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서예진의 BJ통신≫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가 BJ, 유튜버, SNS스타 온라인 인플루언서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방송과 유튜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온라인 스타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플루언서에게 인권은 없는 걸까. 뒷광고 논란으로 방송 자숙 뒤 돌아온 인기 유튜버 보겸이 새로운 난관을 만났다. 이번엔 돈이 걸린 문제가 아니다.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 찍힐 위기에 처한 것.

게임과 먹방 주제로 방송을 하며 '치밥', '이게 실화냐' 등의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한 때 400만 구독자를 자랑했던 그의 채널 '보겸TV'의 정체성은 확 변했다. 최근 한달간 소소한 일상을 전하던 그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최근 올라온 영상의 썸네일은 검은 바탕에 '저보고 죽으라네요' , '당한만큼 돌려드리겠습니다' 등 분노로 가득찬 글씨만 남아 있을 뿐이다.

'보겸TV'가 변한 이면에는 젠더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보겸은 최근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보겸이 예상하는 소송비용만 1억원. 보겸은 억소리 나는 돈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건은 윤 교수가 철학연구회라는 학회에 논문을 쓰면서 시작됐다. 2019년 저술한 논문의 제목은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 남성성의 불완전변태 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 윤 교수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에는 '한남유충'인 한국 남자아이가 자라서 '한남충' 및 '관음충'으로 변이된다고 주장하는 과정을 곤충군집체와 비교해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한남충', '관음충'은 디지털 성범죄자, 불법 촬영물을 즐겨 보거나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을 표현하며 여기서 충은 곤충, 기생충과 같은 벌레를 의미한다. 주로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한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뒤 곤충에 비교한 논문은 놀랍게도 심사를 통과해 학회지≪철학연구≫에 게제됐다.

윤 교수의 논문는 주제뿐 아니라 내용 측면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윤 교수는 발생학과 관련해 브라이언 굿윈의 연구를 인용했다. 이를 두고 생물학 권위자인 김우재 하얼빈대학교 공과교수는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생학은 기본적으로 한 개체의 발생을 다룬다"며 "생물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군집을 이야기하면서 발생학을 끌어들이다보니 전혀 엉뚱한 맥락의 브라이언 굿윈의 연구를 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자로써 가장 큰 문제는 사실확인의 부재다. 이 지점에서 애먼 보겸이 등장한다. 논문의 각주 18번에는 '보겸이라는 유튜버에 의해 전파된 '보이루'란 용어는 보x('음부'의 비속어)+하이의 합성어로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2,30대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여성혐오용어 놀이의 유행처럼 사용되었다'고 설명됐다. 문제는 보이루가 그런뜻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보겸은 과거 윤교수와 같은 주장이 일자 보이루의 뜻은 보겸+하이루라고 수차례 밝힌바 있다. 물론 보이루라는 단어의 내용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단어 자체를 만든 보겸의 주장을 하나도 반영안한 논문이 객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철학연구회는 지난 19일 이 각주애 '보겸이 인사말처럼 사용하다'가 라는 설명을 추가했다.

보겸은 이 각주를 없애기 위해 항의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 속 보겸은 논문이 쓰여진 가톨릭대부터 철학 연구회, 한국연구재단 그리고 다시 가톨릭대를 수차례 방문했다. 민원인 자격으로 방문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할 말이 없다", "도움을 드릴수 없다", "어찌 못한다" 등이었다.

보겸은 편파적인 공영방송과 언론의 불합리에 대해서도 주장했다. 'MBC 라디오'의 '김종배의 시선집중'에는 윤지선 교수와의 전화 통화 인터뷰 내용이 담겼다. 보겸이 일베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지만, 방송국은 유튜브채널에 보겸과 '일베저장소' 로고를 합성한 이미지를 썸네일로 썼다. 보겸이 이를 지적한 뒤 MBC는 썸네일을 조용히 교체했다.
유튜브 채널 'MBC 라디오' 수정 전 썸네일(왼쪽), 현재 바뀐 썸네일.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유튜브 채널 'MBC 라디오' 수정 전 썸네일(왼쪽), 현재 바뀐 썸네일.사진=유튜브 채널 '보겸TV' 캡처.
보겸은 "MBC, SBS 등 공영방송이 논문 내용은 얘기 안하고 윤 교수의 주장만 전달하는 것은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도 곤욕을 겪고 있다. 그는 온라인 수업 중 접속한 외부인으로부터 욕설과 음란물 테러를 당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집단공격 범위가 온라인은 물론이고 내가 재직하는 대학교 정문에서 화상강의 현장으로까지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유튜버 보겸의 남성 팬들이 2년 전에 내가 썼던 논문의 각주 부분에 보겸이 나와 있다는 제보를 했고, 그것을 통해서 2021년 1월말 보겸이 저에 대한 저격 영상을 게시하면서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교수의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윤 교수가 사실 확인을 정확하게 했거나, 철학연구회의 심사 기능이 더 정교했다면 저격이 있었을가.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개수작TV'를 통해 "'보이루 라는 단어의 창시자인 보겸이 앞서 단어에 대한 의도를 명확하게 밝혔는데도 윤지선은 '보이루'의 어원이나 유튜버 보겸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논문을 썼다"며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연구자로서의 기본 태도조차 돼 있지 않다. 학술논문의 주장이라고 하기엔 그 빈약함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는 '교수와 일반인', '남성과 여성' 등 논쟁에는 다층적인 권력관계가 얽혀있다. 남성과 여성의 편가르기에서 여성 이라는 약자를 대변한 윤 교수는 상아탑이라는 권력에 숨어 유튜버를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BJ박소은' 등 여러 인플루언서들이 악성 댓글과 비난에 시달리다가 세상과 등졌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운동' 이라는 페미니즘의 사전적 의미가 머리 속을 맴도는 이유다.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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