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장윤주가 정말로 다재다능하다고 느낀 것은, 그녀가 코미디언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농담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볼 때였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모델들은 많았다. 하지만 장윤주는 여러 가지 일을 맛본 것에 더해 웃기기 위해 승부욕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예능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거의 최초의 모델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런웨이와 패션화보에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 최고의 모델이기도 하다. 모델이라는 꼭짓점으로부터 가능한 멀리까지 다리를 뻗어 커다란 원을 그리는 장윤주는 그래서 자유로운 동시에 고집스러운 사람이다. 둥글둥글한 그녀의 이야기에도 갈피를 잃지 않는 단단한 심지가 있었다.

오늘 사진을 찍는 모습은 평소와 달리 부드럽고 둥근 느낌이다. 보통 모델들은 각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마련인데.
장윤주 : 원래 사진의 콘셉트에 따라 몸의 느낌은 달라진다. 하지만 패션지 작업을 할 때는 늘 만나는 사람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는 색다른 느낌을 받기도 한다. 촬영을 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나도 달라지는 거다.

포토그래퍼는 익숙해지더라도 콘셉트와 옷은 매번 달라질 테니까 항상 현장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하려는 긴장이 있을 것 같다.
장윤주 : 스캔이 빠르다. (웃음) 어떤 촬영인지 딱 보면 감이 오는 거지. 언제까지 모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는 늘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감이 모델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 같다. 패션 일은 정말 감각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옷, 헤어, 메이크업을 보고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해야 하는 거다. 그걸 잃지 않으려고 나도 계속 촬영을 하고 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유재석은 동치미 같은 사람”
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일종의 순발력인데, 그런 지점은 아무래도 방송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장윤주 : 특히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분들도 ‘감 잃었어’라는 표현을 많이 하시니까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심지어 앨범을 낼 때도 무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나도, 관객들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르더라. 각자의 분야가 물의 컬러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기 때문에 요구하는 순발력의 종류가 다르다.

특히 KBS 에 출연 했을 때, 그런 순발력을 시험받았을 것 같다. 워낙 활달한 예능인들과 함께 출연해서 준비한 이야기를 다 풀어놓기도 벅찼을 것 같은데.
장윤주 : 정말 힘들었다. (웃음) 다들 개그맨이고, 붐 씨 같은 분은 굉장한 각오로 나오신 분들 아닌가. 그 속에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느껴지니까 굉장히 피곤하더라.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을 해서 그렇지, 현장에서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런 자리만 가도 무섭고 떨렸는데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난 것 같다. 다만 나도 더 재미있고, 나도 개그우먼을 꿈꿨던 웃긴 사람인데 그런 부분이 마음처럼 안 나오면 짜증이 나는 거지. (웃음)

그래도 방송에서 분량은 충분히 확보한 편이다. (웃음) 미리 준비한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었나.
장윤주 :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정도는 미리 작가와 상의를 한다. 하지만 막상 녹화를 할 때는 상황이 전혀 딴판이더라. 현장의 분위기와 나의 컨디션,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왔다갔다 하니까. 하이패션 개그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라디오 작가들이 재밌다고 추천해 준 소재였는데, 원래는 부연 설명이 굉장히 많았다.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 포즈는 살아있는 거고, 움직이는 사람이 확신만 가진다면 누가 봐도 그건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패션이 된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했는데 다 편집 됐다.

그 와중에 짓궂게 놀리는 사람들도 있고. (웃음)
장윤주 : 아, 그러니까. 녹화 끝나고 박명수씨한테 왜 놀리냐고 했더니 “야, 너 이뻐. 어?” 딱 한마디 하시더라. 솔직히 그런 놀림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는데,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나에 대해 “아, 그 얼굴 못생긴 모델?” 하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난감하기는 하지. (웃음)

하지만 그런 친근한 지점이 당신의 장점이다. 모델 출신이면서 지나치게 서구적인 마스크였다면 이렇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장윤주 : 그래서 나는 이소라 언니가 새삼 대단한 것 같다. 서구적이면서도 글래머하고, 어딘가 그루브한 그런 이미지이지 않나. 진행하는 스타일도 그분 스타일대로 깔끔하게 잘 하셨던 것 같다. 내가 방송 일을 하니까 이제야 그런 지점들이 새롭게 보이더라. 그래서 나도 어떤 이미지를 갖고,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요즘 고민이 많다. 에 출연해서 엎어지고 망가져도 여전히 광고에서는 모델의 모습을 요구받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고. 패션계에서는 경력도 많고 이미지도 구축되어 있는데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365일 예능적인 모습만 보여 줄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런 고민들이 결국 당신이 진행자를 꿈꾸게 만들었을 텐데, 모델 출신의 누군가가 아니라 유재석을 롤모델로 꼽았다.
장윤주 : 처음 유재석 씨를 만났을 때는 밋밋했다. 강호동 씨는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귀여운 면이 있는데, 유재석은 무슨 맛일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팀을 만났을 때도 내가 가장 호감과 매력을 느낀 건 박명수 씨였다. 남자다울 뿐 아니라 나에게도 “야, 너도 코미디언 해. 이렇게 좋은 직업이 없어!” 그러는데 정확한 꼭짓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유재석이라는 사람의 매력이 드러나더라. 어떤 콘셉트를 해도 다 소화해 내고, 은근하게 뭐든 다 잘하는 거지. 달력 모델 마지막 미션을 보면 박명수와 유재석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우승자를 떠나서, 유재석은 수수하고 꾸밈없는 웃음을 보여줬고 그게 대중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드는 거다. 동치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 어떤 반찬에도 잘 섞일 수 있는.

