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음악요정이 지상에 내린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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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을 보며 조금 불안했었다. 어느새 그는 반고정처럼 MBC 에 출연했고, 때론 가발을 쓰고 닮은꼴인 이봉원의 흉내를 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다는 게 아니다. 은 정재형의 캐릭터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끌어내는 방법을 알았고, 정재형의 음악은 을 통해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그의 캐릭터와 뮤지션 정재형이 부딪치면 이 예민한 뮤지션이 혹시 상처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정형돈이 그에게 찬합뚜껑으로 만든 가짜 반도네온을 들고 와서 이걸로 연주하는 척 하며 ‘하나마나 행사 시즌 3’에 참여하자고 했을 때, 정재형은 “니가 무례한 거니 이 무례한 거니?”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웃으며 ‘하나마나행사 시즌 3’에 참여했지만, 오히려 보는 입장에서 아슬아슬했다. 악기 조율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이 뮤지션에게 MR에 맞춰, 가짜 반도네온 연주를 보며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는 일은 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재형의 음악과 캐릭터 사이
[강명석의 100퍼센트] 음악요정이 지상에 내린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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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온 사람?” 지난 8일 공연, 정재형은 을 언급했다. 공연 중에는 늦게 들어오는 관객에게 반말로 타박을 주기도 했고, 공연 예매가 1분만에 매진됐다거나 하는 자랑을 스스럼없이 하며 웃음을 일으켰다. 과 KBSFM 의 게스트로 활동하며 드러난 그의 캐릭터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연 초반의 레퍼토리는 웃음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과 바람’, ‘오솔길’ 등 그의 피아노 연주곡들은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자연을 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사람의 음악이다. 잔잔한 흐름 속에서 점점 더 낮게 내려가는 멜로디. 그가 영화음악 작업을 하는 건 단지 클래식에 강해서가 아니다. 분명한 기승전결을 가졌지만, 그는 마치 영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조하고 해석하듯 관객을 서서히 서늘하고 깊은 사색의 세계로 안내한다. ‘달빛’을 연주할 때 무대 뒤편의 벽에는 나무가 달빛을 받아 탄생하고, 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이 상영됐다. 간결한 몇 개의 선만으로 이뤄진 달과 나무의 그림이 상상의 여백을 만들면, 정재형의 연주가 생성과 소멸에 관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일련의 연주가 끝난 뒤 정재형은 다시 관객들에게 반말을 던졌고, 웃음을 일으켰다.

대중음악 공연 중 가장 사색적이라고 해도 좋을 연주.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는 멘트. 공연 초반 마치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듯 하나씩 곡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은 뮤지션 정재형이 보여준 음악과 연결된다. 반면 그 멘트 뒤에 곧바로 관객을 휘어잡으며 웃기는 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정재형의 캐릭터와 연결된다. 한 사람이 그 간극을 몇 초 사이에 오가는 건 기이한 경험이었다. 급기야 정재형은 감정을 잡지 못해 연주에 들어가지 못했고, 코러스도 노래를 부르기 직전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재형은 감정이 잡히지 않으면 차라리 연주를 포기한다. 코러스가 웃게 된 것도 처음 노래를 부를 때 정재형이 그들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노래를 멈추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정재형의 모습에 웃었지만, 정재형은 자신이 음악을 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음악에 관해서라면, 그는 자기 자신이 가장 우선이다. 바로 그 정재형의 태도가 이 독특한 공연을 하나로 통합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관객에게 ‘Running’을 따라 부르게 할 때도 정확한 음정과 감정을 요구했고, 멘트들에는 농담이 섞여 있긴 했지만 결국 음악과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됐다.

사색과 토로, 그 모든 것이 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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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공연 전체에 배치된 곡들의 섬세한 흐름은 각각의 곡 이상으로 정재형의 음악을 전달했다. 곡마다 일정한 흐름을 가진 그의 영화음악들처럼, 그의 공연은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게 분위기를 변화시켜 나갔다. 공연 초반이 자연을 테마로 한 차분하고 사색적인 음악들이었다면, 중간의 멘트로 관객을 한바탕 웃긴 뒤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처럼 멜로디가 보다 부각되는 곡을 연주하고, 그 뒤에는 자신의 보컬이 들어간 노래, 다시 강렬한 탱고로 서서히 분위기를 높여갔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순정마초’, ‘내 눈물 모아’ 같은 히트곡들은 후반부로 편성해 관객이 노래를 즐기다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연주곡들이 클라이막스에서 저음으로 내려가는 순간의 차분함을 그려냈다면, 보컬을 사용하거나 탱고 곡들은 클라이막스에서 고음을 올라가며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내면에서 세상 밖으로, 사색에서 토로로.

그리고, 그의 노래와 함께 공연 분위기가 바뀌어갈 때 쯤 정재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예민하고 하나라도 마음에 안들면 싫다고 하다보니 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 지금 소속사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다는 말. 그 순간, 그가 연주하는 곡들과 그의 유쾌한 멘트들의 간극은 사라졌다. 내면의 사색이 격정적인 토로로 변하듯, 정재형은 지금 자신의 세계에서 밖으로 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공연에서 보여준 간극이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수긍됐던 건 그런 공연의 형식 자체가 지금의 정재형을 보여주는 가장 담백한 방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정재형이 공연장에 굳이 뿌려놓은 흙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정재형은 맨발로 그 흙을 밟고 공연했다. 지하에 있는 어두운 공연장에 뿌려진 흙은 어딘가 어색했고,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정재형은 비록 인공적일지라도 흙을 밟는 그 느낌,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그 순간에 있는 것 아닐까. 모든 건 그저 감상이고 추측일 뿐이다. 다만, 그가 두시간 조금 넘는 공연동안 그의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예능, 음악, 그리고 자신의 실제 모습이 결합된 정재형 그 자신을 납득시킨 것은 확실하다. 이 사람, 정말 음악요정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제공. 안테나뮤직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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