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은 참 거침없는 사람입니다. 좋으면 다가가고 궁금하면 물어보고 이상하면 따지고 쌓이면 터트립니다. 배우로서 엔터테이너로서의 행보 역시 거침없습니다. 지난 해 KBS <추노>의 소리 없이 강했던 ‘공스나이퍼’ 업복을 거쳐, tvN <택시>의 모범 운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고, SBS 라디오 <공형진의 시네타운> 장수 DJ도 모자라 KBS <불후의 명곡2>에 깜짝 등장해 아이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2일 개봉한 <커플즈>에서는 한 여자 앞에서 새 삶을 결심하는 귀여운 순정마초가 되었습니다. ‘인터뷰 100’ 앞에서 털어놓는 이 남자의 진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공’의 움직임 역시 아니나 다를까 참 거침없습니다.
100: 사람이든 작품이든 늘 거침없는 평가를 하시는 편인데요. 만약 영화 <커플즈>를 자평하신다면 어떨까요?
공형진: 솔직히 이야기하면 앞부분이 지루하긴 해요. 한 20분 정도? 하지만 이건 이후 이야기 전개를 위해 구조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물론 이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영화라고는 말 못하죠. (웃음) 하지만 분명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구조를 가졌고 특성도 다르거든요. 스스로 내 작품 중에서는 미덕이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100: 본인 작품 중에서 마음에 안 드는 영화도 있나요?
공형진: 그럼요, 당연히 있죠.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안타까운 영화죠. 하지만 그 역시 후회스럽진 않아요. 어떤 이유로 선택했건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내가 선택한 작품이니까요.

“첫 무대에서 연출은 무슨 개뿔, 나 배우 해야겠구나”



100: 그렇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공형진: 물론 영화는 감독 예술이니까 감독이 우선이 되어야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결국엔 사람, 같이 일하는 배우가 우선이에요. 이 시나리오를 선택한 나와 호흡을 해나갈 배우들이 누구 인지를 보고 선택을 하는 거죠. 내가 그들을 신뢰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신뢰해줄 거라는 믿음도 같이요.

100: 하지만 다른 배우가 전혀 세팅이 안 된 상태에서 시나리오만으로 먼저 선택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들에게 추천을 하는 편이기도 하세요?
공형진: 그럼요. 자주 그러는 편이죠. 혹시 이 작품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 하고.

100: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배우로서도 있지만 프로듀서적인 성격도 강한 것 같아요.
공형진: 예, 그런 욕심이 많아요. 앞으로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싶은 꿈도 있고. 배우를 하다 보면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이 늘 있으니까,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는 호기심도 생기는 거고, 그 호기심이 좀 더 강하게 되면 공부를 하게 되는 거고, 공부를 하게 되면 열망이 생길 테고 그 이후엔 그 열망을 실천으로 옮기고 싶어 하겠죠.

100: 원래 중앙 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입학 하실 때도 연기가 아니라 연출 전공이었는데요.
공형진: 막상 연출 전공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좌충우돌하는 내 모습을 3학년 선배들이 지켜보고 계셨던가 봐요. 갑자기 <환도와 리스>라는 3학년 정기 공연 워크숍에 너 한번 해보지 않을래? 해서 오디션을 보게 되어서 어이없이 3학년 공연 무대에 같이 서게 되었어요.

100: 연출이 아니라 배우로 말이죠?
공형진: 예. 그렇게 무대 위에 올라가면서 우와~ 연출은 개뿔! 배우구나, 나 배우 해야겠구나.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이었어요. 아! 그 때는 정말이지 학교 가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그러다가 2학년 때 우연히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하게 되고, 3학년 때 당시 서울방송, SBS가 개국하면서 공채 탤런트가 된 거죠. 그렇게 학교생활도 가열 차게 하면서 나름 배우로서 스타트는 순풍에 돛단 듯 시작하게 되었죠.

100: 그러고 보면 데뷔부터 지금까지 큰 실패가 없었던 인생이기도 하네요.
공형진: 그건 그래요. 내 욕심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그렇게 큰 어려움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하지만 군대 제대하고 결혼하고 2, 3년? 마음고생을 하긴 했죠. 혼자서 오디션 보러 다니면서 어떨 땐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다니면서 애를 썼죠.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 안 되는 거 아냐?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내가 이런 것도 못 버텨내면 어디 가서 뭘 해내겠냐는 생각만 들었죠. 가장 힘들었던 건 오히려 군대 다녀와서 드라마를 몇 편 하면서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구나 깨달았던 때였어요.

100: 뭐가 그렇게 싫었나요?
공형진: 이렇게 살다 가는 고정 배역을 맡아서 출연료 타 먹으면서 고만 고만한 존재감으로 남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추구하는 배우의 이상이나 목표는 이것보다 훨씬 큰데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 제대로 된 배우가 되려면 일단 연기부터 잘해야 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전원일기> 세트로 찾아갔어요. ‘유시어터’ 대표인 유인촌 선배를 뵈러요. 당시 거기에는 최민식 선배가 있었고 올리는 작품들도 좋아했거든요. 결국 극단 유에 막내 기수로 들어가서 <택시 드리벌>를 포함해 세 작품 정도를 하면서 영화 쪽 오디션도 보고 다녔죠. 그리고 <쉬리>라는 시나리오를 접하고 난 후에 102일 동안 강제규 감독 사무실에 무작정 출근을 시작했어요.

