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니어스(Genius)’ ‘언빌리버블(Unbelievable)’ 할리우드에서 다들 그 말만 하더라고요. 저는 ‘땡큐 쏘 머치(Thank You So Much)’라고만 했죠. 하하.”

아카데미 4관왕의 기록을 세운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오스카 캠페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생충’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등 주요 부문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이번 아카데미의 최다 수상이며,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최초다. 또한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을 동시에 가져간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도 1995년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마티’ 이후 64년 만이며, 역대 세 번째다. 아시아 출신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이안 감독(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 2013년 ‘라이프 오브 파이’) 이후 두 번째다. 비영어권 영화의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은 역대 6번째이며,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다.

“저는 아카데미가 전통을 선택할 것이냐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통이라면 유력 후보로 꼽혔던 ‘1917’이 작품상을 가져갔겠죠. 아카데미는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상이잖아요. 그 회원들은 비평가나 관객이 아니라 영화계 종사자들이죠. 그래서 회원들 사이에 시대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우리가 상을 가져올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한 기사에서 본 문구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요. ‘‘1917’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이 받는다면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였죠. 시상식 같은 행사에 가면 다들 우리에게 표를 던졌다고 하던데 체감으로는 우리가 수상하겠다고 했지만 표심이라는 건 또 모르는 거잖아요. 과연 우리가 상을 받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할까 싶었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곽신애 대표. /사진제공=A.M.P.A.S.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곽신애 대표. /사진제공=A.M.P.A.S.
할리우드에서 봉준호 감독의 인기에 대해서도 전했다. 곽 대표는 “우리가 길에서 현빈 씨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배우가 현빈 씨라면서요? 우리가 우연히 인기 배우들을 만나면 놀라고 환호하잖아요. 그 정도로 해외 영화인들이 감독님을 좋아해요. 영화 행사에 가면 다들 ‘봉(봉준호)’ ‘송(송강호)’이라고 환호하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사진 찍자고 해요. 미국감독조합상(DGA)에 갔을 때는 우리 테이블만큼 요란한 데가 없었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독님께 다가와 악수와 사진을 요청해서 감독님이 물병을 따서 마시는 데까지 40분은 걸린 것 같아요. 하하.”

봉 감독은 지난 1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을 “게릴라전”이라고 표현했다. 거대 스튜디오들의 캠페인에 비하면 ‘기생충’은 현지 신생배급사인 네온과 일을 한다는 점, 오스카 캠페인에 대한 경험이 적다는 점,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졌다는 점 등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봉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 “영화를 만들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보는 과정일 수도 있겠더라”고 말했다. 곽 대표 역시 이 말에 동의하며 “봉 감독도 오스카 레이스의 끝 무렵에 정립한 개념일 것”이라며 “우리는 처음이지만 앞서 많은 영화들이 그런 패턴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스카는 미국이 영화 산업을 계속해서 붐업시키는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들여다보면 오스카는 미국 메이저 배급사들의 텐트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다양성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영화들이 계속 있어줘야 산업이 돌아가니, 그런 작품들을 주목 받게 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비수기인 9~10월에 개봉해요. 우리 영화도 10월에 개봉했죠. 연말에 대작들로 극장가가 시끌벅적할 때 이런 영화들의 박스 수가 줄어요. 그러다가 각종 시상식의 노미네이션이 발표되기 시작해요. 그럼 이 영화들이 1~2월에 상을 받고 언론이 조명하고 화제가 되죠. 아카데미 역사만 92년인데 영화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신들의 영화산업을 계속해서 부흥시키고 선순환하게 만들기 위해 정착된 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기생충’의 주역들. /사진제공=A.M.P.A.S.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기생충’의 주역들. /사진제공=A.M.P.A.S.
곽 대표는 “오스카의 작품상에 노미네이션만 되도 그 전의 스크린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1000개가 된다고 하더라”며 오스카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로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북미 개봉 당시 3개관에서 걸렸는데, 지난달 스크린을 1000개 넘게 늘렸다. 곽 대표는 “작품상까지 받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상을 받느냐에 따라서 시상식 직후 스크린 수가 달라진다더라”며 “2000개는 될 거라더니 정말 그렇게 됐다”고 전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18일까지 ‘기생충’은 북미에서 4499만 달러(약 540억 원), 전 세계적으로 1억9783만 달러(약 2370억원)의 티켓 매출을 올렸다. 제작비 135억 원의 17배가 넘게 벌어들였다. 곽 대표는 “매출이지 않나. 영화가 벌어들인 총 수입”이라며 “전부 우리 수입은 아니다. 일단 반은 극장이 가져간다”고 밝혔다.

