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송해 빈소 찾은 후배들
'전국노래자랑'으로 1000만명 만나
시대 관통한 인물
故 송해 / 사진=텐아시아DB
故 송해 / 사진=텐아시아DB
《윤준호의 복기》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동향을 소개합니다. 연예계 전반의 문화, 패션, 연예인들의 과거 작품 등을 살펴보며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을 이야기해 봅니다. MZ세대의 시각으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니즈는 무엇인지, 대중에게 호응을 얻거나 불편케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되짚어 보겠습니다.

故 송해 / 사진=텐아시아DB
故 송해 / 사진=텐아시아DB
故 송해의 마지막 길은 따뜻했다. 많은 이들이 고인과 함께했다. 사무치는 감정에 눈물을 보이는 이도, 호상이라며 웃는 이도 있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감정은 똑같았다. 송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 연예계 큰 별이 하늘로 떠났다. 그의 인생은 후대에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 향년 95세.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6월 초.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 3호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지고 장례식장 일대는 침통함과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송해의 인생을 대변하듯 연예계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유재석을 시작으로 강호동, 태진아, 송대관, 박나래, 이영자, 현숙, 인순이 등 수많은 후배들이 송해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송해를 찾은 이들의 첫 표정은 씁쓸함이었다. 고인을 본 이들은 이내 달라진 표정을 보였다. 은은한 미소를 보이는 사람도, 환하게 소리 내 웃는 사람도 있었다. 송해의 마지막 모습에 위로와 안정을 받았기 때문.

송해는 '국민 MC'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인물이다. 연예계에서만 70년의 세월을 몸담았다. 또한 대한민국 역사를 몸소 체험한 산증인. 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故 송해 /사진=텐아시아DB
故 송해 /사진=텐아시아DB
송해는 단순히 나이 많은 연예인이 아니었다. 고인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물. 빈소를 찾은 이들은 그를 '낮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나이나 사회적 위치를 내세우거나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전국노래자랑'의 장수 비결 역시 한결같은 송해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약 1000만명의 사람을 만났다. 숱한 세월, 사람들과 소통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다. 남녀노소 누구나 송해를 그리워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송해에 대해 "사람을 많이 아는 당신이 가장 부자다"라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송해'는 예명이다. 그의 본명은 송복희. 그는 6·25전쟁을 겪었고, 가족과 생이별했다. 피난길에 오른 송해는 바다를 건너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송해라는 예명 역시 ‘바다 해(海)’를 사용, 그의 의지가 담겨있다. 다만 그의 꿈은 하늘에서 이뤄지게 됐다. 2003년 '전국노래자랑' 평양 공연이 있었지만, 고향 재령 땅은 밞지 못했다고.

송해는 하늘에서 또 하나의 꿈을 이루게 됐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보낸 아들, 급성 폐렴과 패혈증으로 보낸 아내 고(故) 석옥이 여사,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오랜 친구, 희극인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국민 MC'가 영면에 들었다. 1955년 데뷔했고,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약 30년을 국민들과 함께했다. 옆집 할아버지 같은 포근함이었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어른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송해'라는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