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애인의 빚을 떠안게 된 태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애인의 빚을 떠안게 된 태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은 배우로서 또 하나의 언덕을 넘는 정우성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한탕을 꿈꾸는 어리숙한 태영을 위트 있고 인간적으로 담아낸다. 독특한 구성, 촘촘한 이야기, 예측불허 전개를 자랑하는 이 영화는 관객들이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닐 수도 있다. 정우성은 ‘관객들이 편하게 볼 영화’만 만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기를 하면서 작품 제작도 하고 연출에도 도전하는 영화인 정우성. 소신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날카로운 비난에 찔려야 하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걸어가야 하는 일과 같다. 정우성은 묵묵히 그러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10.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면을 봤다. 연기 변신을 의식한 작품 선택이었나?
정우성: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구성이 좋았던 데다 전도연 씨가 캐스팅 돼 있었다. 전부터 전도연 씨와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부러 그 기회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도연 씨가 출연한다는 건 이 작품을 선택하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10. 독특한 구성, 꼬여 있던 가지들의 하나의 큰 줄기로 단번에 연결되는 전개 등 영화가 신선하다. 당신은 이 시나리오의 어떤 면이 좋았나?
정우성: 인물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지 않으면서도 밀도 있었고, 공감 가기 쉽게 설명돼 있었다. 나는 원작 소설을 일부러 읽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이 원작이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시나리오로 갖고 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소모적인 인물이 없다. 돈 가방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갖고 왔지만 인간의 욕망 자체보다 돈 가방을 차지하려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고민에 더 포커스를 뒀다.

10.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정우성: 일단은 태영이라는 캐릭터를 떠나서 영화가 부끄럽지 않게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겠구나 싶어서 흐뭇하고 흡족했다. 태영의 첫 등장 신에서는 내가 너무 호들갑 떤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영화에 잘 안착된 것 같다.

10. 등장인물들은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지만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인 태영으로는 인간의 어떤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나?
정우성: 태영이 저지른 건 범죄 행위지만 그 자체가 악인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범죄가 정당하다는 건 아니다. 인간이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우리가 멀리 떨어져서 봤을 때 과연 그들의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명확히 가르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건 인물들에 대한 연민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장 중만(배성우 분)에게는 관객들이 충분히 연민을 가질 수 있겠지만 태영에게는 연민의 가닥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영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태영의 허점을 풍자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해 관객들을 헛웃음치게 하려고 했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10. 태영의 애인 연희 역인 전도연과는 이번에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다. 어땠나?
정우성: 반가웠다. 우리는 늘 같은 업계에 있는 동료였는데 서로의 연기를 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내가 영화 현장에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싶었고, 그걸 전도연 씨가 봐주길 원했다. 나 또한 전도연 씨가 현장에서 어떤 모습일지 막연히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긴 시간 전도연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영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느꼈다. 전도연 씨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서 때론 강단 있게 고집도 피웠고 영화를 책임감 있게 이끌고 나갔다. 좋은 동료의 자세를 서로 확인해볼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경력이 오래되고 각자 자기 세계가 있는 배우들끼리 부딪힐 때는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어떤 배우라고 입증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도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요소다. 교감할 수 있어 즐거운 작업이었다.

10. 영화 앞부분은 조금 답답하고 늘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지만 뒷부분에 가면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맛이 있었다.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이런 영화가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정우성: 한국영화도 많이 상업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상업화로 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장점과 단점이 생겨난다. 단점이라면 다양성의 훼손일 것이다. 독특한 영화를 만들려고 할 때 제작자나 감독이 고집 있게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보기 편한 영화, 쉬운 영화, 낯설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입하는 것은 어쩌면 ‘대중은 이런 영화 안 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지푸라기’의 김용훈 감독은 그렇게 용기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는 ‘생산’이 아니라 ‘창작’이지 않나. 나는 이 영화에 창작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10. 획일화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우성: 산업은 자본이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투자자가 없으면 제작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1000만 영화는 1000만 영화대로 인정하고 500만 영화는 500만 영화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건 투자자들에 의한 게 아니라 제작자나 감독들이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0억짜리 영화나 200억짜리 영화 모두 1000만을 꿈꾸긴 어렵지 않나. 80억짜리 영화는 거기에 맞는 목표를 추구해도 되는데 어느 순간 다들 ‘더 많이 보면 좋지 않냐’가 돼 버린다. 그러면 제작자와 감독들도 다양성을 점차 포기하게 된다. 모든 영화가 1000만 영화와 경쟁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각자에게 맞는 현명한 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우성은 “각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각자가 다른 여운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은 “각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각자가 다른 여운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10.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도 제작했다. 제작자로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도 있나?
정우성: 200만, 300만 영화가 나올수록 영화계가 더 건강해진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더 똑똑하게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소박하게 시작했다가도 허황된 욕심에 편집을 바꾸다 보면 갖고 있던 독창성을 훼손하게 된다. 배우들도 내가 들어왔기 때문에 예산을 더 늘려라는 이야기를 안 하면 된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해야할 작업들을 나누면 된다. 그렇게 여유를 좀 더 가지게 될 때 신예 영화인들과의 교류도 활성화된다. 또 그들의 신선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돋보이게끔 펼쳐줘야 한다. 리스크 케어를 자본에게만 맞기지 말고 여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방식도 필요하지 않겠나.

10. 전작인 ‘증인’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배우로서 정우성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방향성이 더 다채로워진 것 같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 스스로도 그런 기대감이 있나?
정우성: 기대가 많지는 않다.(웃음) 20대 때부터 규정되는 게 싫었다. 관객들은 ‘쟤는 왜 저런 선택을 하냐’며 주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된 것에 나는 머물지 않으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긴 시간 정우성이라는 배우에 관심을 갖고 봐줬던 관객들은 이제 그런 길을 걷는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다. “태영(‘지푸라기’)이 좋다” “순호(‘증인’)가 인생캐릭터다” “‘도경(‘아수라’)이 어울린다” 등 관객들은 저마다의 평가를 한다. 나는 늘 그걸 깨는 차기작을 선택했고 전작의 캐릭터들과는 다른 시도와 도전을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10. 변화된 대중들의 시선을 느꼈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 기뻤나?
정우성: 편안했다. 많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게 배우의 일이다. 팔색조가 되겠다기 보다는 인간이 놓인 여러 상황 속에서의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다른 모습을 가진, 다른 말투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런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10. 정우성하면 멜로물을 빼놓을 수 없다. 멜로 장르로도 만나고 싶은 영화 팬들이 많을 텐데.
정우성: 영화계에서 어느 순간 멜로 시나리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다양성의 측면과도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린다. 분위기가 편하고 좋을 때 관객들도 알콩달콩 남의 사랑 이야기가 보고 싶지 않겠나. 그래서 점점 멜로 장르의 제작이 줄어드는 것 같다. 반대로 다양한 장르가 극장에 걸린다는 건 사회적 분위기가 그 만큼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길 또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멜로는 어떤 배우든 기다리는 장르가 아니겠나. 이번 영화를 함께한 전도연 씨와 로맨틱코미디로 다시 만나도 좋을 것 같다.

10. 넷플릭스와 SF 스릴러 ‘고요의 바다’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다른 앞으로의 계획은?
정우성: ‘고요의 바다’에는 제작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다. 내가 메가폰을 잡고 출연도 하는 영화 ‘보호자’는 다음주에 첫 촬영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설렐 시간도 없다.(웃음)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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