“마케팅 비용 등 경비도 빼야 하고 각 나라 배급사들이 가져가는 것도 있고, 남는 것들의 일부를 우리가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숫자는 어마어마해도 실제로 그게 다 우리 건 아니에요. 하하. 남는 건 있죠, 그럼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엄청나진 않다는 얘깁니다. 매출이란 게 허상이죠. 하하. 이 작품을 알아보고 각 나라에서 먼저 상영한 이들이 제일 큰 수익을 누리는 거예요.”

곽 대표는 “아카데미에서 입은 드레스는 최세연 의상실장이 드레스숍을 통해 빌려줬다. 치수가 커서 뒤를 임시로 기웠다. 재킷은 칸영화제에 가기 전에 맞춘 것”이라며 “소문이 났는지 그 가게가 꽤 인기있어졌나 보더라”며 웃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아카데미에서 입은 드레스는 최세연 의상실장이 드레스숍을 통해 빌려줬다. 치수가 커서 뒤를 임시로 기웠다. 재킷은 칸영화제에 가기 전에 맞춘 것”이라며 “소문이 났는지 그 가게가 꽤 인기있어졌나 보더라”며 웃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처음부터 영화인을 꿈꾸진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이야기를 좋아하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책을 좋아했어요. 나중에 보니 그 책들은 수필집 같은 게 아니라 다 ‘스토리’가 있는 거였어요. 고급스러운 스토리만 있는 건 아니었죠. 하이틴로맨스 같은 것도 많았어요. 어릴 때 집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이야기’ 같은 ‘세상에서 제일 시리즈’도 다 있었어요. 따지자면 호러, 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죠. 하하. 유치한 이야기들이 토막토막 모여있는데 그걸 다 읽었어요.”

곽 대표의 첫 직장은 출판대행사였는데 그곳의 동료들이 드라마 외주제작사로 이직하면서 곽 대표를 데려갔다고 한다. 곽 대표는 회사에 자주 놀러오던 정성일 감독과 알게 됐고 이후 정 감독이 준비하던 영화 전문 매거진 키노의 창간 멤버로 1994년 합류해 1995년 창간 때부터 2년 1개월간 기자로 활동했다. 곽 대표는 “사무실과 제호를 정하는 것부터 같이 시작해 3년 정도 키노에서 생활했다”며 “그 때 영화를 많이 봤고 영화 공부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가 탄생한 해가 1985년이라 창간호로 영화 100년사를 담은 책을 내자고 했는데 책은 내지 않았지만 이를 위해 공부한 기간이 기자들의 훈련 기간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개의 대학원을 다닌 수준으로 공부했다”며 “그 때가 큰 전환점이 됐다”고 돌아봤다.

“사실 영화에 대한 로망은 없었죠. 그래서 어느 순간 영화를 사랑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적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 스크린 같은 영화 관련 매거진을 모으진 않았거든요. 영화업계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청소년기에 그런 걸 보고 모으고, 또 그들은 그렇게 영화를 보고 영화를 꿈꾸고 영화과를 갔더라고요. 그렇게나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인데 문득 돌아보니 사라져 있는 거죠. 영화 일을 하길 원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없는 거예요. 저만 남아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때는 상대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곽 대표는 “오스카 트로피는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 들고 탔다. 네온에서도 ‘보통 물건이냐’며 분실될 수 있으니 들고 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오스카 트로피는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 들고 탔다. 네온에서도 ‘보통 물건이냐’며 분실될 수 있으니 들고 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남편(정지우 감독)도 저도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 아이 키울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제게 ‘초등학교 국어선생님의 길을 가야한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어야 했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도 있죠. 출산 휴가 3개월 후에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눈물이 나더라고요.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그때그때 운 좋게 해결은 됐어요. 그래도 마음은 계속 전전긍긍했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러 가장 마지막에 가는 엄마가 되는 그런 상황들이 이어졌죠.”

곽 대표는 지난해 열린 제20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제작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타이틀도 얻었다. 여성 영화인으로서 곽 대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자발적으로 고민이 시작됐다기보다 고민이 제게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게 있어요. 지난해 제가 페이스북에 ‘올해가 한국 여성 감독들의 원년인 것 같다’고 쓴 적 있어요. 그 전에도 여성 영화인들이 있긴 했지만 지난해 메이저에서도 인디에서도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잖아요. 작품들도 스치듯 볼 게 아니라 주목하게 되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제가 뭔가 할 수 있게 된다면 여성 영화인들, 여성 창작자들과 협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노력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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