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우빈 기자]
지난 23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에서 이재훈 역을 맡은 배우 이지훈.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지난 23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에서 이재훈 역을 맡은 배우 이지훈.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배우 이지훈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 23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를 통해서다. ’99억의 여자’는 우연히 현찰 99억을 움켜쥔 여자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이지훈은 윤희주(오나라 분)의 남편이면서 정서연(조여정 분)과 내연관계인 이재훈 역을 맡았다. 이재훈은 야망남이자 바람둥이인 ‘나쁜 남자’. MBC ‘신입사관 구해령’의 민우원, ‘사의 찬미’ 홍난파, ‘당신의 하우스헬퍼’의 권진국 등 그동안 이지훈이 맡았던 선하고 단정한 인물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지훈의 ‘나쁜 남자’는 다른 나쁜 남자와는 결이 달랐다. 욕심 많고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지만, 외로웠고 결핍이 있었다. 철없이 굴더라도 미워할 수 없었다. 이지훈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캐릭터에 개연성을 더했고, 덕분에 ‘섹시한 쓰레기’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이지훈을 지난 2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10. ’99억의 여자’를 무사히 마친 소감은?
이지훈 : MBC ‘신입사관 구해령’에 이어 ’99억의 여자’에 바로 출연했다. 연달아 2개의 작품을 했는데 잘 마무리해서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다. 지금은 후련하지만, 2주가 지나면 다시 또 연기하고 싶을 것 같다.

10. 이재훈은 ‘나쁜 남자’였다. 그동안 바르고 단정한 이미지의 캐릭터만 연기하다가 ’99억의 여자’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시청자들이 이재훈을 ‘섹시한 쓰레기’라고 불렀다.
이지훈 : 이재훈이라는 인물을 만나 푹 빠져 지냈다. 솔직히 말해 저는 해보지 않았던 인물을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 드라마 시작 전 이지훈이라는 배우에게 새로운 얼굴도 있다는 걸 시청자에게 알리고 싶었다. 끝나고 나니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아주신 것 같다. 기억에 남을 역할이자 드라마다.

10. 섹시함을 노리고 연기한 부분도 있나?
이지훈 : ‘섹시한 쓰레기’는 기억에 남는 댓글이다. 섹시하고 퇴폐미가 있는 게 아닌데 그런 말을 해주셔서 민망하다. (웃음) 섹시하게 보이게끔 연기하려던 생각은 없었다. 이재훈은 철이 없는 인물이다. 호흡, 말투, 눈빛 계산하지 말고 다 뱉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듬어서 연기를 하면 이재훈의 철없는 모습이 감춰질 것 같았다. 투박하게 보이고 과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렇게 연기하면 이재훈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에 그것만 보고 연기했다. 포장하지 않아야 밉지 않을 것 같았다. (웃음) 방송 초반 댓글에 이재훈이 과하는 말이 있다가 중반부터는 과하다는 말이 없어진 걸로 봐선 이재훈이라는 인물에게 힘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10. 99억의 여자’가 끝나고 들어오는 역할도 달라졌나.
이지훈 : 그렇다. 사실 나는 내가 곱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동안 선이 곱고 여린 역할들이 들어왔다. ’99억의 여자’를 찍은 후에는 남성미가 강한 드라마 대본이 들어오고 있다. 내가 겹치는 인물은 피해서 선택하는 편이라 차기작 캐릭터는 이재훈과 비슷한 인물은 아닐 거다.

10. 마지막 회를 앞두고 이재훈이 사망했다. 마지막 직전 죽는 설정이라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이지훈 : 시놉시스에는 중간에 사망하는 걸로 되어있었는데 후반까지 죽지 않는 걸로 바뀌었다.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이 좋아서 감독님께 후자가 좋다고 했다. 14부를 찍을 때 이재훈이 죽는 다음 회 대본이 나왔다. 피를 흘리면서 전화로 고백을 하는 부분을 보는데 영화 ‘영웅본색’이 떠올랐다. 대본을 함께 봐주는 아버지도 ‘영웅본색’ 같다고 하셔서 고(故) 장국영의 연기도 보며 참고했다. 촬영이 끝나고 작가님께 ‘영웅본색’ 오마주냐고 물어봤는데 맞다고 하셨다.