“스스로를 기획할 줄 아는 능동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
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장윤주 “가수, 방송인, 하지만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방송을 시작할 때 최고의 교보재를 곁에 둔 셈이다. (웃음)
장윤주 : 너무 예의가 발라서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정말로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끝까지 끌어안아 주는 사람이더라. 그리고 토크를 할 때도 게스트를 얼마나 편안하게 해 주는지 감탄하게 된다. 자신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을 잘 띄워주고 세워준다. 정말 작은 것에도 반응해 주고.

그러나 모델은 어디서나 눈에 띄어야 하는 직업이다. 정반대의 역할인 동치미를 지향하려면 혼란스러울 텐데.
장윤주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훈련 아닌 훈련을 하고 있다. 교회에서 친구들을 믿음으로 이끌어 주는 소그룹의 리더를 3년째 담당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법을 많이 배웠다. 그 덕분에 이나 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적절할 때 순발력 있는 멘트를 날리는 센스와 위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반년 넘게 라디오 진행을 한 것도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장윤주 :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 라디오를 열심히 듣던 세대라서 DJ를 꿈꾼 적이 있기도 해서 더욱 각별했지. 하차가 결정 되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도전하고 싶다. 다만, 그땐 좀 덜 부담스러운 자리로 갔으면 한다. (웃음)

너무 아침시간이라서 힘들었나보다.
장윤주 : 아침형 인간이라서 방송 시간 자체는 괜찮았는데, 워낙 DJ계의 거장이신 이문세 선배님의 자리를 이어받다 보니 후임자로서 부담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청취자 분들이 4,50대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과 공감하기에는 내가 많이 어리다는 것도 느꼈다.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안 낳아봤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한정적인 거다. 결국은 몇 달 사이에 청취층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청취자와의 교감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DJ 자격은 충분하지 않나. 한때는 일주일에 CD를 10장씩 샀다고 들었다.
장윤주 :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싸이월드에 음원을 2천곡 넘게 샀었지. 최근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음원을 미친 듯이 구입하고 있기는 하다. 큰일이다. 컴퓨터에 연결할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마구 다운 받는 거다.

음악을 워낙 좋아하니까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소감도 남다를 것 같다.
장윤주 : 페스티벌 레이디라서 싸인회도 하고 공연도 준비 중이다. 짧게 30분 정도 무대를 가질 예정인데 1집 수록곡들은 이제 좀 지겨워서 신곡을 하나 생각하고 있다. 가을에 관한 노래가 될 것 같은데 GMF와 어울리는 느낌을 찾느라 고민이 많다.

신곡이 어느 정도 모인 것 같은데, 새 앨범을 기대해도 괜찮을까.
장윤주 : 그동안 틈틈이 작업은 했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첫 앨범과는 느낌이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그때는 내가 혼자 너무 많은 부분을 책임지려고 하다 보니까 돈 계산까지 다 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프로듀서를 둘까 한다. 노래도 더 잘 부르고 싶고, 가사도 더 깊이 있게 쓰고 싶고, 전체적으로는 소녀가 아니라 여자의 느낌이 풍겼으면 좋겠고. 누가 어울릴까 생각 중이다.

이제 소녀가 아니란 것은 확실히 알겠다. 온스타일 에서 마지막 미션을 치른 후보들을 안아주며 눈물 흘릴 때 당신이 확실히 어른이고 선배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장윤주 : 많은 생각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사실 그 장소가 내가 만으로 17살 때 뉴욕에 가서 첫 쇼를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때는 옷도 한 벌이었는데,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거다. 게다가 정선이는 너무 어리고, 슬기도 힘든 점이 많았고. 방송으로 보니까 내가 조언을 덜 해주는 것처럼 보여서 더 미안하기도 했다.

당신은 모델로서 그 시절을 다 겪은 사람이다.
장윤주 : 연습생 시절도 길었고, 데뷔 한 후에는 갑작스럽게 일들이 진행되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었다. 그래서 점점점 더 내 안에서 얘기하고, 스스로 준비하고 꿈꾸는 부분들이 커졌던 것 같다. 세상과 사람들이 무섭고 회의가 들었으니까. 결국 패션계의 마니아적인 부분에 대한 열정으로 그 시절을 극복 했지만 혼자만의 고민이 많았던 거다. 지금 갑자기 주목 받게 된 친구들도 처음에는 우쭐하겠지만, 거기에 도취되지 말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타고난 모습과 나이의 매력 덕분에 예뻐 보이는 친구들이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무수히 봐 오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외모만 매력적인 게 아니라 스스로를 기획할 줄 아는 능동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로서 아이디어를 존중 받는다고 정선이에게도 말한 적 있는데, 잘 알아 들었겠지? (웃음)

그런 점에서 당신은 참 여러 방면으로 스스로를 기획해 왔다.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달게 될까.
장윤주 : 계속 모델 장윤주이고 싶다. 가수, 방송인이라고 이름 앞에 써 주실 때도 있겠지만, 모델이라는 부분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더라도, 혹시 더 이상 모델 일을 안 하게 되더라도 모델로 기억될 것 같다. 나는 정말로 모델이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자랑한다.

글, 인터뷰.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인터뷰. 백은하 기자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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