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상의 ‘마른인간 연구’ 이후로 처음이었다. tvN 꽃등심팀의 이국주는 체격의 불편함을 당당하게 불만으로 호소하는 여성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덩치가 큰 것이 곧 놀림감이 되는 세상에서 그녀의 개그는 참신할 뿐 아니라 통쾌하기까지 한 것이었고, 덕분에 꽃등심은 안에서 가장 극적인 순위 진폭을 그려낸 주인공이었다. 프로그램에 드라마를 불어 넣은 공로자이자, 프로그램 덕분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최대 수혜자인 이국주를 만났다. “저도 좋은 남자 만나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 덩치가 제 캐릭터니까, 지금은 일에 집중 할래요”라고 넉살좋게 말하는 그녀는 무대 밖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드디어 파란만장한 10라운드가 다 끝났다.
이국주: 막판에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 누적점수에서 졸탄을 앞지르는 게 목표였는데, 리허설 때 이미 우리가 졌구나 싶었다. 결국 최종 5위로 마감 했는데, 만족스러운 점수지만 아쉽기도 하다.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다”
<코미디 빅리그>│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졸탄 뿐만 아니라, 마지막 공연이라서인지 다들 굉장히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국주: 마지막에 다 쏟아 붓는다는 게, 우리 팀은 너무 욕심을 낸 것 같기도 하다. 게스트를 안 쓰다가 처음으로 등장시켰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별로였던 걸 보면. 그래도 바로 다음 달에 다음 시즌이 방송되기 때문에 빨리 준비해서 만회하려고 한다. 멤버도 더 영입하고. 김석현 감독님이 지금도 “환규가 더 날씬하거나 국주가 더 크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시는데, 그런 면을 좀 보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 두 사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팀이 가지는 장점도 있지 않나.
이국주: 그런 면도 있겠지만 지난 10주 동안 하면서 둘은 정말 힘들다는 걸 느꼈다. 머릿수가 하나 더 있으면 회의 할 때도 좋고, 당장 누가 스케줄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면 남은 한 명이 정말 외롭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이 정말 어려운 게, 보통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재미있는 코너가 준비되어 있으면 녹화를 하지만 여기서는 무조건 녹화를 해야 한다. 무조건 할 수 있는 것을 일주일 동안 만들어 내야 하는 거다. 4주차 때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심지어 녹화 중에 대사 NG를 내기도 했는데 무대에서 내려와서 울기까지 했다. 요시모토 군단이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나. 그런데 나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 대사를 틀렸으니 너무 속상한 거다.

그 정도로 타이트한 경쟁이 될 줄 모르고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국주: 환규오빠가 먼저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써먹을 데가 많다는 걸 아니까 아무래도 나를 데려 온 것 같다. (웃음) 거의 속아서 온 거나 다름없다. 출연진 중에 옹달샘, 갈갈이 몇 팀만 들었는데 그때는 그 팀들과 같이 방송을 하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고, 각 방송사 대표 개그맨들이 모이는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정도인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출정식을 하러 유람선을 타면서부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전체 멤버가 다 모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사람도 너무 많고 분위기도 너무 심각한 거지. 게다가 MBC 프로그램과 병행 할 수 있는 가벼운 스케줄로 생각 했는데, 제명 관련한 보도가 나오면서 정말 심각해져 버렸다. 사실은 MBC에서 우리를 징계하거나 그런 건 없는데 말이다. 고명환 선배도 “너네가 유재석, 강호동도 아닌데 뭘 신경쓰겠냐”고 말씀해 주시고. (웃음)

하지만 관객들 못지않게 방송사 관계자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국주: 솔직히 관객들은 안 웃긴 사람은 그냥 기억을 못한다. 그들에게는 웃긴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소동을 벌이면서 출연을 해 놓고 막상 꼴찌를 하니까 MBC 식구들에게는 창피하더라. 자존심도 상하고. 일을 할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일이 되게 잘 되던가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초반에는 둘 다 안됐으니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지친 상황에서 ‘불만고발’을 새로 만들어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국주: 처음에 작가님이 뚱뚱한 캐릭터를 버리지 말라고 얘기를 해 주셨다. “실제로 네가 힘든 부분이 없냐”고 접근할 수 있는 힌트를 주신 거다.

