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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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오묘했다. 첫 비행에 나선 초보 비행사 이재준은. 아직 세상의 깊이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청춘은 경험이 없기에 불안했지만, 그래서 또 그만큼 더 폭발적으로 질주했다.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야간비행’(2014)은 뜨거운 에너지로 들끓는 ‘미지의 청년’ 이재준의 첫 비행일지였다.

퀴어영화의 탈을 쓴 성장영화 ‘야간비행’에서 이재준은 방황하는 일진 소년 ‘기웅’ 역을 맡아 불안한 청춘의 숨은 얼굴을 드러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에 솔직해지는 상대역 용주(곽시양)와 비교하자면, 기웅은 영화 도입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은 후 점점 자신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미묘한 감정에 갇히고야 마는 인물이다. 기웅은 자신을 쫓는 용주의 눈길을 “재수 없어!” 표독스럽게 쏘아붙이면서도, 또 완전히 거부하지 못해 용주 곁을 서성인다. 집 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부터 동정 없는 세상에 대한 울분, 사회가 금기라 말하는 것에 대한 욕망까지… 한마디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 사이를 이재준은 유령처럼 유영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이재준이라는 이름을 곱씹게 되는 것은 ‘야간비행’을 본 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극적인 경험일 것이다.

‘배우의 눈’을 지니고 태어난 남자의 운명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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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cm 큰 키에 곧게 뻗은 팔다리, 다부진 골격, 몽롱한 기운을 전파시키는 눈빛을 지닌 이재준의 가능성을 먼저 탐한 곳은 무용계였다. 고2 겨울방학,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접한 발레. 타고난 신체조건과 “발레 학원에 간 첫 날, 다리를 180도 완전히 찢어버린” 그의 근성을 눈여겨 본 발레 학원 원장님의 러브콜에 이재준은 세종대학교 무용과로 진로를 변경했다. 부상이 찾아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재준을 Mnet 댄스 서바이벌 ‘댄싱9’이나 예술의전당 발레 무대에서 만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용수에게 치명적인 허리와 발목부상은 이재준의 꿈을 시험에 들게 했고, 그 시기 그는 어릴 적 꿈꿨던 모델 일에 도전하며 자신의 현재를 능동적으로 가꿔나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모델’에 최적화된 인물임을 알리는 이재준을 모델계가 지나칠 리 만무한 일. 장광효, 최범석 등 유명 디자이너의 무대를 누비던 이재준에게 세 번째 기회가 온 것은 그때였다. “배우의 눈”을 지니고 태어난 운명은 그를 연기자의 길로 안내했다.

tvN ‘연애조작단; 시라노’에서 이종혁의 어린 시절을 맡으며 연기자로 데뷔한 이재준에게 ‘야간비행’은 자신의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절묘한 기회였다. “기웅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어요. 무엇보다 저는 ‘야간비행’을 찍기 전까지 외로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캐스팅이 된 후 일부러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고시원에서 잠도 자고, 혼자 술도 마셨죠. 그러면서 조금씩 기웅을 알아갔어요.” 작업은 고됐지만, 열매는 달디 달았다. 평생 연기해도 밟기 힘들다는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첫 작품을 통해 당당히 입성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랐다”는 이재준은 영화제를 다녀온 후 더 큰 꿈을 품었다. ‘칸과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언젠가 꼭 가고 싶어요!’

점점 흥미로워지고있는 비행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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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 Mnet 드라마 ‘더러버’에서 다시 한 번 브로맨스를 선보이는 이재준은 한층 노련해졌다. 709호 동거남 타쿠야, 그러니까 여전히 동성과 짝을 이뤄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지만, 금기의 감정 앞에서 이전처럼 주저하거나 괴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커플도, 친구도 아닌’ 아슬아슬한 관계를 역이용해 시청자의 상상력을 슬슬 자극하고, 주저 없이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까지 선사한다. ‘야간비행’에서의 이재준이 거친 남자의 표상이라면, ‘더러버’에서의 이재준은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청춘 같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재준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조니 뎁처럼 한 장르에 국한되기 보다는 여러 장르를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은 이재준의 다음 행보는 영화 ‘뷰티인사이드’다. 한효주와 호흡을 맞추는 ‘뷰티인사이드’에서 이재준은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남자 주인공’ 우진으로 분한다. 비록 단독 주연이 아닌 20인 1역이지만 충무로 선배들과 파이를 동등하게 쪼개가지며 짜릿한 활강을 선보일 채비를 마쳤다. 그의 비행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이유, 이 남자의 미래가 수상쩍은 이유다.

정시우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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