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까까오톡≫
'누나 나 죽어' 성희롱이라 볼 수 있나
SBS, 또 '일베' 그림자 드리울까봐 급사과
'집사부일체' 194회/ 사진=SBS 캡처
'집사부일체' 194회/ 사진=SBS 캡처


≪정태건의 까까오톡≫
'까놓고, 까칠하게 하는 오늘의 이야기'.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방송계 이슈를 까다로운 시선으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SBS '집사부일체' 제작진이 쓴 '누나 나 죽어' 자막을 성희롱 발언이라 볼 수 있을까.

일부 누리꾼이 해당 자막을 두고 성희롱 아니냐고 지적하자 제작진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성희롱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사과는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급한 불을 먼저 끈 모양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한 가수의 터무니 없는 해명과 비슷하다.

SBS 관계자는 지난 9일 텐아시아에 "'집사부일체' 제작진에 의하면 해당 용어는 성희롱적 의도를 가지고 사용한 것은 절대 아니며, 특정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구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불편을 느끼신 시청자 여러분과 '스우파' 멤버분들께도 사과드리며, 향후 자막을 포함한 제작 과정에 더욱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논란의 자막은 지난 7일 방송된 '집사부일체' 194회에서 나왔다. 이날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댄서 8인이 출연했고, 댄스 신고식이 펼쳐졌다.

이때 한 댄서가 남성 출연자 앞에서 춤을 추며 한 바퀴를 돌자 이 출연자는 입을 가리며 깜짝 놀랐다. 이때 제작진이 '누나 나 쥬겅ㅠ'라는 자막을 삽입한 게 화근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해당 문구가 온라인상에서 높은 수위로 신체를 노출한 여성들의 사진이나 영상에 자주 쓰인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희롱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제작진은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입장을 내놓으며 한 발 물러섰다.

해당 문구는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처럼 사용되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사진, 영상, 그림 등의 통칭)이다. 무언가 '좋아 죽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성별에 따라 대상은 '누나' 혹은 '오빠'로 바뀐다. 이번에는 '누나' 였다.

유래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과거 '리그 오브 레전드(롤)' 대회의 리포터로 출연했던 방송인 김민아의 미모를 찬사하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당 게임의 주요 유저가 1020 남성이라 보기 드문 여성 리포터의 등장에 환호를 보내면서 처음 사용됐고, 이후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

하지만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사용되는 밈은 아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오빠 나 죽어'라는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남성 연예인들의 외모와 몸매에 감탄할 때 사용됐다.

실제로 노출이 심한 몸매 사진 뿐만 아니라 남다른 미모, 내면의 카리스마 등을 칭찬할 때도, 상황에 따라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당 자막을 성희롱 발언으로 몰아가는 건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상대방의 신체를 특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어 자체로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가능성도 낮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당사자인 댄서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일부 누리꾼들은 논란을 부추겼다.

결국 '집사부일체' 제작진은 성희롱적 의도에 대해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논란을 키운 자막에는 사과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 앞서 SBS는 수차례에 걸쳐 극우 사이트 '일간 베스트(일베)'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나 자막을 사용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전력 때문에 '집사부일체' 제작진도 이번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사과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고 한들 지상파 방송사가 저속한 표현을 썼다는 점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히 '집사부일체' 팀은 앞서 대선 주자 특집에서도 '파자마 마렵죠'라는 자막을 썼다가 일부 시청자의 지적을 받았다. 배설 욕구를 뜻하는 '마렵다'라는 표현이 지상파 방송 자막으로 쓰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취지에서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상당히 크고, 트렌드를 반영해 시청자들에게 더 큰 웃음을 줘야 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건 지양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새로운 밈이 탄생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집사부일체' 자막 논란은 최근 경상도 출신 걸그룹 멤버가 팬들과 대화중 사투리를 썼다가 '일베' 회원 의혹을 받았던 것과도 묘한 기시감이 든다. 대부분의 누리꾼이 그의 말투를 보고 '일베'라고 낙인 찍지 않았음에도 일각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 자막 논란도 일차원적이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이들로 인해 도마 위에 올랐다. 트집 잡히기 십상인 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방증한 셈이다. 특히 SBS는 자칫 실수를 범하면 앞서 저지른 과오와 겹쳐 확대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방송사인 만큼 더욱 철저하게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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