“하재숙 씨가 지금 내 마음 속의 라이벌”
<코미디 빅리그>│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두 사람이 같이 극을 꾸려나가다가 한사람이 전면에 나서고, 한사람이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로 물러나게 될 때는 미안하기도 했을 것 같다.
이국주: 되게 미안한 일이다. 개그맨이니까 본인도 얼마나 웃기고 싶겠나. 솔직히 초반 4회까지 내가 너무 기가 죽고 지치니까, 어차피 내가 못할 거라면 환규 오빠가 잘하는 걸 하고 내가 깔아주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항상 같이 웃기자는 주의다. 너도 하나는 웃겨야 할 것 아니냐고 내 것도 하나 더 넣어 주신다. 너무 감사한 일인데 그게 코너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차츰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만고발’을 처음 공연하고 나서 선배님이 “아, 내가 빠져야겠다. 네가 하고 나는 받쳐줄게”라고 하시더라. 그게 개그의 룰이라는 걸 알면서도 못 지켰던 건데 2위를 하는 바람에 확실히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우리 팀에 다른 멤버가 들어오게 되면, 나는 내가 받쳐주는 역할을 할 각오가 되어 있다. 팀이 꼴찌를 하느니 남이 주목받는걸 보는 게 낫다는 걸 알았다. (웃음)

코너의 중심이 되면서 주목 받는 만큼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나.
이국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지점인데, 회의를 할 때 쫄티, 스키니 진 아이템이 나오면 나는 실질적으로 그걸 입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느낌을 주기 위해 입는다고 해도 일단 몸이 들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콘셉트가 나오면 바로 동대문으로 가서 옷부터 알아본다. 신발 안에 다른 신발을 양말처럼 신고 있었을 때도, 신발을 구둣방에서 다 해체해서 안에 깔창을 얇은 걸로 바꿔 넣어서 최대한 늘여놓았던 거다. 핑크색 트레이닝복도 내가 직접 구한 거고. 나는 의상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평소에도 출연료 대부분이 의상비로 다시 투입 되는 편이다.

후반에는 차력에 가까운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경쟁이 심해지면서 강렬함을 주기위한 선택이었나 싶기도 했다.
이국주: 연습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박살이 나더라. (웃음) 내가 하는 개그가 솔직히 비호감의 위험 요소가 많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웃기 시작하면 즐길 수 있는데 “쟤 어떡해, 불쌍하다”는 얘기를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몸매를 드러내는 것도 내 의지 이전에 코미디적으로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처음에 엉덩이로 뭘 깨는 건 ‘핑크가 아니라 탱크’라는 맥락이 있었던 건데, 김석현 감독님이 그 부분은 끝까지 가져가도 되겠다고 욕심을 내시더라. 그래서 나중에는 그 부분을 어떻게 넣느냐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3주차에는 반응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냄비를 너무 빨리 찌그러트린 거다. 그렇게 강한 카드를 일찍 던진 건 승부수였나.
이국주: 회의실 소품으로 양은 냄비가 있었다. 나랑 환규 오빠랑 그걸 쳐다보면서 서로 말은 안 하지만 각자 욕심은 내고 있었는지 내가 그냥 “해 볼까요?”하고 물으니까 “괜찮겠냐?” 하시더라. (웃음) 시험 삼아 도전했는데 이게 완전히 찌그러진 거다. 소품 신청할 시간도 없어서 녹화 날 아침 일찍 마트를 세 군데를 돌아서 냄비를 구해 왔다. 녹화에 들어가면 내가 굉장히 업되는 스타일인데, 흥분하는 바람에 냄비 가운데 앉아야 하는 걸 그만 모서리에 앉아버렸다. 덕분에 찌그러진 모양은 더 티가 났는데, 나중에 좀 아프더라. 녹화 중에는 아픈 걸 알지도 못했다. 사실 느꼈더라도 티를 내면 안 되는 거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순간, 그 개그는 끝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굉장하죠”가 치고 나온다. (웃음) 의 ‘네바퀴’에서 이미 선보였던 멘트인데 코너와 잘 어울렸다.
이국주: 그때는 그냥 흘러가는 대사였는데, 이번에는 중심 멘트가 되면서 반응이 좋았다. 기분이 좋은 게, 연관 검색어로 ‘이국주 고향’이 뜨더라. 그만큼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보였다는 거니까. 사실 나는 서울사람이고, 목포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그런 선배들 있지 않나. 막 무게 잡고, “야, 서울, 늬들 목포 우스워? 우습냐고”하면서 군기 잡는 선배들 흉내 내면서 억양이 입에 익은 것 같다.