10. 죽기 직전까지 아내와 통화를 하고 영안실 장면까지 이어지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지훈 : 나도 연기를 하면서 먹먹해서 촬영 내내 눈물이 주체가 안됐다. 촬영 전 대사를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죽는 것도 이재훈스럽게 죽고 싶어서 오나라 누나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통화 장면을 찍을 때 상대방의 대사를 상상하면서 연기를 하는데, 나는 누나와 실제로 통화를 했다. ‘여보’라고 첫 대사를 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콧물이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웃음) 영안실 장면을 찍을 때도 울컥했다. 처음엔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감독님께 빨리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누나가 날 안고 우니까 눈물이 났다. 죽은 설정이니까 숨을 쉬면 안 되는데 눈물이 나서 참느라 혼났다.

이지훈은 “포장하지 않고 다 보여주는 모습은 극중 이재훈과 닮았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이지훈은 “포장하지 않고 다 보여주는 모습은 극중 이재훈과 닮았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10. 아내 윤희주 역으로 함께한 오나라와 호흡을 어땠나. 드라마 전부터 14살 차이 연상연하 커플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지훈 : (오)나라 누나가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주고 인생 조언 같은 것도 많이 해줬다. 내가 후배라 기댈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이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닌데 나이 차이로 주목을 많이 받아서 누나가 마음을 많이 썼다.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써서 최대한 누나에게 맞췄다.

10. 조여정과의 키스가 데뷔 8년 만의 첫 키스 장면이다. 긴장이 많이 됐을 것 같은데?
이지훈 : 볼에 뽀뽀하는 장면은 찍어봤는데 상대방을 덮쳐서 하는 키스는 처음이라 손과 등에 땀이 정말 많이 났다. 감독님이 ‘남성미를 보여줘! 한 번에 가야해’라고 요구를 하셨다. (조)여정 누나는 오히려 편하게 하라고 달래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누나한테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 한 번에 가볼게요’라고 했는데, 한 번에 못 가고 NG가 5번이나 나서 죄송했다.

10. 조여정은 어떤 선배였나.
이지훈 : 진솔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마음이 굉장한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조)여정 누나가 떡을 돌린 적이 있는데, 떡 위에 ‘지훈이 떡. 지훈이 꼭 챙겨가’라고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감동받았다.

이지훈은 이상형을 묻자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잘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이지훈은 이상형을 묻자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잘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 사진제공=지트리크리에이티브
10. 필모그래피를 보면 쉬지 않고 연기를 했다. 가장 긴 공백이 11개월이다. 쉬지 않고 연기하는 이유하는 이유는?
이지훈 : 내가 체대 출신이다. 도전하면서 연기를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기 위해서 연기를 시작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내 갈 길을 가려고 한다. 그래서 안정적인 것보다 도전이 좋다. 늦게 데뷔를 했기 때문에 더 해야 채워진다는 생각이 있어서 쉬고 싶지 않다.

10. 2013년 ‘학교 2013’로 데뷔한 후 8년 차 배우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자신에게 주고 싶은 점수는?
이지훈 : ‘학교 2013’에서는 장나라 선배와 이종석, 김우빈 두 친구가 잘해줘서 그 흐름 속에서 연기를 했다. 지금 보면 저렇게 연기를 하는데도 나를 써주신 감독님들께 큰절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웃음) 후회와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연기를 진지하게 대하게 됐다. 이 안에서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마음처럼 못 보여주면 (배우로) 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더 미친 듯이 연기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스스로 점수는 준다면 별 세 개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잘한 것도 분명히 있을 테고 잘하려고 발버둥 친 건 칭찬하고 싶다. 실수한 것들이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노력의 의미로 남겨두려 한다.

10.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이지훈 : 하루 한 끼는 소고기를 먹을만큼 정말 좋아한다. 세 끼 모두 소고기는 부담이니까 하루에 한 끼는 소고기를 부담 없이 많이 먹고 싶다. 또 주변 사람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자 배우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내 자리와 위치에 맞게 하나하나 가면 사람들이 말하는 무언가가 되어 있겠지’라는 생각이다. 지금 뭐가 될 거라는 생각이 없다. 그냥 하루 한 끼는 소고기를 먹는 게 내 목표다. (웃음)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