100: 하하하. 102일 동안요?
공형진: 아침 일찍 나가서 청소도 하고 제작부 일도 하면서 세 번 정도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작품엔 출연을 못했어요. 당시 데뷔작 감독이셨던 김성홍 감독이 <신장개업>이란 영화를 준비하신다길래 초밥 두통 싸 들고 가서 행인 A라도 시켜 달라고 부탁해서 감사하게도 ‘김 순경`이라는 역할을 주셨어요. 그렇게 <신장개업>하면서 <박하사탕> 오디션 가서 설경구 씨 물 고문하는 ‘송 형사`라는 역할을 얻게 되었고 이후 <단적비연수>, <선물>로 이어진 거죠. 사실 이정재 씨랑 나온 <선물>에서 꽤 비중이 높아서 아! 이제 됐구나 했는데 편집에서 거의 다 날아갔어요. (웃음) 그러다가 마침내 <파이란>을 만나게 된 거죠.

“이제 조금씩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중”



100: 최민식 씨는 극단 유에서 처음 만난 건가요?
공형진: 1학년 때 실험극장에서 하는 <에쿠우스>를 보러가서 그때 엘런을 하는 최민식이란 배우를 처음 봤죠. 우아, 저 사람 뭐야. 대단했어요. 그 때부터 최민식이란 배우를 팬으로서 후배로서 엄청나게 좋아하고 존경했고요. 그러다가 <쉬리> 찍으실 때부터 왔다갔다 하는 저를 조용히 한 2년 반 동안 지켜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파이란> 작품을 읽어보라고 주셨어요. 당연히 내가 경수란 역할을 탐 낼 줄 아셨던 거죠. 물론 시나리오 읽자마자 아! 내가 배 깔고 누워야겠구나, 했죠. (웃음)

100: <파이란>에서 두 사람이 보여줬던 호흡이 남다르긴 했어요.
공형진: 그게 다 애드리브예요. 처음에 ‘X까시요 X을까-’ 노래 부르며 춤추고 까부는 게 다 내가 술자리에서 (최민식)형한테 하던 짓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최민식은 굉장히 치밀하고 무서운 배우라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아마 내가 그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절대 같이 안 했을 사람이에요. <파이란> 촬영을 몇 회 남겨두고 거의 다 찍었을 때 “형진아, 이제부터 <파이란>이란 영화를 찍으면 정말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비로소 너하고 나하고 죽이 맞는다는 말씀이셨던 거죠. 그러니까 80%까지 찍을 때까지 나는 얼마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었겠어요. 살벌하게 욕먹은 적이 되게 많아요. 민식이 형으로부터는 단순히 연기를 어떻게 해야한다하는 기능적인 것보다는 아! 어떤 게 배우구나, 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체득할 기회를 얻었어요. 이후 배우로서의 연기론 연기관 역시 최민식이라는 배우로부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죠.

100: 작년 <추노>를 끝내고 뭔가 더 터져줄 것 같은데 연기로서는 주춤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공형진: 갈증이 너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회사 문제가 있어서 지난 1년 반 동안 거의 작품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더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했어야 하는데 못했던 게 사실이죠. 이제는 매니저나 회사에 맡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전처럼 좋은 작품이 있다고 하면 내가 직접 수소문해서 뛰어다니고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100: <대한이, 민국씨>의 ‘민국 씨’는 축구선수, 의사, 택시기사, 권투선수, 택시기사 등 하고 싶은 것이 계속 바뀌는데 원래 어릴 때 꿈은 뭐였나요.
공형진: 어릴 때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가만 보면 유치원 때부터 앞에 나가서 뭘 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내가 하는 거에 웃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개그맨 하라고 했었어요. 물론 축구 선수도 개그맨도 어머니의 교육열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죠. 그냥 막연히 경영학과나 정치외교학과 같은 델 가야지 생각했고. 그런데 재수 할 때 삼수 하던 어떤 형이 너 같은 애가 연극 영화과를 가지 누가 연극 영화과를 가냐? 하는 거예요. 태어나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아예 생각을 못했던 거죠. 잠깐… 연극… 영화과? 뒤통수를 빡! 맞은 것 같은 파장이 오는 거예요. 무조건 자신 있다 무조건! 물론 부모님에게는 연출 공부해서 이 다음에 교수를 하겠다, 그랬죠. 열흘 뒤엔가 아버지가 생각에 변함 없나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야! 니 인생이니까 니가 알아서 하는데, 대신 나한테 비겁한 모습 보이지 마라”라고 딱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100: 그래도 그 때 믿음을 가져주신 건 그 전까지는 크게 사고는 안치고 살았나 봐요. 대중적 이미지의 공형진은 오히려 사고도 좀 많이 칠 것 같고 불같은 성격에 꽤나 충동적일 것 같은 남자인데 말이죠.
공형진: 애들 때린 것 빼고는 (웃음) 정학을 맞거나 그런 건 없었으니까요. (웃음) 굉장히 다혈질인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을 때 나오는 성질이지 대신 괜히 ‘지랄’은 안 해요. 맹목적 지랄을 하면 나중에 꼭 불리해지게 되어있거든요. 책 잡혀. 대신 앞뒤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할 때는 좋은 게 좋은 거다 넘어가진 않죠.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늘 혼나면서 학습된 것 같은데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대의와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을 때 그 꾸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100: 눈치도 빠른 아이였겠네요.
공형진: 엄청 빨랐죠. 그렇다고 얍삽한 건 아니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공공에 피해를 주는 것이냐 이런 거에는 예민했죠. 사춘기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남들 다한다는 가출도 한 번도 생각 안 했어요. 아 왜 집 나가서 왜 고생을 하냐, 눈앞에서 복장 터트리는 게 더 효과적인 걸? (웃음)

