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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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방송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출연 자체. CJ ENM이 문재인 대통령의 출연을 고사하고 윤 당선인만 출연시켰다는 논란이 일면서 신 정권 줄타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 되고 있다.

지난 20일 '유퀴즈'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이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이날 녹화장 분위기는 평소 와 사뭇 달랐다. 경호원들이 돌아다니는 등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와 관련해 유재석은 "저희도 갑자기 당황스럽다"고 털어놓기도.

윤석열 당선인은 '유퀴즈' 출연 이유에 대해 "국민들이 많이 보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를 해줘서 참모진이 한번 나가보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유재석은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제가 안 나올 걸 그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유재석은 "오늘 촬영장 분위기도 뭔가 다르다. 경호원분들도 있고"라며 전과 다른 분위기를 짚었다. 이에 윤 당선인은 "차차 적응되실 거다"며 웃었다.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캡처
방송 분위기 역시 평소와 사뭇 달랐다. 유재석도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건 말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윤석열은 당선 소감, 검사가 된 이유 등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심지어 방송이 끝난 후 업로드되는 클립 영상에서조차 윤 당선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송 다음날인 21일 미디어 오늘은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유퀴즈 제작진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출연 요청을 거부했던 사실을 뒤늦게 확인됐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유퀴즈' 제작진이 청와대와 접촉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 출연하는 것에 대해 의사를 타진했다고. 청와대 측은 담당 PD와 직접 통화까지 마쳤다. 하지만 '유퀴즈' 측은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 출연이 프로그램 콘셉트와 맞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CJ는 "문재인 대통령 쪽에서 '유퀴즈' 출연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일부 매체의 명백한 오보라는 설명. CJ가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과거 곤욕을 치른 경험이 발판일 수 있다.

CJ는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개봉했다. 대선 정국에서 개혁 군주인 광해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영화가 개봉하자, CJ그룹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영화에서 신하들을 두고 "부끄러운줄 아시오"라는 대사를 뱉는 장면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의 내용과 겹치면서 불붙은 'CJ의 줄서기'에는 기름이 뿌려졌다.

묘하게도 박근혜 정권에서 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 등이 1000억원대의 조세포탈 및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하면서 'CJ의 줄서기'론이 힘을 받은바 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2016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CJ가 1000만 영화 '변호인',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좌파 색을 띠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눈엣가시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 페이스북 캡처
/사진=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 페이스북 캡처
오동진 평론가는 "청와대 내부에서 영화계의 좌파적 성향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CJ를 비롯한 많은 기업의 영화 선택에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CJ는 2012년 이전 '광해' 제작, 배급, 투자한 뒤 '변호인' 등 고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있는 공동 투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온 뒤에는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보수적 색채의 영화 제작에 뛰어 들었다.

CJ의 입장 발표로 잦아들 줄 알았던 윤 당선자의 출연 이슈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입장을 밝히면서 반전을 맞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당선자의 출연 여부와는 별개로 청와대를 상대로 한 CJ의 거짓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먼저 작년 4월과 그 이전에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청와대 이발사, 구두 수선사, 조경 담당자들의 프로그램 출연을 문의한 바 있다"며 "그때 제작진은 숙고 끝에 CJ 전략지원팀을 통해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요지로 거절 의사를 밝혀왔고, 우리는 제작진의 의사를 존중해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탁현민 비서관은 "우리가 제작진의 거절을 군말 없이 받아들인 것은 그 프로그램을 존중해서였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전 정부에서는 그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며 "우리는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외압으로 인해 제작에 영향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러한 태도가 문화 예술을 배려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라고 믿어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도 윤 당선인의 출연이 오로지 제작진의 판단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때는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의 출연이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지금은 판단이 달라져서 윤 당선인의 출연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좋다"며 "다만 바라는 것은 어떠한 외압도 없었길 바라며, 앞으로도 오로지 제작진의 판단만을 제작의 원칙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방송쟁이, 문화 예술인들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최근 '유퀴즈' 연출을 맡은 김민석, 박근형 PD가 CJ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현재 JTBC 이적을 논의 중이다. PD들의 이적, 프로그램의 정체성 논란, 정치색 논란 등으로 현재 사면초가에 빠진 CJ다. CJ의 의견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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