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등단한 배우 박기웅
멀티숍서 전시회 개최
"미술 어렵게 생각하지 말길"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것"
"연기·그림, 감정 전달이 중요"
배우 겸 화가 박기웅/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배우 겸 화가 박기웅/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그림을 대충 그리지 못 하겠어요. 화가로 등단하기 전 취미로 그릴 때도 그랬지만 이제는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요즘에는 추상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정말 어려워요. 터치 하나도 무겁게 느껴져서 고민이에요.”

화가로 등단한 배우 박기웅이 최근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삼성동 럭셔리판다에서 본지를 만나 미술 활동을 시작한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많은 연예인들이 미술에 도전하고 있지만 박기웅은 전공자인 만큼 앞선 사례들과 궤를 달리한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그림을 선보이며, 배우로서 얻은 인지도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작업에 임하고 있다. “신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박기웅은 그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성 작가 못지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박기웅은 화가 등단과 동시에 ‘제22회 한국 회화의 위상전’ 특별상 K아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첫 출품작으로 입상할 정도로 실력 있는 작가지만 그는 말버릇처럼 “아직 많이 부족하다. 작가라고 하기 부끄럽다”며 멋쩍게 웃었다.

대진대 미대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다. 박기웅은 “원래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과거 인터뷰에서도 배우 안 했으면 그림 그리며 살고 있을 거라고 한 적 있다”며 “고등학생 때부터 그렸으니까 연기보다 그림을 먼저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좋아하는 걸 보면 그림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취미로 할 때보단 확실히 무겁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배우 데뷔 전 미술 입시 학원에서 소묘 강사로 일했던 그는 꾸준히 드로잉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친한 작가들과의 꾸준한 교류로 유화의 매력에 빠졌다. 박기웅은 “작가인 척 하는 게 꼴불견 같지만 그림을 대충 그리지 못 하겠다. 진지하게 다가가는 자세부터 주변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김성윤 작가가 고등학교 1년 후배라 많은 조언을 받고 있다. 스타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친구라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웠지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묻자 박기웅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누군가와 함께 전시회를 가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내가 그림을 잘 모르지만’이다”라며 “미술과 같은 대중 예술은 즐기는 사람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군가 제게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면 못 그리는 거예요. 연기도 마찬가지죠. 대중예술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편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스스로 느껴지는 바가 없으면 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그림인 거예요.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길 바랍니다.”
배우 겸 화가 박기웅(오른쪽), 나수민 럭셔리판다 대표/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배우 겸 화가 박기웅(오른쪽), 나수민 럭셔리판다 대표/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박기웅은 자신의 첫 전시회장을 정식 갤러리가 아닌 대형 멀티숍으로 택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한 카페에서 열린 전시회를 간 적 있는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전시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침 그때 럭셔리판다 나수민 대표가 마운틴무브먼트 황지선 대표를 통해 내 그림을 멀티숍에서 전시하자고 제안했다”며 “듣고 보니 꼭 갤러리에 전시할 필요가 없었고,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가둬 둔 것 같았다. 기존의 방식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장소에서 어려운 그림을 보는 것보다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음악을 어디서나 즐기듯이 미술도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고 답했다.

함께 자리한 나수민 대표는 “명품이라고 하면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요즘 20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친숙한 쇼핑몰에서 명품도, 그림도 즐길 수 있게 꾸며놨다”고 자신했다.

자신의 분신 같다는 그림들을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각종 명품 한 가운데 배치한 건 그만큼 자신감 있다는 방증일 터. 화려한 명품에 가려 자신의 작품이 묻힐 수 있지만 박기웅은 오히려 “‘명품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식 갤러리가 아니어서 걱정되는 건 있었죠. 아무래도 일반 갤러리보다 시선이 분산되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제 그림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제겐 이런 장소에서 전시할 수 있다는 게 더 특별합니다. 나중에는 카페에서도 전시해보고 싶어요.”

벌써 대부분의 작품이 판매됐다는 박기웅은 “보내기 싫은 작품이 너무 많다. 내가 이걸 어떻게 그렸는지가 전부 다 기억나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빼낼 때 기분이 이상하다”며 “공모전 수상작인 ‘EGO’는 진짜 아끼는 작품이다.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내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작업실이 제법 허전해졌어요. 다른 작가들한테 물어보니까 처음에만 그렇다고, 더 좋은 곳에 가서 사랑 받으면 더 좋은 거라고 말해주더라고요.(웃음)”
배우 겸 화가 박기웅/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배우 겸 화가 박기웅/ 사진=조준원 텐아시아 기자 wizard333@
최근 미술 활동을 시작한 연예인들이 많이 늘어난 상황에 대해 언급하자 박기웅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조금 더 무겁고 조심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입을 뗐다. 박기웅은 “나는 추상화가 정말 어려운데 남들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며 “나의 해석과 감정이 들어가고 그걸 보는 사람한테 전달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건데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알아서 느끼라’는 식의 작업은 무책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연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호흡할지 고민하고 감정을 잘 전달하는 것까지가 배우의 역할인 것처럼 작가도 대중들한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프로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는 즐기기 위해 하는 취미 생활과 아예 다르다. 나도 아직 부족하지만 감히 말하자면 진지한 접근이 되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꼭 미술 전공자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술 활동이 배우라는 직업에 긍정적인 게 훨씬 많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각이 생기니까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며 “단점은 아무래도 그림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만 확실한 건 도움 되는 게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연기와 그림 중 무엇이 더 재밌냐는 질문에 박기웅은 “연기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이니까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 상대방과 통할 때 오는 짜릿함이 좋지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연기에 방해되는 경우도 많다”며 “그림은 그런 게 없다. 캔버스 안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대신 잘해도 내 탓 못해도 내 탓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아직은 너무 재밌다”고 설명했다."제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감정을 공유하듯이 제 그림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작업한다면 1년 뒤에 제가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돼요. 부끄럽지 않은 그림을 그릴 테니까 지켜 봐 주시길 바랍니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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