KBS ‘영덕 우먼스 씨름단’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했는데, 그때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이국주: 일단, 그때는 대사가 많이 없었다. (웃음) 드라마 자체가 처음인데 씨름을 하느라 몸까지 써야 하고, 지방에 내려가서 일주일 내내 촬영 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거기다가 사투리까지 써야 하는데 경남, 경북 다르다고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억양에 대한 주문을 하시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다. 경상도 출신 동료들한테 녹음을 부탁해서 연습도 했지만, MBC 개그맨 동기 오빠 중에 창원 사람이 있어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그 오빠 말투로 감을 잡았다. 끄지라, 니 뭐꼬, 뭐꼬. 미?나. (웃음) 드라마 출연을 더 하고 싶어서 사투리는 계속 연습할 생각이다. 하재숙 씨가 지금 내 마음 속의 라이벌인데, 그분보다 연기를 더 잘하지 않으면 좀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이제는 방송을 좀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 빅리그>│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국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관찰력이 좋다는 얘긴데, 가수들을 패러디 한 UCC 시리즈를 보면서 특히 그런 점을 많이 느꼈다.
이국주: 미술을 전공해서 남들보다는 관찰력이 있는 편일 거다. 의상 제작도 직접 다 했고. 특별히 외우지 않아도 노래방 가면 누구 안무구나, 느낌은 살릴 수 있는 정도다. 그리고 원래 춤추는 걸 워낙 좋아한다. 어렸을 때도 연예인이 되고 싶은 이유가 춤 때문이었다.

장래희망이 개그맨이 아니었던 건가.
이국주: 고등학생 때 쇼핑몰 고객 장기자랑에 나가서 춤으로 1등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월말 결산에 나갔는데, 또 상을 받고, 금방 연말 결선에 나갔는데 인기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막연히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KBS 의 ‘나도 TV 스타’ 코너에 참가했는데, 여기서 상을 받으면서 개그맨 오빠들하고 친해졌다. 오빠들을 통해서 갈갈이 오디션을 권유 받았고, 개그계에 들어선지 겨우 6개월 만에 남들은 몇 년씩 걸린다는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특별히 의지를 갖지 않아도 일들이 뚝딱뚝딱 진행 된 편이다.

그렇게 쉽게 흘러왔으면 막상 방송을 시작하고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신인상을 받고 굉장히 울기도 했지 않나.
이국주: 처음에는 비호감이라고 나를 방송에 안 쓸 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럼 왜 뽑았나, 고민도 했었는데 정말로 내가 제일 마지막에 뽑혔다고 하더라. CP님이 “쟤가 개그 안 하면 뭘 하겠냐”고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동기들은 다 선배님들이 하는 코너에 들어가서 방송을 하는데, 나 혼자 남아서 매주 코너 검사 받고 퇴짜 맞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참 힘들었다. 여자 동기들은 술을 안 마시고, 오빠들은 남자니까 하소연하기 어렵고, 친구들은 이 세계를 모르니까 공감을 못하고, 가족한테는 미안해서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을 극복하고 결국 MBC에서도 많은 코너들을 했다는 건, 승부근성의 힘일까.
이국주: 욕심이 많다. 자존심도 되게 세고.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환규 오빠가 ‘고독한 킬러’라는 코너를 할 땐데, 뚱뚱한 여자가 필요하다고 나를 불렀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되는 역할이었는데, 앉으면서 다리를 꼬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장면을 넣으면 재밌겠다 싶더라. 그런데 리허설에서는 안보여주고 본 녹화 때 터트렸다. 안 웃기면 진짜 혼나는 상황인데 도박을 건 거다. 다행히 그때부터 코너 고정이 됐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모습들이 결국 환규 씨가 당신을 파트너로 결정한 이유가 되었을 거다.
이국주: 사실 단 둘이 밥 먹을 때도 어색할 정도로 우리는 오빠, 동생보다 선후배에 가까운 사이다. 오히려 를 하면서 많이 친해지고 있다. ‘주연아’의 김주연이 친한 동긴데, 처음에 선배님들이 모두 주연이만 예뻐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환규오빠가 “왜, 국주도 귀여운데”라고 얘기하는 걸 내가 우연히 들었다. 나중에 그 얘길 했더니 오빠는 기억도 못하더라. 그래서 더 고마웠지. 내가 불쌍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거니까. (웃음) 그거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온 만큼 또 다음 시즌을 가야 한다. (웃음)
이국주: 초반에는 정말 그만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감독님이 개그맨들 회의 하고 있으면 먼저 퇴근을 안 하실 정도로 우리를 대접해 주시니까 믿고 가려고 한다. 마지막 회 회식할 때 이명한 CP님이 우리 코너를 좋다고 해 주신 것도, MBC에서 처음 “굉장하죠”를 만들어 주신 김구산 PD님이 잘보고 있다고 문자를 주신 것도 너무 힘이 된다. 이제는 방송을 좀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즐겨야지.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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