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불일치는 대부분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리즈와 에 출연한 켄 정은 두 가지 일 모두를 정복한 희귀한 케이스다. 이민 2세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월반할 정도로 명석했던 그는 무난하게 의사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대학에서 눈을 뜬 ‘희극 연기’에 대한 열정은 그를 곧 ‘미국에서 가장 웃긴 의사’로 만들었고, 급기야 그는 배우로 전업을 선언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인생을 건, 용감한 선택이었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수많은 코미디언 중의 하나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코미디언’으로 발돋움 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마흔을 넘긴,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을 한 이 남자가 스타가 되어 빌보드 어워드를 진행하게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단지 행운이 아니다. 켄 정은 의사와 코미디를 겸업하던 당시부터 스탠딩 무대에서 자신의 조국인 한국과 아내의 모국인 베트남을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하며 고정관념을 비트는 개그를 펼쳐 왔다. 그리고 파격적인 노출과 거침없는 캐릭터로 주목을 받을 때에는 한없이 가정에 충실한 실제 모습을 밝혀 사람들의 선입견에 발목 잡히지 않았다. 직업을 떠나, 그는 언제나 자유로운 생각과 꿋꿋한 신념으로 오직 켄 정만의 세상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켄 정은 “관객들이 코미디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요. 이건 일종의 판타지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이 아끼는 코미디 영화들을 반복해서 본다. 좋은 코미디 속에서 배우는 점도 많지만, 우선 즐겁게 웃으며 얻는 에너지야말로 그가 강력한 코미디를 선보일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소개하는 코미디 영화들은 켄 정의 교과서인 동시에 비타민이기도 하다.
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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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rat: 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 Of Kazakhstan)
2006년 | 래리 찰스
“너무나 특이해서 다른 영화와 비교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차 바론 코엔은 천재예요! 그가 히브리어로 “나는 유태인이 싫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섬세한 코미디 장치인데, 그런 부분에서 연기적으로 영감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일종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거죠.”

2010년 MTV 무비어워즈의 주인공이 혜성처럼 등장한 와 켄 정이었다면, 2007년 이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과 함께 출현한 사차 바론 코헨이었다. 영국 출신의 코미디언인 사차 바론 코헨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TV 리포터가 미국 문화를 경험하는 좌충우돌을 천연덕스러운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담아낸 이 영화를 통해 풍자 코미디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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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is is Spinal Tap)
1984년 | 롭 라이너
“의 롭 라이너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데, 6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록밴드가 80년대를 맞아 침체기를 겪는 이야기죠. 얼핏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밴드는 가짜예요. 이나 시리즈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롭 라이너가 직접 밴드 ‘스파이널 탭’을 촬영하는 감독으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1960년대 결성된 밴드 스파이널 탭은 미국에서 공연을 진행하지만 예전만 못한 인기 때문에 굴욕의 연속을 경험하게 된다. 다큐멘터리처럼 연출된 장면들 때문에 밴드의 좌충우돌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여지며, 종국에는 쇼 비즈니스에 대한 치밀한 풍자로 읽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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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 40 Year Old Virgin)
2005년 | 주드 아패토우
“일단, 제목부터가 정말 웃긴 영화잖아요! 게다가 뭔가 응큼해 보이는 게 야한 영화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죠. 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자아발견에 관한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런 반전이 너무 좋아요. 제목으로 보여 지는 것보다 훨씬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앤디(스티브 카렐)는 마흔 살의 전자제품 판매원이다. 순수한 사랑을 기다리며 동정을 지키는 그를 동료들은 놀리며 괴롭히지만, 앤디의 신념은 확고하다. 2005년 개봉 당시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성장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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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Old School)
2003년 | 토드 필립스
“를 찍기 전부터 나는 토드 필립스 감독을 무척 좋아했어요. 은 그런 토드 필립스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굉장히 엉망진창인 코미디 같이 보이지만, 속에는 남자들의 성장에 대한 비유가 담겨 있거든요. 은 학교에서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중년이 되어서 겪게 되는 소동을 그립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된 그들은 예전과 다른 책임을 감당해야 하죠. 더 이상 옛날처럼 놀 순 없는 거예요. 실컷 웃다가도 남자로서 뭔가 공감하는 지점이 생길지도 몰라요.”

20대의 열정을 되살려 진탕 유흥을 즐기는 남성 전용 모임을 만든 세 명의 주인공은 이들의 조직을 와해 시키려는 세력에 맞서 토론회, 학력 테스트, 체조 등의 미션을 감당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루크 윌슨, 윌 페렐, 빈스 본이 출연한 전형적인 미국식 소동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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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nchorman)
2004년 | 아담 맥케이
“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웃긴 영화입니다. 그냥 바보 같은 영화죠. 여기엔 도덕이나 질서도 없고, 모든 게 장난이에요. 영화니까 가능한 거고, 그래서 너무 웃깁니다. 특히 윌 페럴이 연기하는 인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본인이 굉장히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실제로는 배가 나오고 못생기고. 그렇게 비호감일 수가 없는 인물이거든요. 그를 보면 그냥 본능적으로 웃을 수 밖에 없어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채널4의 앵커맨 론(윌 페럴)은 사실 프롬프터를 그대로 읽는 멍청한 인물이다. 어느 날 똑똑한 여성 앵커가 등장하자 론과 그의 일당은 그녀를 유혹하거나 퇴출시키기에 혈안이 되지만, 결국 궁지에 몰리는 것은 론이다. 거물급 코미디언들이 대거 카메오 출연했으며, 윌 페럴이 대본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켄 정│코미디 교과서가 된 영화들
사실, 켄 정은 의 주드 아패토우 감독과 에서 함께 작업을 했고, 좋아하는 윌 페럴과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에 출연 했으며, 의 래리 찰스감독이 연출한 , 스티브 카렐이 출연한 에 단역으로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에게 무명 시절이란 고달픈 인고의 시간이 아니라 동경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기회였던 셈이다.

“에 출연 할 무렵, 아내가 암 투병 중이었어요. 아내는 간호에 지친 나를 독려하기 위해 출연을 권했고, 나는 아내가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답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진심으로 뭉클하다. 그리고 인생의 위기를 웃음의 힘으로 버텨온 이 남자가 보여주는 웃음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 아내는 병이 다 나았어요, 해피 엔딩이죠”라니. 지금 켄 정은 할리우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전도사인 셈이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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