100: 그렇게 사춘기 한번 안 겪었던 성장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중순이었나요? 라디오 덕에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는 게스트의 ‘촉’으로 느끼기엔 뒤 늦은 사춘기를 앓고 계신 듯 했는데요.
공형진: 맞아요. 첫 사춘기였죠. (웃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는데 회사문제도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너무 없는 거예요. 양에 차지도 않고. 불평불만이 생겼다는 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잘 가고 있니? 어떻게 할래? 이런 생각이 몇 달간 지배했어요. 자연히 자신감도 결여 되고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혼자의 생각이 많아지니까 굉장히 우울해지더라고요. 나는 뭔가를 막 열정적으로 에너제틱하게 해야 하는 사람이고, 힘들더라도 그걸 해내는 기쁨에 사는 놈이었는데 그게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느끼니까 죽겠더라고. 게다가 주변 친구들은 다 바쁘지 허구헌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잖아요. 굉장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엔 내가 바닥을 치고 올라와야지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런 생각에 든 것도 최근이에요. 이제 조금씩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중이랄까요.

“이제는 친한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100: tvN <택시>, SBS 라디오 <공형진의 시네타운>의 놀라운 섭외력에서도 이미 증명되었지만 대중들은 공형진 하면 누구 누구와 친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든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인맥과 관계를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공형진: 사실 원론적으로는 그 이야기가 맞아요. 내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준다는 건 내가 형으로서 동료로서 고마운 일 인 거지, 빚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나 역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뿐인 거죠. 섭외가 되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그들에게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 거고. 어떤 분들은 공형진은 왜 방송만 나오면 장동건 이야기를 하고 현빈 이야기를 하는 건데? 라고 하시겠지만 처음엔 다 할 만한 관계니까 했거든요. 하지만 이런 게 본의 아니게 되풀이되다 보니 그게 상대방에게도 민폐인 거고 나도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내가 그들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기분이 좋지도 않고. 그런데 어떤 방송에서 친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갑자기 정색하면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맙시다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유하게 농담처럼 언급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먼저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아지더라고요.

100: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공형진: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과 신뢰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로서의 노력도 분명히 필요하고요. 그건 단순히 만나는 횟수와 상관없이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 어떤 상황이 오든 예전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거예요. 그저 형으로서 선배로서 친구로서 그들의 안위를 묻는 마음,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이 되더라도 같은 형태일거고요. 한 때는 내가 이 사람들과 정말 친한가,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도 나를 생각할까? 라는 고민도 했는데 아니라고 해서 내가 또 달라질 건 없잖아요. 스스로 주관을 가지고 사는 한, 그건 내가 지켜나가야 할 나만의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100: <커플즈>의 병찬도 그렇고 결혼도 일찍 하고 아들도 벌써 15살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유부남이나 가장 캐릭터보다는 노총각이거나 바람둥이 연애의 가능성이 있는 역할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역할만 들어오는 걸까요, 혹시 일부러 피하는 걸까요? (웃음)
공형진: 그런 역할만 들어왔어요. 일단 나는 나에게 들어온 작품들을 웬만하면 해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 갔다가 온 시나리오든 나에게 처음 왔든 간에 나를 원하니까 온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영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이 작품에 어떻게 하면 맞출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이죠.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일부러 기혼자 티를 안내고 다니는 건 아닌데. 일단 아직 철이 없어요. (웃음) 때 되면 하겠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철없게 봐주시니 나로서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100: 조만간 종편의 연예정보 프로그램 MC를 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공형진: 단독 MC인데 기존 연예정보프로그램과 다르게 약간은 보도적 기능이 더해질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제가 생각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은 이래요. 나 역시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배우로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 싶어요. 프로그램엔 기자들이 패널로 나올 예정인데 어쩌면 대립각을 이룰 수도 있겠죠. 어떤 사안이나 인물에 대해 서로가 토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슈가 되는 스타가 있으면 내가 인터뷰어가 되어 나가기도 하고. 또 종편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본업은 배우니까 드라마나 영화나 연극이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건 다 할 거예요. 그래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진짜 멀티플레이어가 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공형진한테는 뭘 맡겨도 다 잘해낸다고.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