌지만 성장과정 중 충격으로 여자친구와 한 침대에서 잠들지 못하는데다, 환자들의 상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두통, 환청, 일시적 기억상실이라는 치명적인 증상을 갖게 되는 고이석(천정명)이 주인공이다.

‘치즈인더트랩’에서도 여전히 청춘들은 아프다. 홍설(김고은)은 집안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뭐든 남동생에게 양보해야했던 상처 많은 큰딸로, 유정(박해진)은 내면의 상처를 가진듯한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려진다. 백인호(서강준)는 유정 때문에 손을 다쳐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피아니스트의 꿈까지 버리고 방황하는데다, 함께 고모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누나 백인하(이성경)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윤정PD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접근 방법 대신 이들이 처절하게 실패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한다. 누구나 아프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청춘의 연대의식’은 이윤정PD가 공감과 몰입을 통해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물론 ‘재밌어야 한다’는 드라마 제작의 제1원칙 역시 현명하게 비껴나가지 않는다.
이윤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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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라이너, 이윤정의 세상을 구현하다

티어라이너는 이윤정PD의 드라마와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지난 2005년 ‘태릉선수촌’의 음악감독으로 처음 이PD와 인연을 맺은 티어라이너는 ‘커피프린스 1호점’부터 MBC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드라마 페스티벌 ‘포틴(4Teen)’, 그리고 tvN으로 건너와 선보인 ‘하트투하트’, 최근작 ‘치즈인더트랩’까지 줄곧 호흡을 맞췄다.

이윤정표 드라마에는 늘 달콤한 로맨스가 있다. 물론 ‘기.승.전.멜로’라는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일. 그러나 이윤정PD의 작품을 떠올릴 때면 마음속에 녹아드는 편안하면서도 달달한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러한 이윤정표 드라마의 일관성은 티어라이너의 OST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느새 티어라이너의 음악은 이윤정PD의 드라마와 일체화됐다. 이윤정PD가 구현하고자 했던 시각적 세계는 오랜 시간 그와 호흡을 맞춰온 티어라이너의 OST라는 청각적 도구를 통해 구체화되고, 완벽해졌다. 나긋하고, 조용하고, 편안한 티어라이너의 음악은 세상을 향한 순수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이윤정표 드라마에 일관된 감수성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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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방, 청춘의 양극단

‘비’는 이윤정PD의 드라마에서 청춘의 청량함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빗속을 질주하는 청춘의 미장센은 이윤정표 드라마들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한다. ‘태릉선수촌’에서는 이민기, 최정윤, 송하윤, 이선균 등 네 주인공이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된 운동장을 뒹구는 장면이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장면으로 손꼽히며,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공유와 윤은혜가 봉제인형을 들고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달리던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치즈인더트랩’에서도 빗속 질주 장면이 등장했다. 영어학원에서 나온 서강준과 김고은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당황하지만, 이내 1회용 우산사기 내기로 빗속을 뚫고 편의점까지 달리기 경주를 벌인다. 티어라이너의 BGM과 만나 ‘치즈인더트랩’의 명장면이 된 두 사람의 빗속 질주는 마치 한 여름 밤의 꿈같은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며 ‘로맨스릴러’를 표방한 ‘치즈인더트랩’에서 로맨스 쪽에 무게추를 싣는다. 물론, 이윤정PD는 별다른 의도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윤정PD가 선보이는 빗속 질주 프레임은 이미 청춘의 표상이 됐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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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의 방은 드라마적인 배치 속에서도 실제 여성들의 방을 엿보는듯한 현실감을 준다. 이윤정PD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사는 집과 방이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시청자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만큼 드라마적 서사와 현실적 공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할 터.

‘트리플’에서는 하루아침에 짐짝처럼 오게 된 민효린이 창고를 개조해 매트리스만 하나 덩그러니 놓고 사는 현실적인 삶이 그려지고, ‘커피프린스 1호점’ 속 윤은혜의 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테리어는 모기에서 자유롭기 위한 모기장이다. ‘하트투하트’에서는 자유롭게 널려 있는 최강희의 빨래들이 공감을 자아내고, ‘치즈인더트랩’ 속 김고은은 책상을 화장대, 식탁 겸용으로 사용하는 ‘공감 100%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게다가 박해진이 갑작스럽게 집에 들이닥쳤을 때에는 수북이 쌓인 설거지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면봉과 화장솜이 시선을 강탈한다. 이윤정PD는 바로 내 집에서 볼 것 같은 현실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따뜻한 색감과 조명, 다양한 소품을 이용한 인테리어로 현명한 줄타기에 성공했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MBC, tvN, tvN ‘치즈인더트랩’, ‘하트투하트’ 방송 화면, MBC ‘커피프린스 1호점’, ‘태릉선수촌’, ‘트리플’ 방송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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